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착륙 경고음이 커지면서 주택 분양시장도 빠르게 냉각되고 있는 가운데 건설업계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기준금리 인상으로 금융비용이 급증하고 있는 데다 올해보다 내년 주택시장이 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이어지자 건설사들이 밀어내기 분양을 하고 있지만, 경기 침체 우려에 '옥석가리기'가 심화되면서 청약자들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는 모양새다.
이에 건설사들은 계약금 인하부터 중도금 이자 지원 등 다양한 혜택을 내걸고 있지만 기준금리 추가 인상과 경기 침체 등이 예상되는 만큼 청약자들을 움직이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27일 부동산시장 분석업체 '부동산인포'에 따르면 11~12월 전국에서 분양 예정인 일반분양 물량은 총 8만 6158가구(임대 제외. 11월은 기분양 물량 포함)로 나타났다.
시공능력평가 상위 10대 건설사의 분양 예정인 곳은 총 40개 단지, 3만 7740가구(일반분양만 2만 9094가구)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총 가구는 약 1.8배, 일반분양은 1.6배 많은 수준이다. 최근 급격한 부동산 경기 침체로 분양 일정을 미루던 건설사들이 상황이 개선되지 않자 누적된 물량을 연말에 집중한 데 따른 것이다.
신규 분양이 쏟아지고 있지만 청약시장 분위기는 좋지 않다. 부동산R114에 따르면 아파트 평균 청약률은 10월 기준 8.5대 1로 전년 동기(19.8대 1) 대비 대폭 줄었다. 같은 기간 서울(164.1대 1→26.4대 1)과 경기(28.7대 1→7.8대 1)의 평균 청약률도 급감했다.
물량은 쏟아지지만 청약자들이 급감하다 보니 미분양 물량은 급증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9월 말 전국 미분양 주택은 4만1604가구로 전월(3만2722가구)보다 27.1% 늘었다. 특히 수도권 미분양 주택은 7813가구로 전월 대비 55.9% 증가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건설사들이 아파트 분양에 나서는 것은 올해보다 내년 상황이 더 나쁠 것이라고 판단해서다. 급격한 금리 인상으로 금융 비용이 증가하고 있는 데다 최근 금융시장 경색으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환 대출도 쉽지 않은 상황인 점도 고려됐다는 평가다.
금리인상이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원자재 가격과 인건비 상승세도 가파른 상황인데, 집값 하락 기대감에 청약자를 포함한 주택 매수자들도 움직이지 않고있는 만큼 울며 겨자먹기로 '밀어내기 분양'에 나선 것이다.
미분양이 쌓인 상황에서 밀어내기 분양까지 쏟아지면서 건설사들의 파격적인 계약조건도 이어지고 있다. △계약금 축소 △중도금 무이자 △이자후불제에 고정금리 적용 △분양가 할인 등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방에서나 볼 수 있던 마케팅이 수도권에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파트 분양가는 △계약금(10%) △중도금(60%) △잔금(30%)으로 구성되는데 계약금을 제외한 중도금과 잔금은 은행 대출로 충당한다. 예를 들어 분양가 9억원 아파트의 중도금 대출 이자(연 5% 가정)는 2700만원 수준이다. 중도금 전액 무이자는 2700만원 전부를 사업주체가 대신 내준다는 의미다. 고정금리 적용조건은 시중금리가 추가로 상승하더라도 사업주체가 이자 초과분을 부담하겠다는 것이다.
한화건설이 경기 평택시 화양지구 일원에 분양중인 '포레나 평택 화양'은 중도금 전액 무이자와 함께 1차 계약금 1천만원 정액제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GS건설은 서울 은평구 신사동 일대에 '은평자이 더 스타'를 분양하면서 중도금 대출이자 지급 방식을 후불제에서 무이자로 전환했고, 유상 옵션 가전들도 무상 제공하기로 했다. '장흥역 경남아너스빌 북한산뷰'와 '의정부역 파밀리에Ⅰ'의 경우 중도금에 대해 각각 3.8% 고정금리를 적용하고 있다.
지난 2월 분양에 나섰다가 전체 216가구 가운데 91.7%에 달하는 198가구가 미계약 물량으로 나왔던 서울 강북구 수유동 '칸타빌 수유팰리스'는 분양가를 15% 할인하고 관리비도 대신 내주는 조건을 내걸었다. 이달 초부터 선착순 분양에 돌입한 서울 구로구 오류동 '천왕역 모아엘가'는 중도금의 40%까지(4회차) 무이자에 더해 계약만 하면 한 달 안에 현금 3천만 원을 주기로 했다.
업계에서는 당분간 건설사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제살 깎아먹기식 계약조건을 제시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기침체 우려에 레고랜드 사태까지 겹치면서 건설업계를 포함한 산업계 전반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인데, 청약 계약률이 저조하면 금융권에서 대출을 받기가 더욱 어려워져 사업 주체가 자체 자금으로 공사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마진을 줄이더라도 계약률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확보해야 자금난 등 더 큰 위기를 피할 수 있다"며 "레고랜드 사태 이후 시장의 자금 조달 상황이 악화됐기 때문에 고육지책으로 파격적인 계약조건을 내걸어서라도 계약률 높이기에 사활을 걸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