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가 핼러윈 이전인 지난달 초 경찰에 '마약 관련 대책을 수립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핼러윈을 맞아 이태원에 10만 명 이상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예상했음에도 인파 관리 등 시민 안전보다 마약 단속에 더욱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8일 CBS노컷뉴스가 더불어민주당 전용기 의원실을 통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한 총리는 지난달 6일 '마약범죄 현황 및 향후 대응'이라는 제목의 지시를 경찰청에 하달했다. 지시 내용은 "국조실장(국무조정실장)을 중심으로, 마약 관련 대책을 조속히 수립할 것" 이었다. 국조실은 총리실 산하 기관으로 총리를 보좌해 국정 전반을 총괄하는 핵심 국정 운영 기관이다.
문서에 따르면 해당 지시가 내려진 계기는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 였고, 관련 국정과제는 '국정63. 범죄로부터 안전한 사회 구현(중대 사회범죄 근절<마약 범죄>)'이었다. 처리 시한은 지난달 14일부터 이달 30일까지였다. 10월 한 달 동안 경찰청이 국무총리로부터 전달받은 지시사항은 해당 사안이 유일했다.
경찰청은 8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 5개월간 '마약류 범죄 집중 단속'을 진행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마약류 사범 집중 단속 기간은 8월~10월까지 3개월간 운영돼 왔는데, 연말까지 그 기간을 늘린 것이다. 또 10월 13일 '마약류대책협의회' 개최, 17일 관계부처 합동 '마약류 관리 종합대책' 마련, 17일~21일 미국 마약단속청(DEA) 마약수사기법 교육 등을 추진했다.
이어 참사 3일 전인 10월 26일 '당정협의회'를 개최한 뒤 '마약류 관리 종합 대책'을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경찰청은 '마약범죄 동향 및 대응'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진행했다. 당시 당정협의회에서는 국조실 산하 마약류 관리 총괄 컨트롤타워를 설치하겠다는 발표가 나왔다. 윤석열 대통령 또한 '마약과의 전쟁'을 언급하며 이 같은 분위기에 힘을 실었다.
결국 이 같은 정부 기조 속 일선 경찰은 마약 단속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고, 핼러윈 당시 수많은 인파가 몰릴 것을 예상했음에도 시민 안전을 위한 대비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김광호 서울청장은 참사 전날인 지난달 28일 특별 지시를 통해 이태원 일대 핼러윈 마약 단속 경찰 인력을 3배 이상 늘린 것으로 확인됐다.
김 서울청장은 참사 이후 이달 열린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현안질의에서 '대통령실까지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해 다른 업무를 제쳐두고 마약 단속에 집중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마약 관련 형사들을 투입한 것은 제 지시가 맞는다"며 "지난 7월부터 마약을 특별 단속했고 국회에서도 특별 대책을 수립하라고 했었다. (이번) 핼러윈 데이에서 마약이 문제가 되면 안 된다는 깊은 인식이 있던 것이 사실"이라고 답했다.
민주당 전용기 의원은 "정부 기조가 마약 적발 실적에만 있다 보니 경찰은 13만 인파가 모인 축제를 범죄 단속의 기회로 여겼던 것"이라며 "대통령실부터 서울시, 용산구, 일선 경찰서에 이르는 지휘 계통의 어느 한 곳에서라도 역대급 인파의 안전 관리에 생각이 미쳤다면 막을 수 있는 참사였다"고 지적했다.
경찰청은 "윤희근 청장이 취임한 이후 '국민체감 약속 2호(마약척결)'를 발령했고, 이에 따라 8월 25일 기존 8월부터 10월까지 예정돼 있던 마약류 범죄 집중 단속 계획을 연말까지 연장하는 내용으로 재수립한 것"이라며 "미국 마약단속청(DEA) 교육은 최신 마약류 범죄 수사기법 등 공유를 위해 9월 15일 자체 계획에 따라 진행한 내용"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당시 이태원 핼러윈 관련 배치된 형사들은 사고 발생 전에는 소매치기, 마약류 범죄 예방 등을 위한 가시적인 형사활동을 진행했다"며 "사고 발생 인지 후에는 모든 형사 인력을 사고 현장으로 재배치해 CPR 실시, 구급차 이동로 확보 등 사상자 구호 조치를 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