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과천시의 하수처리장 이전이 서울 서초구 반대로 수년째 지지부진한 가운데, 최근 서초 주민들의 대화 요구에도 과천시가 과거 무리한 요구를 해온 서초구의 행태를 이유로 별다른 협의에 나서지 않고 있어 사태 해결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허심탄회 얘기부터"…대화 의지 내비친 서초
3일 CBS 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 2019년 1월 발표된 정부의 3기 신도시 계획과 연계해 추진 중인 과천시 하수처리장 이전은 인근 서초구 반대에 부딪혀 답보 상태다.
기존 과천동에 있는 하수처리장은 준공 후 36년이 경과해 시설 노후화로 하루 처리용량이 40%가량 줄어 1만 9천 톤에 그치고 있다. 더욱이 과천지구 신도시 건설과 도심 재건축 등 대규모 주택공급을 앞두고 있어 새로운 하수처리장 입지 선정이 시급한 실정이다.
이에 과천시는 신도시 토지이용계획상 하수처리장 이전 입지로 주암동을 제안해왔다. 정화된 하수를 한강으로 흘려보내기에 적합한 지역 내 양재천 하류인 데다, 큰 도로와 하천으로 단절돼 주변 민원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이곳은 6500여 세대의 서초지구와 인접해 악취에 대한 우려로 구민들로부터 반발을 사고 있다. 서초구는 구민들과 상의도 없이 생활·환경권을 침해하려 한다며 반기를 들어왔다.
그렇다고 협상 창구를 닫고 일방적 반대만 하는 것은 아니다. 구는 관계 기관들만의 논의가 아닌, 두 지역 간 직접대화를 통해 합의점을 찾아야 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이와 관련해 '현 위치에 증설'하거나 서초지구 '경계에서 1㎞(직선거리) 이상' 떨어진 곳이면 과천 내 어디든 수용하겠다는 등의 요구사항들을 제시한 상태다.
서초구는 CBS노컷뉴스와의 서면인터뷰에서 "국토부 등 관계기관들을 상대로 수차례 회의를 했지만 실질적 논의는 이뤄지지 않았다"며 "서초구민들은 과천시, 그리고 과천주민 대표단 등과 허심탄회하게 얘기라도 나눠보고 싶다고 전달했지만 성사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피해가 예상되는 서초구 입장에 대해 실질적인 (대안을 찾는) 논의의 자리가 필요하다"고 거듭 과천지역과의 소통을 요청했다.
"다 반대할 땐 언제고"…과천시, 소통 '회의적'
그러나 과천시는 서초 지역사회의 대화 요구에도 미온적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 정부 부처, 서초구 등과 3차례 회의를 하고 과천시장과의 비공개 면담을 통해 민원을 청취하는 등 '할 만큼 했다'는 것.
또 서초구 요구를 수용하려면 현 위치에 다시 지어야 하는데, 그럴 경우 임시시설을 설치한 뒤 재건립 공사 후 다시 철거하는 데 막대한 추가 비용·시간이 소요된다는 게 시의 주장이다.
시 입장에서 절충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원안보다 서초지구에서 더 떨어진 곳으로 입지 중재안을 검토하는가 하면, 하수시설의 완성도를 높이는 기술진단용역을 진행하는 등 주민 피해를 최소화하는 구상을 앞세우고 있다.
특히 시는 하수처리장을 부지 일부 공간 지하에 건립하고, 땅 위에는 용인 레스피아나 오산 반려동물테마파크, 하남 유니온파크처럼 대규모 문화체육공원(공연장·도서관·체육관·캠핑장 등)을 조성해 서초구민과 공유하는 계획도 갖고 있다.
이처럼 여러 협상 조건을 마련하고도 시는 지난 4년여간 서초지역의 강경한 반대 기조만을 의식해 입장차를 좁힐 수 있는 대화 자체를 거부, 협상 여지가 차단되는 양상이다.
과천시 관계자는 "매번 무조건 반대만 하니까 입지 중재안이나 혜택 제공에 대한 의사를 전달할 엄두가 나질 않는다"며 "대화 요청도 우리에게 직접 한 게 아니고 국토부 등을 거쳐서 들어왔었고, 격앙된 분위기에 마찰이 생길 수도 있어 만나지 않았던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사업도 '적신호'…중재안 무산 시 '임시시설'도
국토교통부 역시 당초 이달 중 결정하려던 신도시 필수 기반시설의 입지 선정을 위해 여러 중재안들을 검토하고는 있지만, 두 지역의 합의 없이는 강행할 수도 없다.
하수도정비기본계획에 따라 입지 선정을 비롯한 하수처리장 관련 사업의 주체가 지자체인 만큼, 과천시가 서초구와의 전격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처럼 하수시설 입지 선정이 더뎌지는 가운데, 당장 과천지역 내 재건축과 주암지구 택지개발 등 건축 인허가 지연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주택 확대공급에 따른 생활 인프라 대란이 우려되며, 3기 신도시 사업마저 발목 잡힐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과천과천지구의 경우 오는 2028년 6월 첫 입주 목표지만, 7천 가구 넘는 주택단지로서 하수처리장 건설 지연으로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하수처리장 이전은 입지 선정부터 환경영향평가 등 후속 절차까지 포함해 최소 6~7년 이상은 더 걸린다는 게 업계의 판단이다.
국토부는 과천시 하수처리장 이전·증설이 계속 늦어질 것에 대비해 추가 임시시설을 짓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최종적으로 하수처리장 위치를 결정하는 권한은 과천시에 있고, 신도시 토지이용계획과 맞물려 있어 국토부와 함께 서초구 합의안을 조율 중인 것"이라며 "양측의 가교 역할을 해왔지만 접점을 찾지 못했고, 여러 중재안들을 내부 검토 중"이라고 했다.
전문가 "다급한 당사자가 더 적극 나서야"
전문가는 타 지역 기피시설이 가까워지면서 발생한 집단민원임을 감안, 서초 지역사회를 설득하기 위해 하수처리장의 설립·운영 주체인 과천시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된다고 조언했다.
또한 설득을 위해서는 입지 선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유하거나 향후 우려되는 피해 상황에 대한 보상안을 마련하는 등 합리적 협상안을 강구해야 된다는 의견도 뒤따른다.
금창호 한국지방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서초 입장에서는 다른 지역 님비 시설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라며 "반감을 최소화할 입지를 찾는 게 가장 일반적인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이어 "하수처리장을 설치하고 나면 수십 년 운영이 지속되기 때문에 보상을 요구할 명분도 있다"며 "원자력발전소 인근 주민들에 대한 국가 보조금 보상 사례를 참고해 합리적 보상안까지도 고민하며 설득 노력을 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박성중(국민의힘·서초을) 의원과 이소영(더불어민주당·의왕과천) 의원이 하수처리장 이전 위치 기준 등을 놓고 진실 공방을 벌이는 등 두 지역 정치권에서 되풀이 돼온 정쟁도 양측의 평행선을 좁히지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라는 지적도 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은 "님비를 정치적 자산으로 활용하는 사례를 많이 봐 왔다"며 "과도한 정치화로 갈등만 고조시키면 사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금 위원도 "하수처리장 사업은 국가사무가 아닌 지방사무로 국회의원들이 전면에 나서는 게 바람직하진 않다"며 "수도권 쓰레기매립지 문제를 다루는 데 단체장들이 주도적 역할을 하고 있듯이, 이번 하수처리장 이전 이슈도 과천시장이 주도해야 된다"고 견해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