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정수 >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가 발의한 법률안 가운데 단 한 건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쏟아집니다. 언론은 각종 숫자를 제시하며 야당의 발목 잡기를 지적하고, 여당은 이를 바탕으로 공세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실인지 분석해봤습니다.
◇조태임 >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의 발언이 있었어요.
◆ 선정수 >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4일 비상대책위원회 회의에서 "국민의 힘으로 정권이 교체되고 새 정부가 출범했지만, 민주당의 사실상 대선불복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정부 출범 후 6개월 동안 정부가 국회에 제출한 법안이 모두 77건인데 1건도 본회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87년 헌법 이후 이런 일은 처음이라고 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조태임 > 새 정부 출범 이후 6개월 동안 정부가 발의한 법안이 단 한 건도 통과되지 못한 것은 87년 헌법 제정 이후 처음이다? 이 말 대로면 심각한데요. 사실입니까?
◆ 선정수 > 네 제가 국회의안정보시스템을 통해 검증해봤는데요. 사실입니다. 현행 헌법은 1987년 제정됐구요. 이 헌법에 따라서 대통령 직선제가 부활되면서 1988년 노태우 정부가 출범합니다. 이후 윤석열 대통령까지 8명의 대통령이 새정부를 출범시켰는데요. 새정부 출범 이후 6개월 동안 새정부가 발의한 법안이 단 하나도 통과되지 않은 적은 없었습니다.
◇조태임 > 그럼,,,우리가 비교를 해봐야 하잖아요. 예전에는 어땠는지, 간략하게 역대 정부 사례를 확인해보죠.
◆ 선정수 > 출범 이후 6개월 동안 노태우 정부는 4건의 법률안을 제출했고 이 가운데 2건이 통과됐습니다. 김영삼 정부 즉 문민정부는 21건 발의해 18건이 통과됐습니다. 김대중 정부, 국민의 정부는 43건을 발의해 8건이 통과됐고요. 노무현 정부, 참여정부는 35건 발의, 5건 통과입니다. 이명박 정부 47건 발의 1건 통과, 박근혜 정부 70건 발의 9건 통과, 문재인 정부 160건 발의 12건 통과입니다.
◇조태임 > 지금까지는 이명박 정부 때 단 한 건 통과된 것이 가장 적은 기록이었네요. 건수는 그렇다치고, 비율로도 한번 따져볼게요
◆ 선정수 > 김영삼 대통령 문민정부가 85.7%, 노태우정부 50%, 김대중 대통령 국민의 정부 18.6%, 노무현 대통령 참여정부 14.3%, 박근혜 정부 12.9%, 문재인정부 7.5%, 이명박 정부 2.1%, 윤석열 정부 0% 이렇게 됩니다.
◇조태임 > 김영삼 정부때는 굉장히 높고요. 노태우 정부도 꽤 높고…나머지는 10%대, 10%미만…많이 낮네요. 이유가 있나요?
◆ 선정수 > 노태우 김영삼 박근혜 정부를 빼고는 모두 대통령 취임 당시 여소야대로 출발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집권여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국회 주도권을 쥐지 못한 상황에서 당연히 야당은 정부에 협조적이지 않죠. 야당의 존재 이유가 집권당과 정부를 견제하면서 차별점을 부각시키는 것이니까요.
◇조태임 > 새 정부가 출범 이후 발의한 법안이 6개월 동안 단 한 건도 통과되지 않았다는 말은 사실이네요. 그런데 '여소야대 상황에서 정부가 발의한 법안이 통과되는 비율은 그다지 높지 않다' 이렇게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선정수 > 네 그렇습니다. 문재인정부 출범 초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정부 출범 당시 더불어민주당은 119석에 그쳤습니다. 문재인 정부는 집권 초기 6개월 동안 160건의 법안을 발의했지만 12건 통과됐습니다.
◇조태임 > 당시 야당은 새누리당이었잖아요. 지금 여당인 국민의힘 전신인데요.
◆ 선정수 > 네 여소야대 상황에선 정부가 내놓은 법안에 야당이 쉽게 동의할 이유가 없죠. 문재인정부 초기 6개월 동안 통과된 문재인정부 발의 법안을 살펴보면요. 선박안전법, 관광진흥개발기금법, 해외농업∙산림자원개발협력법, 산림기본법은 정부가 제출한 원안 대로 가결됐구요. 산림자원법(2건), 자원재활용법, 폐기물관리법, 석면안전관리법, 수상레저안전법, 농업협동조합법, 국유림법은 대안으로 반영됐습니다.
◇조태임 > 주로 여야간 정치적 쟁점이 아닌 환경, 안전, 산림 관련 법안이군요.
◆ 선정수 > 그렇습니다. 국회는 국민의 의사를 받들어 법을 만들라고 만들어 놓은 입법부 아닙니까? 법을 만들어야죠. 정치 쟁점이 되지 않는 법들은 먼저 처리하는 것이 새 법을 기다리는 국민에 대한 도리인 것 같습니다.
◇조태임 > 저도 기억이 나는게 그때 여소야대 극복안으로 연정 얘기도 나왔었고요. 그 다음으로 일단 쟁점이 적은 법안부터, 대선 때 공약이 겹쳤던 부분부터 법안을 처리하겠다고 했었거든요.
말 나온 김에 법률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한번 살펴보죠.
◆ 선정수 > 우리 헌법은 국회의원과 정부가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다고 규정합니다. 국회의원이 법률안을 발의하려면 국회의원 10인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합니다. 이걸 의원발의 법안이라고 부르고요. 정부도 법률안을 제출할 수 있습니다. 정부발의 법안이라고 부릅니다.
◇조태임 > 지금이 21대 국회란 말이죠. 1년 반 정도 지났는데요. 법률안 통과 현황을 좀 살펴볼까요?
◆ 선정수 > 네 21대 국회는 2020년 5월30일 임기가 시작됐는데요. 의원발이 법안은 모두 1만6443건이 발의됐습니다. 이 중 3990건이 법률에 반영됐습니다. 277건은 폐기되거나 철회됐구요. 1만2453건이 계류 중입니다. 24.2%만 법률에 반영된 셈이네요.
정부 발의 법안은 572건 있었는데요. 278건이 법률에 반영됐구요. 나머지는 계류 중입니다. 48.6%가 법률에 반영된 거죠.
◇조태임 > 정부 발의 법안이 법률에 반영되는 비율이 높네요. 그럼 임기가 종료된 20대 국회를 살펴볼까요?
◆ 선정수 > 워낙 많은 법안이 쏟아지고 있어서 사실 발의된 법안이 법률에 반영되는 비율은 굉장히 낮은 편입니다. 2016년부터 2020년까지가 임기였던 20대 국회에서 제출된 의원발의안은 모두 2만1594건 입니다. 이 가운데 6608건이 법률에 반영됐습니다. 30.6%입니다. 정부발의 법안은 572건이 국회에 제출돼 278건이 법률에 반영됐습니다. 48.6%입니다. 정부 발의 법안이 의원발의 법안보다 반영되는 비율이 높기는 합니다.
◇조태임 > 왜 정부 법안이 의원 발의 법안보다 반영 비율이 높을까요?
◆ 선정수 > 아무래도 정부가 제도를 운영하면서 미비점 등을 개선하기 위해 발의하는 것이고, 규제심의절차, 입법예고절차 등을 거쳐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있고 정부가 법률안을 발의하기 전에 국회 상임위 등 여러 경로를 통해 다양한 이해관계자 조율 과정을 거친 뒤에 발의하기 때문에 반영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죠.
◇조태임 > 아무래도 실무자들이 집행을 해 보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법안들이다 보니 더 통과비율이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통과된 정부 법안이 하나도 없다는 건 놀랍네요.
그렇다면 의원발의 법안은 어떻습니까?
◆ 선정수 >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6개월 동안 의원발의 법안은 2379건입니다. 이 가운데 법률에 반영된 건 25건입니다. 위원회 발의 법안은 84건이 있었는데요 모두 법률에 반영됐습니다. 정부발의 법률안을 제외한 의원발의, 위원회발의 법률안 중 4.4%만 법률에 반영된 셈이죠.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회 자체가 입법 기능 마비상태에 빠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조태임 > 정부, 여당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몽니를 부린다고 비판하고 있잖아요?
◆ 선정수 > 그렇습니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더불어민주당이 국민이 준 많은 수의 의석을 위기 극복이나 나라 발전에 사용하지 않고 오로지 대선 불복, 정권 발목잡기에 치중하고 있다. 이러한 민주당의 몽니는 다음 총선에서 국민들이 엄중하게 심판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밝혔습니다.
◇조태임 > 그런데 이런 국회 공전 상태가 야당 탓이라고만 할 수는 없는 것 같은데요. 원래 새 정부가 출범하면 허니문 기간이라고 일정 정도 비판보다는 협력관계가 유지되기도 했던 전례가 있기도 하고요.
◆ 선정수 >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새 대통령이 선출되면 국민적인 기대도 높고 국정동력도 왕성한 상태기 때문에 그동안 야당들은 비판을 자제하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윤석열 정부에 들어선 그런 부분이 모습을 감췄죠.
◇조태임 >왜 여야가 이렇게 세게 맞붙을까요?
◆ 선정수 > 소위 '발목잡기'를 하는 다수 야당을 비판할 수는 있습니다. 다만 정부와 여당이 얼마나 정치력을 발휘했는지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상 양당 체제로 굳어진 우리 정치 현실에서 협치를 주도해야 할 주체는 정부-여당입니다. 그런데 대통령과 여당이 협치를 위해 뭘 했는지 기억에 남는 게 없네요. 대통령 취임 이후 제1야당 대표와 처음 만난 게 10월1일 국군의날 행사에서 악수한 게 처음입니다. 그 이후 지금까지 회동을 가졌거나 한 적도 없구요.
◇조태임 > 네 협치를 주도해야 할 책임이 더 많은 쪽은 정부・여당인 게 분명합니다. 그러나 야당 역시 발목잡기로 일관한다면 이 부분 또한 국민들께 좋은 평가를 받기 힘들 것 같아요.
◆ 선정수 > 네 우리 정치 역사가 분명히 입증하고 있죠.
◇조태임 > 이번 사안은 야당만 잘못했다, 여당이 잘못했다. 이것보다 선진적인 정치문화를 위해서는 또 국민을 위해서는 여야 모두 반성해야 할 것 같네요. 지금까지 '모아모아 팩트체크' 선정수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