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가 안전운임제 확대를 요구하며 지난 24일 총파업에 나서면서 건설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육상 운송 의존도가 큰 레미콘과 시멘트, 건설업계는 지난 6월 화물연대 총파업으로 상당한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 다시 총파업을 마주한 상황이어서 업계 피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시멘트 공장 출하 사실상 중단"…"6월 총파업 때보다 피해 더 클 것"
시멘트업계에 따르면 이날 총파업의 영향으로 전국 시멘트 공장 대부분의 벌크시멘트트레일러(BCT) 운행이 사실상 중단됐다. 화물연대 노조가 시멘트 공장 정문을 점거하는 등의 집단행동은 없었지만 노조원은 물론 비노조원 BCT 운송자들도 운행을 모두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형 시멘트 업체 관계자는 "화물연대 총파업 출정식 이후 BCT 출하는 거의 없다"며 "간혹 공장에 들어오는 BCT를 민주노총 노조원들이 회유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시멘트는 항만과 철도를 통해 운송된 물량을 BCT로 레미콘 공장과 건설 현장에 운송한다. BCT는 전국에 약 3천대가량이 있는데 이중 1천여대가 화물연대 소속으로 BCT 중 3분의2는 비노조원들이지만 노조원의 보복을 우려해 파업 기간동안 운송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설명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파업기간때 운송을 했던 비노조원 차량에 노조원들이 돌을 던지거나 새총으로 볼트를 쏘아 유리창이 깨지고 차량에 경고 문구를 남기거나 협박을 받았던 사례를 봤다"며 "이런 이유로 많은 비노조원들이 파업기간동안 운송을 꺼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시멘트 업계는 당분간은 공장 가동이 가능하지만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시멘트 생산 중단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시멘트 완제품은 습도 등에 취약해서 큰 원기둥 모양의 사일로(시멘트 저장고)에 저장해야 하는데, 10일 정도가 되면 모든 저장시설이 동나서 더 이상 시멘트를 보관할 장소가 없어 이 경우 가동을 중단할 수 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국시멘트협회는 "지난 6월, 8일간 운송거부로 당시 시멘트 매출손실이 1061억원에 달하는 등 업계는 최악의 위기상황에 직면했었다"며 "최근 발생한 오봉역 안전사고에 따른 시멘트 입환(入換) 중단으로 시멘트 공급이 원활치 못한 데다 통상적으로 9~12월 초 시멘트 수요의 극성수기임을 감안할 때, 6월 운송거부 때보다 훨씬 더 큰 타격을 줄 것"이라고 우려했다.
레미콘 공장, 조만간 셧다운…골조 공사 중인 건설 현장도 직격탄
레미콘 업계의 상황은 더 급박하다. 레미콘 업계는 파업 전부터 재고 확보에 나섰지만 최근 시멘트 저장시설이 있는 오봉역에서 인명 사고가 발생한 뒤 역 운영이 중단되자 재고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업계에서는 이날까지는 미리 확보한 시멘트 재고로 레미콘 생산이 가능하지만 당장 25일부터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 레미콘 업체 관계자는 "오봉역 사고로 지난 6월 파업 때보다 준비한 물량이 더 적은 상황"이라며 "하루나 이틀이 지나면 물량이 소진될 것 같다"고 전했다.
건설업계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특히 타설(콘크리트를 거푸집에 붓는 작업)을 앞둔 건설 현장은 직격탄을 맞았다.
골조 공사가 진행 중인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올림픽파크포레온) 재건축 사업장이 대표적이다. 둔촌주공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 관계자는 "미리 확보해둔 레미콘으로 오늘까지는 타설이 가능하지만 내일부터는 타설 작업 중단이 불가피하다"며 "일부 대체 공정으로 공사를 이어갈 수 있지만 현재 골조 공사를 진행중이어서 파업이 장기화될 경우 공정에 차질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동절기를 앞두고 있어 타설 작업이 집중되는 6월 총파업 때와 비교하면 골조 공사가 진행 중인 현장이 상대적으로 많지는 않지만 이번 총파업이 철근 등 다른 원자재 수급에 어느 정도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다"며 "예정된 파업이었던 만큼 많은 현장에서 자재를 쌓아둔 상황이지만 파업이 2주 이상 길어질 경우 많은 현장에서 공정에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런 이유로 산업계에서는 화물연대에 파업 중단을 촉구하면서도 정부가 다수인 비노조원들의 원활한 운송을 위한 조치를 강구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정부에서 비화물연대 운송기사들의 운송을 보호해줘야 화물연대원들의 불법 운송거부 행위가 확대되지 않고 일련의 피해를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정부의 단호한 대처를 촉구했다.
정부, 운송개시명령 발동 경고…명령 현실화 두곤 조심스러운 접근 시사
이와 관련해 정부는 총파업에 대해 '운송개시명령'을 발동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이날 국토교통부 원희룡 장관은 "정당한 사유가 없는 이번 집단운송거부가 국가 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까지 초래한다면 화물자동차운수사업법에 근거한 업무개시명령도 발동하겠다"며 "업무개시 명령에도 불구하고 업무에 복귀하지 않는다면 예외없이 법적 조치하겠다"고 밝혔다.
운송개시명령(업무개시명령)은 운송사업자나 운수종사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화물운송을 집단거부해 화물 운송에 커다란 지장을 주는 경우, 국가 경제에 매우 심각한 위기를 초래하거나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국토부 장관이 내릴 수 있다.
운송개시명령이 내려지면 운수종사자는 즉각 업무에 복귀해야 하고 이를 거부할 경우 30일간의 면허정지(1차처분) 또는 면허취소(2차처분) 될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도 있다. 다만 지금까지 운송개시명령이 발동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화물연대는 지난 6월 총파업에서 정부가 약속했던 안전운임제 지속 추진·확대를 이행하지 않고 국회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하며 5개월만에 다시 총파업에 나선 상태다. 안전운임제는 법적으로 노동자 신분을 인정받지 못하는 화물노동자에게 최소한의 운송료를 보장하는 일종의 최저임금과 같은 제도로, 연말 일몰 기한을 앞두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