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되면서 '서해 공무원 피격 사건' 수사가 마지막 장 진입을 위한 첫 단계에 접어들었다. 서울중앙지법 김정민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3일 "범죄의 중대성과 피의자의 지위, 관련자들과의 관계에 비추어 증거인멸 염려가 있다"며 서 전 실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수사팀은 서 전 실장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와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혐의를 적용했다.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 씨가 북한군에 의해 피격돼 사망한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피격 다음날인 2020년 9월23일 열린 관계 장관회의에서 관련 첩보를 삭제하도록 지시하고, 피격 사실이 언론에 의해 공개되자 이씨가 '자진 월북'했다는 허위 내용을 국방부·국가정보원·해양경찰청 등 관계기관의 보고서나 보도자료에 기재토록 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전날 오전부터 시작된 10시간 가량의 구속전 피의자 심문을 마친뒤 9시간 가까운 장고 끝에 이날 새벽 영장 발부를 결정했다. 서 전 실장이 지난 10월 27일 국회에서 연 기자회견 등을 거론하며 증거인멸 우려를 강하게 제기한 검찰 전략이 통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서 전 실장의 구속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문재인 정부 청와대 고위급 인사의 첫 번째 신병 확보라는 점에서 향후 전 정부 청와대를 향한 수사 속도가 빨라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게 됐다. 최장 20일간 동안 서 전 실장의 신병을 확보하는데 성공한 수사팀은 이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 등 다른 고위 인사의 연루 가능성을 입증하는데 초점을 맞추게 됐다. 박 전 원장은 서 전 실장과 함께 이씨 피살 다음날 열린 관계장관회의에 참석했고, 당시 첩보 관련 보고서 등을 무단 삭제한 혐의로 지난 7월 국정원으로부터 고발당하기도 했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이후 훈풍만 불던 남북관계에 악재가 겹치던 상황에서 이씨 사건이 남북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한 정부가 자진 월북 사건으로 몰아갔다는 것이 검찰이 생각하는 사건의 골격이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정치적 성격'이 강한 사건 속성상 검찰이 문 전 대통령에게까지 사법 잣대를 들이대는 강수를 두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에 무게를 싣고 있다. 검찰이 작성한 서 전 실장의 영장 내용에 문 전 대통령을 언급한 대목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 2009년 노무현 대통령 뇌물수수 혐의 수사를 적극 추진하다 숱한 구설에 시달리며 현재까지 조직이 위태로울 정도의 심각한 위기를 몇차례나 넘겨야 했다.
검찰이 최종 책임 당사자로 문 전 대통령을 겨냥할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문 전 대통령이 서 전 실장에 대한 검찰의 영장청구 방침이 확인된 1일 입장문을 내고 검찰 수사를 강하게 비판한 것도 이런 프레임을 의식한 조치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