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멘트-정유-철강 순차적 발동 …尹대통령, 오늘 업무개시명령 심의

윤석열 대통령.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은 엿새째 진행되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동조합 화물연대본부(이하 화물연대)의 총파업에 대해 29일 국무회의를 열어 파업을 강제로 중단시킬 '업무개시명령'을 발동하기로 했다. 업무개시명령 발동은 관련 법이 시행된 지난 2004년 이후 18년 만에 처음이다.

업무개시명령은 동맹 휴업이나 파업이 국가 경제에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것으로 판단할 때 정부가 국무회의를 의결해 내릴 수 있다. 명령을 거부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 운수업 관련 면허 취소 등에 처해질 수 있다.  

통상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는 격주로 이뤄져 이날 국무회의는 해외 순방 중인 한덕수 국무총리를 대신해 관례에 따라 부총리인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재할 것으로 관측됐지만 윤 대통령이 직접 회의를 주재하기로 결정했다. 그만큼 이번 파업 사태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업무개시명령은 화물연대 파업에 속한 모든 업종별 사업장에 즉시 적용하는 것은 아니고, 피해 규모가 큰 업종부터 순차적으로 발동될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가장 피해가 큰, 긴급하고 시급한 분야부터 업무개시명령이 내려질 것"이라고 했다.

가장 먼저 적용될 업종은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레미콘 전용 운송 차량)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그리고 이어 정유, 철강 등으로 업종을 차차 확대할 방침이다.

윤 대통령은 전날 이미 화물연대 파업에 강경한 대응을 시사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하고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문제를 타파하고 근로조건의 형평성을 맞추는 것이 노동 문제를 대하는 우리 정부의 일관된 기조"라며 "불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이 강경하게 대응하는 배경에는 실제 실물 경기가 매우 어렵다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고금리로 인한 유동성 저하로 건설업계가 어려운 상황에서 이번 화물연대의 파업이 건설 경기를 크게 악화시킬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경기가 침체되면서 기존의 건설 현장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번 파업으로 시멘트·레미콘 출하가 사실상 멈추면서 현장이 더욱 어려워졌다고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시멘트협회는 지난 26일 출하 예정이던 시멘트 20만 톤 가운데 2만 톤이 출하되는 데 그쳤다고 밝혔다. 현재 수도권 물류기지는 시멘트 출하가 전면 중단됐고, 시멘트 생산이 멈추면 레미콘 업체 역시 원료가 없어 생산 공장을 멈출 수밖에 없다.

또 윤 대통령이 법조인 출신으로써 노조의 '불법' 파업에 강경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평소 소신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도 '법과 원칙' '불법' '법치' 등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노(勞) 측의 불법행위든, 사(社) 측 불법행위든 법과 원칙을 확실하게 정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이어 "국민경제를 볼모로 한 노조의 불법과 폭력은 경제를 망가뜨리고 국민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로 이어진다"면서 "결국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은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시달리는 저임금 근로자"라고 강조했다.

화물연대의 총파업이 닷새째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28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토교통부와 화물연대의 첫 교섭에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관계자들이 어명소 국토교통부 제2차관이 참석해 자리하고 있다. 류영주 기자
지난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동자들의 파업 당시 윤 대통령은 출근길 약식회견에서 "빨리 불법 행위를 풀고 정상화시키는 게 국민 모두가 바라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화물연대 파업으로 일하고 싶어도 일하지 못하는 약자인 노동자들도 보호해야 한다는 게 대통령의 의지"라고 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언급한 것은 파업 노동자와 다른 노동자를 '갈라치기'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화물연대는 지난 6월 한 차례 파업을 했다가 종료했다. 이번이 올해 두 번째 파업인데, 한 해 두 번 이상 파업한 것은 2003년 이후 19년 만이다.

화물연대의 요구는 안전운임제 법제화 및 확대 적용이다. 안전운임제란 화물차 기사가 받을 수 있는 최소 운임을 보장하는 제도로, 운송업체 간 지나친 가격 경쟁으로 운임이 지나치게 낮게 책정될 경우 화물차주들이 이를 보충하기 위해 사고 위험을 무릅쓰고 과로·과속·과적 운행해온 악습을 막기 위해 2020년 3년간 한시적으로 도입됐다. 따라서 내년에는 안전운임제가 다시 사라지는데, 이걸 영구적으로 적용되도록 법제화해달라는 요구다. 

아울러 안전운임제 적용 품목도 기존 컨테이너와 시멘트 외 5개 품목으로 확대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점을 여러차례 밝혔다. 그리고 오늘 첫 대화가 시작된 만큼 그 협상 내용도 지켜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건설업을 중심으로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이 피해를 계속 방치할 수 없고, 국민의 안전과 국민의 편익, 국민의 편에서 이 문제를 접근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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