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 전북CBS <컴온라디오, 김도현입니다> (평일 낮 12시 30분~1시)
■ 진행 : 김도현 변호사 (법무법인 영)
■ 출연 : 김하나 해설사
◇ 김도현> 전라북도의 아름다움을 걸으면서 만끽하는 명품 여행길. 전라도 천년의 역사와 자연을 담은 길, 전라북도 천리길. 44개로 이루어진 전북 천리길을 매주 하나씩 만나보는 시간입니다. 내 친구 전북 천리길을 소개합니다. 지난주에는 백제부터 현재까지 천년고도 전주를 느끼는 천년전주마실길을 다녀왔었죠. 오늘은 군산으로 떠나봅니다. 오늘 천리길 안내해 주실 분 김하나 해설사님 자리했습니다. 해설사님, 안녕하세요.
◆ 김하나> 안녕하세요.
◇ 김도현> 오늘 소개해 주실 길 가볼게요. 어떤 길이죠?
◇ 김도현> 탁류길. 채만식의 장편소설 '탁류'. 제가 고등학교 다닐 때 언어영역 책에서만 봤던 그 탁류를 얘기하는 게 맞아요?
◇ 김도현> 이 '탁류' 작품을 좀 알고 걸으면 더 의미 있을 것 같아요.
◆ 김하나> 조선인들의 삶을 잘 알 수 있는 채만식 선생의 '탁류' 속 그 하나를 읽어드리려고 합니다.
◇ 김도현> 네.
◆ 김하나> 언덕 비탈을 의지하여 오막살이들이 생선 비늘같이 들어박힌 개복동. 그중에서도 상상꼭대기에 올라앉은 납작한 토담집. 방이라야 안방 하나, 건넌방 하나 단 두 개뿐인 것을 명님이네가 도통 오 원에 집주인한테서 세를 얻어 가지고, 건넌방은 따로 먹곰보네한테 이 원씩 받고 세를 내주었다. 대지가 일곱 평 네 홉이니, 안방 세 식구, 건넌방 세 식구, 도합 여섯 사람에 일곱 평 네 홉인 것이다. 즉, 평당 한 명씩 자리하고 있다. 이 글을 통해서 조선인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지 않으세요?
◇ 김도현> 교도소가 이렇게 있거든요. 한 방 안에 사람들이. 그 정도로 조선인들이 어렵게 생활했던 것이죠.
◆ 김하나> 네, 맞습니다.
◇ 김도현> 그동안 소개했던 천리길과는 다른 특별함이 벌써부터 있을 것 같습니다.
◆ 김하나> 맞아요. 지금까지 자연과 벗 삼아서 길을 걸었던 곳이라고 하면.
◇ 김도현> 그동안 좋은 길이었죠.
◆ 김하나> 오늘 소개하는 길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는 길입니다. 군산은 일제강점기에 역사가 가장 많이 남겨져 있는 도시 중 하나예요. 일제강점기 군산은 이원적 도시 구조로 수탈로 잘 먹고 잘 살았던 일본인 거리와 수탈로 헐벗고 굶주렸던 조선인의 거리가 공존하는 탁류길인 곳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잊지 않아야 할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바르게 바라보고 느끼며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역사를 써 내려가야 하는지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길이기에 꼭 가봐야 한다고 생각해요. 도심 속 걷는 길이 다소 조금 무겁고 진지할 수는 있으나 역사적 의미가 있는 길로 모든 국민들에게 미래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길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김도현> 같은 수탈이라는 동일한 이유를 가지고 누구는 잘 먹고 잘 살고, 누구는 헐벗고 굶주리며 살았던 것입니다. 이런 역사적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길이네요. 저희가 어디부터 걸어볼까요?
◆ 김하나> 군산 근대역사박물관을 시작으로 해서 해망굴, 신흥동 일본식 가옥, 초원사진관, 이성당, 동국사, 선양동 해돋이공원을 거쳐서 개복동 예술인 거리로 내려와 근대역사박물관으로 다시 회귀하는 코스로 시작과 끝이 같은 곳이고 전체적으로 따졌을 때 6km 정도. 그래서 대략 2시간 걷는 길로 길지 않고 무겁지만 그래도 이야기가 아주 많은 길이죠.
◇ 김도현> 군산 근대역사박물관 주차장이 잘 돼 있어서 여기 주차하고 걸으시면 되겠습니다.
◆ 김하나> 네, 맞습니다.
◇ 김도현> 여기 역사적 의미가 깊다고 했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시 한번 들어볼게요.
◆ 김하나> 이 길은 일제강점기 식민통치지배 정책을 한눈에 볼 수 있어서 지붕 없는 박물관이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 김도현> 지붕 없는 박물관이요?
◆ 김하나> 지금의 호남관세박물관 인근의 수덕산 자락에는 전근대 시기 전북의 군사적, 경제적 관문을 지켰던 군산진이 있던 자리예요.
◇ 김도현> 군산진.
◆ 김하나> 네. 그런데 1899년 5월 1일 군산이 개항하면서 이후 각국 조계지가 형성되고 군산진 자리에 일본영사관이 자리합니다. 그런데 이 일본영사관이 대한제국의 법적인 간섭이나 통치를 받지 않고 치외법권을 누렸고 우리가 을사늑약이라는 역사적 사건 있죠. 그 사건 이후에는 대한제국의 식민침탈을 자행했던 한편으로 이사청이라고 하는 이름을 가진.
◇ 김도현> 관공서였군요.
◆ 김하나> 네. 그 관공서가 자리했고 그리고 경술국치 이후에는 식민지배 정책을 담당했던 군산부청이 자리했던 곳으로 정치적 수탈을 볼 수 있는 곳입니다.
◇ 김도현> 일본이 봤을 때는 이 자리가 명당이었나 봅니다. 계속해서 다른 관공서를 바꿔가면서 수탈을 계속했던 것이죠.
◆ 김하나> 민족의 맥을 딱 끊어버릴 수도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곳에 자리를 계속 일본의 식민지배 정책을 담당했던 관공서를 짓지 않았을까 생각하고요. 또 한편으로는 그 인근에 옛 군산세관, 나가사키18은행, 구 조선은행, 그리고 부잔교라고 하는 내항을 중심으로는 기관산업, 금융, 재정, 토지 등을 수탈했던 경제적 수탈 공간도 있습니다.
◇ 김도현> 아주 쌍끌이를 해 간 그 공간을 저희가 볼 수 있는 것이군요.
◆ 김하나> 네.
◇ 김도현> 벌써부터 마음이 그렇게 좋지가 않습니다. 이렇게 걷다 보면 일본 건축 양식에 사찰까지도 볼 수 있다고요.
◆ 김하나> 네. 마지막 구도심의 가장 남쪽에 자리한 동국사는 민족정신수탈을 자행했던 곳으로 일본 건축 양식의 사찰이 있습니다. 경내에 참사문비를 통해 일본 불교의 정신수탈의 만행을 사죄하는 글과 그 앞에 서 있는 소녀상이 참 많은 것을 담고 있고 인상 깊은 곳이기도 합니다. 군산의 근대거리인 탁류길은 글을 통해서만 역사를 알아가는 것이 아니고 걸으면서 자연스럽게 몸으로 느끼고 간직하면서 걸어가면서 알아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 김도현> 지금 이미 이 길을 걸으면서 꼭 봐야 하는 포인트 3가지를 짚기가 너무 어려운 상황인데 한번 들어볼게요.
◆ 김하나> 크게 3가지로 나눠봤는데요. 첫 번째는 조선인의 삶을 볼 수 있는 창성동과 개복동 일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식민도시에 살고 있는 조선인들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인데요. 고지대의 빈민과 조선인들의 거주지이기도 합니다. 산비탈을 쭉 걸어올라가면서 선양동 해돋이공원 인근에 자리한 '탁류' 소설의 정주사 집터예요.
◇ 김도현> 집터.
◆ 김하나> 산이 끊어진 곳에 위치해 있는데요. 그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내일이 없는 조선인들의 삶을 마음 한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입니다.
◇ 김도현> 그때 당시에는 내일이 없었던 거예요. 그런 조선인들의 애환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 김하나> 네. 두 번째 포인트는 일본인들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신흥동, 영화동 일원입니다.
◇ 김도현> 잘 살았던 분들?
◆ 김하나> 그렇죠. 개항 이후 군산의 삶의 터전이었던 곳이었고요. 일본의 식민지배 계획 속에 근대 건물과 위생, 사회생활을 갖춘 문화도시로 일본인 거리로 변화되어 있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군산에서 일본인이 살았던 건축물로 옛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는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대지가 375평에 건평이 110평으로 일본인이 점유한 근대거리의 상징 건물이기도 합니다.
◇ 김도현> 어마어마하네요.
◆ 김하나> 대지가 375평 이야기 들었을 때 종전에 '탁류' 속 명임이네 생각나지 않으세요?
◇ 김도현> 그 대지 375평까지 안 가도 건평이 110평이면. 명임이네 7평, 여기 7평에서 몇 명이 살았어요.
◆ 김하나> 한 가족이 살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 김도현>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 김하나> 정말 씁쓸한 한편의 근대건축물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요. 마지막은 현재 구도심이 주는 메시지가 세 번째 포인트입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 김도현> 미래는 없죠.
◆ 김하나> 그 말씀 한 번쯤은 들어보셨죠. 일제강점기 곡창지대에 대한 수탈 거점도시로 번창했던 군산은 현재 근대화 거리 사업과 도시재생을 통해 다른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군산시는 이 두 지역을 구도심 살리기 일환으로 정비하면서 이 안에 있는 거리와 건축물들을 교육과 관광이라고 하는 측면에서 자원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상처, 치욕, 수치라는 단어로 수식되는 역사이기는 한데 이 자원을 우리는 일제강점기의 역사를 되돌아보고 그다음에 용서는 하되 잊지는 말자는 의식을 가지고 다시는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도록 기억하는 한편 평화적인 미래를 모색하고 있는 이정표 역할을 하는 군산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김도현> 이 길에서 축제 같은 것도 하지 않나요?
◆ 김하나> 네, 맞습니다.
◇ 김도현> 옛날 축제 같은 것 하잖아요.
◆ 김하나> 시간여행축제라고 해서.
◇ 김도현> 아, 맞아요. 시간여행축제.
◆ 김하나> 보통 도시마다 하나의 축제들이 존재하고 있는데 군산 같은 경우에는 정말 빠르게 많은 국민들이 알고 있는 축제이기도 합니다.
◇ 김도현> 제가 시간여행축제를 몇 번 갔었거든요. 그런데 볼 때마다 되게 유쾌해요. 사실 이 일제강점기 시대가 지금 우리한테 유쾌한 일은 아니지만 그 내용을 굉장히 유쾌하고 다가가기 쉽게 풀어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렇게 평화적 미래를 모색하는 이정표 역할을 하고 있는 군산, 너무 아름다워요. 마지막으로 어떤 길인지 한마디로 정의한다면요?
◆ 김하나> 이 길은 소통의 길이라고 정의하고 싶습니다. 과거 선조들의 삶과 애환을 느끼면서 현재를 또 이해하고 그리고 역사를 올바르게 인식해서 앞으로 역사를 쓸 미래의 자녀들에게 올바르게 제대로 된 역사의식을 심어줘서 성숙한 미래의 문화인으로 거듭될 수 있도록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 김도현> 다시 한번 가봐야 하겠습니다. 군산, 우리 천리길로 다시 한번 만나보고 싶어요. 우리가 이 길을 이제 다 걸었습니다. 2시간 정도밖에 안 되지만 그래도 할 것은 해야죠. 먹어야 할 음식이 있다면요?
◆ 김하나> 겨울철에만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조금 아쉬워요. 아쉬운데 차디찬 겨울철 이 길을 걸으면 씁쓸하고 시린 마음과 그리고 쓰라린 속을 시원하게 또는 따뜻하게 확 풀어줄 물메기탕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 김도현> 물메기탕을 왜 겨울에만 맛볼 수 있어요?
◆ 김하나> 겨울철에만 잡혀요.
◇ 김도현> 아, 얘 물메기가?
◆ 김하나> 네.
◇ 김도현> 그래요?
◆ 김하나> 네. 가뜩이나 시린 역사를 걸으면서 바라보고 있는데.
◇ 김도현> 이제 뜨겁게 풀어줘야죠.
◆ 김하나> 그렇죠. 따뜻한 음식도 한 그릇 하셔야 하겠죠. 물메기탕의 진수는 국물에 있어요.
◇ 김도현> 국물.
◆ 김하나> 그렇죠. 한 숟갈 떠먹으면 보드라운 살이 호로록 넘어가고요. 그리고 맑으면서도 시원하고 깊고 개운한 맛에 쓰라린 속이 스르륵 사라집니다.
◇ 김도현> 지금 설명만 들었는데 입에 침이 고여서 말을 못 하겠어. 이렇게 2시간 동안 우리 군산을 걸어보고 물메기탕까지 마무리를 잘해 봤습니다. 정말 다시 한번 가봐야 하겠어요. 군산 너무 좋아하니까. 전라북도의 아름다움을 걸으면서 만끽하는 명품 여행길, 전라북도 천리길. 오늘은 44개의 길 중 벌써 30번째 길입니다. 군산 탁류길 함께 걸어봤어요. 진짜 조만간 꼭 가서 걸어보겠습니다. 김하나 해설사님, 멋진 안내 감사했습니다.
◆ 김하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