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꿀벌이 사라졌다…농민들, 텅빈 벌통 보며 '울상'

순천지역 꿀벌 4만 5천여군 중 7900여군 피해
이상기온·병충해 원인 지목되지만 진상규명은 아직
생존한 벌들마저 내년 봄까지 살아남을지 '불안'

순천시 서면 양봉농가를 운영하는 박종현씨가 빈 꿀벌 통의 덮개를 덮고 있다. 박사라 기자

올해 첫 한파 경보가 있었던 30일 전남 순천시 서면의 한 양봉농가.

12년째 이곳에서 벌을 키우고 있는 박종현(64)씨는 벌통이 텅텅 비어있는 모습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 수어 차례 통 안을 확인하더니, 이내 빈 벌통마저 날아가지 않도록 통 위에 덮개를 씌우고 벽돌을 올려놓고 있었다.  

박 씨가 사육하고 있는 벌통은 불과 21군. 본래 180군이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지난해 하반기부터 벌들이 종적을 감추었다. 병충해로 인한 폐사라면 사체가 벌통 앞에라도 있어야 하는데 요즘은 그 흔적조차 없어 영문 모를 상황이다.

박 씨는 "갑자기 날씨가 추워졌지만 지금도 뒷산에 진달래꽃이 피어있을 정도로 따뜻한 날씨가 계속됐다"며 "이상기온, 응애병 등이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지만 정확히 규명되지 않아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든 꿀 생산을 하기 위해 외부에서 60군을 사와 재배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순천시 조례동 양봉농가 모습. 박사라 기자

사정이 안 좋은 건 다른 양봉농가도 마찬가지다.

순천시 조례동의 한 양봉농가는 지난해 말부터 200군 중 100군 이상이 폐사했다.

꿀벌의 원인 모를 실종도 그렇지만, 병충해로 인한 폐사까지 지속되면서 내년 봄까지 몇 통이 살아남을지 불안한 상황이었다.

농민 장수만 (66)씨는 "자식같은 벌인데 그걸로 먹고 사는데 갑작스런 피해가 와서 당황스럽다"며 "정부에서 대책을 세워서 보상을 해주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어 "농민들은 무슨 힘이 있나 정부와 지자체에서 힘을 써서 도움을 줄 수 있는 길을 마련해달라"고 말했다.

한국양봉협회 순천시지부에 따르면 협회에 가입된 순천의 양봉농가는 320여 가구. 벌통 갯수로는 4만 5천여 군이며 이 가운데 꿀벌 실종과 병충해 피해 군수는 7900여 통에 이른다.  

전국적으로는 전체 양봉농가 2만 4044가구 중 17.8%인 4295가구의 벌통에서 꿀벌이 한꺼번에 자취를 감추는 현상이 발생했다.

농촌진흥청은 올 초 꿀벌 집단 실종 현상의 원인으로 △꿀벌응애류 발생 △말벌류에 의한 폐사 △이상 기후변화 등으로 추측하고 있지만 아직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특히 꿀벌이 대량으로 실종되는 사태가 발생하면서 많은 양봉 농가가 피해를 입었지만 정작 꿀벌 가축재해보험의 보상 범위가 너무 좁아 양봉 농가들에게 별다른 도움이 되지 않는 실정이다. 꿀벌 가축재해보험에는 이에 대한 보상 근거가 없어 실효성이 부족하며, 가입률은 2.6% 밖에 되지 않는다.
 
박귀득 한국양봉협회 순천시지부장은 "피해는 나날이 커지고 있지만 원인도 대책도 없어 농민들만 애타고 있다"며 "전국적으로 꿀벌 실종 문제 등이 발생하는 만큼 정부에서 원인 분석을 통해 약을 개발하는 등 대책을 세우고 보험 범위 확대 등 양봉농가를 살릴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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