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부모는 쓸수 없는 산모수첩…출산·돌봄 '사각지대'

[인구위기와 공존⑮]장애인 고려없는 출산‧육아 지원 정책
비장애 산모 몸에만 맞춰진 산모수첩…정보접근성 떨어져
장애친화 산부인과 전국 21개소뿐…6개 시‧도엔 아예 없어

육아지원도 도움절실…"출산장려금 100만원이 거의 유일해"
지자체 각각 시행 중인 돌봄 지원…보편화 및 전국 확대 필요
자녀 언어교육 어려운 청각장애 등 장애별 맞춤 지원 늘려야

▶ 글 싣는 순서
①청년도 노인도 불행한 '인구 디스토피아'
②놀이터엔 노인들만…"애 한 명도 안 태어난 마을도"[영상]
③"마을 하나씩 매년 사라지는 셈…20년 후가 두려워요"
④20여년 간 41개 학교 문닫은 신안…"공공인프라 길게 보고 심어야"[영상]
⑤지역 특색 살린 '살아보기'로 인구 유치…"가장 큰 걸림돌은 주거 문제"
⑥'과밀한' 경기도마저 인구위기 '빨간불'…"80대도 안아프면 일해야"
⑦가평 이사 간 목동엄마의 분투기 "주3일은 서울行"
⑧MZ세대 남녀 '동상이몽' 심화…멀어지는 결혼·출산
⑨현실판 '82년생 김지영' 도처에…"이기적이란 말이 이기적"
⑩'비혼 1세대'가 바라본 저출생…"'삼중 노동' 여성들의 파업"
⑪"육아대디 되니 아내와 '동질감'…평일 회식도 눈치 안 봐"
⑫"젠더 갈등, 연애에도 영향…여성 고용문제 풀어야 저출생 개선"
⑬3년 만에 산모 44% 감소…장애인에 더 가혹한 '출산정책'
⑭"분유 탈때마다 몇번씩 반복"…장애母에겐 일상이 전쟁인 '출산‧육아'
⑮장애부모는 쓸수 없는 산모수첩…출산·돌봄 '사각지대'
(계속)

스마트이미지 제공

보건복지부가 올해 4월 발표한 '2021년도 등록장애인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등록장애인은 264만5천명이다. 올해 10월 기준 주민등록인구가 약 5145만명인 점을 고려하면 전체 인구의 5.1%가 선천적인 이유 혹은 후천적인 이유로 장애를 갖고 있는 셈이다.

적잖은 인구 비중이지만 우리나라의 출산부터 육아 지원 정책은 여전히 비장애인 중심으로만 이뤄지고 있다. 장애인구가 비장애인구보다 고령화돼있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극히 출산율이 낮은 배경에는 이러한 장애인의 출산‧육아 지원에 대한 무관심이 작용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출산부터 보면 산모가 임신 직후 받는 '산모수첩'부터 그렇다. 문애준 한국여성장애인연합 상임대표는 "산모수첩에는 예방접종은 언제 해야하며, 임신 몇 주 때는 어떤 신체 변화가 있고 나중에 아이가 태어나면 어떻게 하는지 정보가 있다. 그런데 이 모두가 비장애산모의 몸에만 맞춰져 있다"며 "장애가 있는 산모는 어떤 변화가 있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관련한 설명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산모수첩에는 자녀가 장애가 있거나 혹은 장애가 의심되는 경우 특수교육 관련 서비스 지원 등 내용은 나와있지만 산모가 장애인인 경우에 관련한 사항은 따로 없다. 신체적 또는 정신적 불편으로 가뜩이나 출산이 어렵지만 이처럼 기초적인 정보에 대한 접근부터 비장애 산모에 비해 극히 제한된 상황인 셈이다.

시설 지원도 부족하기는 마찬가지다. 여성장애인이 불편을 겪지 않도록 장애 친화적인 시설‧장비를 갖춘 산부인과는 올해 기준 전국에 21개소뿐이다. 전국 17개 시‧도 가운데 대구, 인천, 세종, 강원, 충남, 제주 등 6곳에는 1개의 장애친화 산부인과조차 없지만 내년도 예산안에 신규 개설을 위한 예산은 반영되지 않았다.

출산 후 육아와 관련한 정책에도 장애인의 특성을 고려한 경우는 많지 않다. 여성장애인에게 태아 1명당 100만원을 지원하는 출산장려금 지원 사업이 거의 유일한 중앙 정부 차원의 지원이다. 비장애인 부부보다 육아에 어려움이 많음에도 장애인 부부에 대한 육아, 돌봄 제도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지혜 인천대 사회복지학 교수는 "장려금 지원 사업 외에 장애인 가족의 양육 지원 사업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장애인 가족 지원 사업은 대부분 자녀가 장애인이고 부모가 비장애인인 경우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장애인 부모는 복지 사각지대가 돼버린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이러한 지원 부족에 따른 영향이 제일 심각한 건 지적장애인들로 이들은 정부 차원의 지원이 없으면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부터 총체적인 난국에 처하게 된다"며 "당장 우유를 먹이는 방법에 대한 정보도 제대로 알지 못 해 아이를 눈으로만 보고 영양실조로 이어져 나중에 학대신고로 이뤄지는 경우 등도 있다"고 했다.

일부 지자체는 자체적으로 장애인 육아 돌봄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가령 서울시는 '홈 헬퍼'라는 이름으로 중위소득 120% 이하의 여성장애인에 대해 만 9세 이하 자녀에 대해 월 70시간~90시간 돌보미를 파견한다. 경기도의 경우 '장애인 맞춤형 도우미'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36개월 이하 자녀를 둔 중위소득 180% 이하의 여성장애인 또는 한부모 남성장애인에 대해 월 48시간 돌봄을 지원하고 있다.

이러한 지자체 돌봄 사업 대상이 된 장애인들의 만족도는 비교적 높지만 소득 기준에 따라 지원 여부가 달라지는 점, 지자체에 따라 사업 존재 여부부터 지원 대상 범위가 크게 달라 지원의 폭 자체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전 교수는 "현재로서는 지자체와 (장애 관련) 협회에 따라 선별적 지원이 되고 있는데 보편적으로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며 "서울시에서 하고 있는 홈헬퍼 사업을 모델로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고려할만 하다. 다만 이 또한, 저소득 장애인 부모 가정이 지원 대상이기 때문에 보편적인 제도로 보기는 어려운 면도 있다"고 설명했다.

장애 특성 별 맞춤 지원도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특히 청각장애인 부모에 대한 육아 교육 지원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언어구사력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부부 모두 장애가 있는 경우 자녀에 대한 시기별 언어교육에 어려움을 겪기 다반사다. 하지만 이에 대해 교육 지원 등은 사실상 전무해 심한 경우는 자녀의 언어 발달 지연으로 이어져 언어 구사력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전남 지역에서 청각장애인들을 돕는 한 수어통역사는 "청각장애인은 주로 청각장애인끼리 부부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 주변에 시댁이나 친정에서 도움을 주면 다행이지만 도움을 받기 어려운 가정의 경우 아이들이 어린이집을 갈 때까지 언어자극을 못 받아 발달이 지연되는 경우가 많고 심하면 장애까지 간다"며 "친척이나 봉사단체에 맡길 일이 아닌 정부 정책으로 청각장애인 자녀에 대한 교육 지원이 필요한 상황"이라 말했다.

문애준 대표는 "창각장애인은 물론, 또 시각장애인 같은 경우도 엄마가 아이가 어린 영유아기 시기에 해줘야 할 역할이 많이 있는데 시각장애로 인해 도움을 줄 수 없는 지점들이 많다. 이처럼 구체적으로 장애 유형 별로 육아 지원이 국가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장애인의 출산과 돌봄 환경이 열악한 것은 그만큼 투자를 게을리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장애인 복지는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장애인고용공단 고용개발원에 따르면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장애급여·상병급여 공적 지출 비율은 0.3%로 OECD 34개 회원국 중 33번째다. 2018년 기준 우리나라의 GDP 대비 장애인 복지지출 비율은 0.61%로 OECD 회원국 평균 2.02%의 3분의 1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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