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본인이 문화재를 조사하는 담당자이다 보니 먼저 직접 구덩이로 들어간 것 같아요."
30일 경기도 화성의 한 주택 공사 현장에서 유물 매장 여부를 확인하다 발생한 매몰 사망 사고를 조사 중인 경찰 관계자의 말이다.
숨진 노동자들 중 1명은 문화재 전문 조사원 30대 A씨. 평택에 있는 한 문화재연구원 조사팀 소속으로 사고 당일은 시(試)발굴 작업 첫날이었다.
해당 부지에 단독주택 단지를 짓기에 앞서 땅에 문화재가 묻혀 있는지 등을 지표 조사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이를 위해 파 놓은 작업 현장은 5m의 깊은 구덩이(발굴 조사용 트렌치)었다.
평소 비영리단체인 연구원에서 문화재 보존에 대한 사명감으로 일해 온 A씨는 이날도 여느 때처럼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문화 유물과 유적 등을 살피기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 땅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던 중 동시에 진행되던 굴착 작업 등으로 상부에 쌓여 있던 토사 더미 일부가 무너져내리면서 A씨는 허리 부분까지 흙에 덮이고 말았다. 구덩이 주변에 펜스 등 안전장치는 없었다.
이어 굴착기 기사인 현장 동료 40대 B씨가 그를 구하려 뛰어들었지만, 또다시 토사가 쏟아지면서 이들 모두 매몰돼 변을 당했다.
소방 구조대는 사고 발생 1시간 30여 분 뒤 차례로 A, B씨를 흙더미에서 찾아냈으나, 두 사람 모두 심정지 상태였고 끝내 사망 판정을 받았다.
이 경찰 관계자는 "조사원이 토층을 확인하러 먼저 들어갔다가 하반신이 매몰됐고, 굴착기 기사가 구조를 위해 뛰어들면서 2차 매몰이 발생했다"며 "안전펜스 등이 없었던 것으로 파악되는 등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입건할 것을 염두에 두고 현장 책임자 등을 확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재 경찰과 고용노동부는 안전조치, 작업 감독관 배치 여부 등 전반적인 안전수칙 준수 여부와 구체적인 사고 경위 등을 조사 중이다.
다만 근로자 수 기준으로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은 아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올해 1월 27일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은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건설업은 공사금액 50억 원 이상) 사업장에 적용된다. 산업재해가 발생하면 의무를 다하지 않은 사업주·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의 징역 또는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문화재연구원 기준으로 근로자 수가 50인 미만이라 중대재해처벌법 대상은 아닌 것으로 잠정 판단했다"면서도 "앞으로 추가 조사 과정에서 적용 법 관련 내용이 변동될 여지도 배제할 순 없다"고 말했다.
한편, 두 고인의 유가족 모두 부검을 거부했으며, 각각 연고지 등에 빈소가 마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문화재 발굴은 단독주택과 근린생활시설을 신축하는 과정에서 부지 내 유적 유무를 조사하는 작업이다. 개발사업 시행자가 한 문화재연구원과 계약을 맺고 문화재청으로부터 발굴허가를 받아 조사를 개시했다. 발굴면적은 7800여㎡다.
사고 현장은 기존 인근 지표조사에서 조선시대, 고려시대 토기가 확인되면서 유물이 발굴될 가능성이 있는 곳으로 지정된 지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