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레토릭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 김기춘의 불법적인 행위들로 종식되기를 소망했다. 과거 보수 정부들은 노조 파업 때마다 법과 원칙을 얘기했다. 법과 원칙 기조가 합당해 보여 설득력이 있을 때도 더러 있었다. 그러나 법과 원칙 기조는 국가 강제 기구의 합법성을 바탕으로 밀어붙이는 힘의 논리를 보여주려 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대의 헌법과 법률은 국가를 영위하려고 단지 시민의 의무와 복종만을 규정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수 백년 간 국가(국가를 대표하는 집권 세력)와 시민은 자유와 권력 제한을 놓고 살벌한 갈등을 겪어왔다. 그 갈등의 핵심 문제 중 하나는 '권력'이라는 무기가 외적을 물리치는 데만이 아니라 시민을 억압하는데도 사용된다는 것이었다. 지난 한 갈등 끝에 현대 민주주의의 헌법과 법률은 시민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 규정 뿐만 아니라 자의적 성격의 권력 행사도 제한하는 것으로 수렴되었다. 학자들은 '법치주의'라는 말도 시민들보다 오히려 권력자의 권한 남용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용어라고 말한다.
화물연대의 물류 파업을 놓고 법률적 쟁점이 크게 부각되고 있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의 효력에 관한 논란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불법과는 절대 타협하지 않을 것이고 불법행위 책임은 끝까지 엄정하게 물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당의 주호영 원내대표도 "화물연대가 불법 행위를 저지르면서 파업을 강행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대통령과 여당 원내대표의 말에서 화물연대의 어떤 행동이 '불법'이라는 것 인지에 대해선 분명하게 제시되지 않는다. 물류 파업 자체가 '불법'이라는 뜻으로 엿보이는데 현행법 상 화물연대의 행동을 '불법'이라고 규정할 수 는 없다.
'불법이 아니라는 것'은 정부의 노동 행정을 총괄하는 노동부의 공식 입장이다. 화물차 기사는 개인 사업자로 규정돼 있기 때문에 개인 사업자가 집단적이든 개별적이든 하던 일을 멈추는 행위에 대해 국가는 강제로 제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 논리에 따르면 화물연대는 노동조합도 아니다. 노동조합이 아니므로 법적 절차를 밟아 쟁의에 돌입할 자격 자체가 없는 것이다. 자격 없는 집단이 파업에 돌입했으니 불법이라는 것인데 그러나 문제는 화물연대 소속 '근로자'를 정부가 '근로자'로 보지 않는데 있다. 그들의 법적 지위는 개인 사업자 일 뿐이다. 이것이 모순이요. 부조리인 것이다.
윤 대통령과 주호영 원내대표 발언이 모호한 것도 이 때문이다. "노조 불법 행위에 타협하면 당장은 편하겠지만 경제적 손실을 고려하면 관행적 파업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정치적 논리'가 등장한 배경이기도 하다. 물론 개인 사업자인 의사에게도 업무개시명령을 내린 바 있으니 동일한 개인 사업자인 화물노동자도 예외 일 수 없다는 논리를 전부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업무개시명령의 위헌 논란은 차치 하고 문제는 업무개시명령의 전제 조건이 "정당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화물연대가 '정당한 이유 없이 화물 운송을 거부하는가'에 대해선 설득력이 와 닿지 않는다. 화물연대의 물류 파업은 어느 날 갑자기 제기된 것이 아니다. 지난 6월 첫 파업이 있었고 국토교통부와 화물연대는 파 업종료 조건으로 안전운임제에 대한 성실한 논의를 약속했다. 그럼에도 지난 6개월 간 정부가 진지하게 이 문제를 다뤄왔다는 기록이나 발표는 거의 없다. 특히 '국가 경제의 근간을 흔든다'고 누차 말해 놓고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6개월 간 어떤 노력을 기울여 왔는지 묻고 싶다. 이 문제에 대해 원 장관은 어제 TV 화면에 양손 깍지를 끼고 전혀 심각한 표정도 없이 간만에 등장했고 "업무개시명령서를 화물 차주들에게 전달하는데 문제가 없다"고 화물 차주들을 압박한 기억만이 있을 따름이다.
세월이 윽박 지르고 강권하는 시대가 흘러갔음에도 불구하고 위정자들이 법과 원칙을 내세우며 노동자들을 적대시하는 행동들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다. 법과 원칙의 망령은 박근혜 전 대통령 시절로 종지부를 찍었어야 했다. 더욱이 윤석열 대통령은 박근혜 국정농단 특검에서 법과 원칙의 비민주적 행위에 대해 철퇴를 내린 당사자가 아닌가. 국정은 대화와 타협을 원칙으로 할 때 국민들을 설득해 낼 수 있다. 지나간 유령은 과거의 것으로만 기억하고 선진국의 정부 수반답게 갈등을 지혜롭게 관리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