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과 동년배인 A씨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2007년 회사 동료와 교제를 시작했고, 2년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 이듬해인 2010년 5월 첫째가 태어났다. 기쁨도 잠시, 아들이 어딘가 남다르다는 걸 깨닫는 데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아이를 부르는 진단명은 '중증 자폐성 장애'였다.
첫째가 4살이 되던 해, 또 임신 소식이 찾아왔다. 역시 아들이었던 둘째는 언어 발달이 느리고 말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미숙했다. 처음엔 단순히 또래에 비해 말이 조금 늦는 정도로 생각했다. 아이와 정확한 소통을 하고픈 마음은 '굴뚝'이었지만, 상황이 따라주지 않았다. '언어발달 지연'이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 또는 자폐 스펙트럼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보도를 보면 A씨는 덜컥 겁이 났다.
남들보다 더 많은 공을 들여야 하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벅찰 때가 많았다. 그래도 당장 일을 그만두고 싶지는 않았다. 시아버지를 한 지붕 아래 모신다는 것도 알게 모르게 심적 부담이 됐다. 직장 일도, 육아와 봉양도 모두 잘 해내고 싶었지만 이른바 '슈퍼맘'은 A씨의 현실과 너무 멀었다. 매일 쌓여가는 스트레스를 어쩌지 못해 소소한 물품들을 '지르는' 것으로 맘을 달랬다. 일상의 숨통 같았다.
A씨 본인이 매달 버는 250만 원, 남편으로부터 받는 250만 원을 합쳐 약 500만 원으로 살림을 할 때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도저히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없겠다는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오자 직장을 유지하는 것도 사치로 여겨졌다. 2015년 봄, A씨는 회사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둘째를 낳은 지 약 2년 만이었다.
퇴사는 경제적 문제를 동반했다. 반년 간 실업급여 월 120만 원을 받았지만 역부족이었다. 남편이 주는 생활비 외 수입이 전혀 없다 보니 할부금 납부도 쪼들리는 상태가 됐다. 외벌이인 남편에게 짐을 지우고 싶진 않았다. 방도를 찾다 생각해낸 게 '카드론'이었다. 2017년 말 시중카드로 600만 원 상당의 서비스를 받아 메꿨으나 그때뿐이었다. 할부대금 등 고정지출에 카드론 이자까지 붙자 곡소리가 절로 났다. 결국 그는 1년도 안 돼 리스금융회사에서 1300만 원을 빌려야 했다.
빚은 빚을 불렀다. A씨는 남편이 이 사실을 알게 될까 노심초사했다. 채무 문제가 드러나면 불화가 생길까 두려웠다. 혼자 해결해야 한단 일념으로 대출을 계속하던 중 2020년 셋째 딸을 출산했다. 작년 말에는 거의 연이어 생긴 넷째 아들을 낳았다. 양육비는 자연히 배가 됐다. A씨는 본인 명의로 된 아파트를 담보로 대부업체에서 9천만원을 대출받기에 이르렀다.
육아 스트레스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채무가 A씨를 짓눌렀다. 설상가상 대부업체는 변제 독촉을 하며 '집으로 찾아가겠다'고 했다. 물러날 곳이 없었다. '나홀로' 극단적 선택을 염두에 뒀던 그는 남겨질 남편의 부담을 염려해 아이들과 함께 목숨을 끊기로 결심했다.
이에 A씨는 지난 7월 말 주거지에서 수면유도제를 소분해 아이들이 먹는 약통에 담았다. 감기약이라고 속여 복용시키고는 자신도 준비된 약을 털어 넣었다. 네 아이가 잠드는 모습을 보고 번개탄에 불을 붙였지만, 아이들은 연달아 깨어나 울었다. 정신이 번쩍 든 A씨는 즉시 방문을 열고 번개탄에 물을 부어 불을 껐다.
지난 14일 대전지법 천안지원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이 선고된 A씨의 범행 전말이다. 살인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피고인이 집행유예를 받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실행 도중에 중단했다 해도 살인의 고의 자체는 인정된 사실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재판부는 사건 범행이 자의에 의한 중지미수라기보다는 "범죄를 완수함에 장애가 되는 사정에 의해 중지했다고 평가함이 타당하다"고 봤다.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약 4개월 동안 조사와 준비가 이뤄진 '계획적 범행'이란 측면에서도 죄질이 나쁘다고 판단했다. 피해자인 자녀들이 생후 7개월~만 12세 등으로 연소해 스스로를 보호할 방어능력이 없었다는 점도 지적했다.
A씨에 대해 "모친으로서 어떤 힘든 상황이 닥치더라도 이를 감내하고 가정을 지탱해 나가면서 자녀들을 보호하고 제대로 양육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질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만 법원은 이번 사건이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는 점과 별개로 참작하지 않을 수 없었던 A씨의 사정을 판결문에 분명히 명시했다. 재판부는 A씨의 신속한 화재 진화와 구호조치로 아이들이 어떤 상해도 입지 않았음을 가장 유리한 양형조건으로 제시했다.
동시에 "피고인이 사건 전까지 홀로 중증의 장애가 있는 첫째를 포함해 4명의 자녀를 돌봐야 하는 힘든 상황에서도 지극정성으로 피해자들을 양육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이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게 된 것 역시 본인을 위한 사치로 인한 것이라기보단 자녀들을 양육하는 과정에서 생활비를 다소 과다하게 사용한 것이 주된 원인으로 보인다"고 짚었다.
A씨가 중증 장애와 일종의 인지장애를 지닌 아들 둘을 비롯해 넷이나 되는 자녀를 사실상 '독박 육아'해왔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채무 관련 소비가 양육 관련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단 점도 들었다. A씨는 법정에서 선고를 듣는 내내 눈물을 흘린 것으로 알려졌다.
발달장애 아동을 키우는 엄마들의 비극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올해만 해도 지난 5월 40대 여성이 6살짜리 발달장애 아들과 추락사한 채 발견됐고, 같은 날 인천 연수구에서는 대장암 말기 판정을 받은 60대 여성이 딸(39)에게 수면제를 먹여 숨지게 하고 자신도 극단적 선택을 하려다 미수에 그쳤다. A씨 또한 채무라는 요인이 껴있긴 했으나 근본적으로 비(非)장애아동 가정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돌봄부담이 크게 작용했으리란 분석이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강선우 의원실이 지난 9월 발달장애인 가족 43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주 돌봄자인 가족 59.8%가 극단적 선택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장애 유형별로는 A씨와 같은 자폐성 장애인의 가족(77.2%)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가족들은 '평생 발달장애 자녀(가족)를 지원해야 하는 부담감'(56.3%)을 원인으로 꼽았다. '발달장애 자녀 지원으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어려움'(31.1%)도 뒤를 이었다.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등 관련 단체는 지역사회 내 '발달장애인 24시간 지원체계'가 구축돼야 구조적 죽음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최근 2년간 비슷한 사례가 최소 20건에 달한다고 추산한다.
자폐성 장애 등 발달장애는 특히 가족의 돌봄이 절대적이다. 보건복지부의 '2020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자페성 장애는 57%가 일상생활에서 대부분 또는 거의 남의 도움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전체 장애인(14.9%)보다 배로 높은 수치다. 일상생활을 부모에 의존한다는 비율(76.3%)도 장애인 평균(20.8%)보다 훨씬 높았다. 남편과 같은 회사에서 동일임금을 받던 A씨가 자발적으로 '경력 단절'을 택해야 했던 배경이기도 하다.
전문가들은 A씨의 범행 자체는 절대 옹호될 수 없다는 점을 전제하면서도 그를 궁지로 내몬 환경과 지원 사각지대에 주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이봉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A씨 같은 경우에는 보호자의 양육부담이 일반 아동에 비해 훨씬 더 커진다. 신체적 부담뿐 아니라 정서적·정신적인 부담까지 상당히 높아지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또 "증상이나 상태에 따라 다를 수는 있지만 보통 성인 한 사람이 발달장애 아동에게 붙어 1 대 1 수준으로 24시간 케어가 필요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선진국에서는 (부모 등 가족이) 잠시 돌봄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힐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양육 자체를 대신해주는 서비스도 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특히 장애를 가진 아동 양육자에 대해서는 단순히 경제적 문제, 어떤 신체적 돌봄의 문제뿐 아니라 정서적 부담, 피곤을 완화할 수 있도록 하는 지원책이 필요한데 지금 상당히 허술한 상태"라고 지적했다. 돌봄대상뿐 아니라 그를 돌보는 '케어러'에 대한 세부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익중 교수도 "보통 우리 복지 시스템이 신청주의에 기반하고 있다 보니 경제적으로 완전히 추락하지 않은 경우, 필요한 지원과정을 놓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비장애 아이도 4명을 키우기는 어렵지 않나. 이런 경우는 장애아에 대한 개별적 지원보다 가족 전체를 보고 사례관리를 지원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A씨에게 40시간의 아동학대 치료강의 수강명령이 내려진 것을 두고 "배우자가 선처만 호소할 게 아니라 이런 가정은 피고인이 아닌 부모도 관련 교육을 강제하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며 "(남편이) 생계에만 집중했다고 할 수도 있지만 양육의 공동 책임을 지지 않았기 때문에 방임으로 볼 수도 있다. 형사처벌이 아니라 (사건 관련) 책임을 같이 져야 한다는 것"이라고 언급했다.
지자체에서 반기 또는 1년에 한 번은 발달장애 아동이 있는 가정을 전수 방문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왔다.
대구대 사회복지학과 조한진 교수는 "아프리카 속담에 '한 아이를 기르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 아이가 꼭 비장애아일 필요는 없는 것 아닌가. 장애아동의 돌봄부담을 부모가 진다 해도 대개는 어머니에 국한되는데, 어머니한테만 둘 것이 아니고 공적 돌봄 시스템이 필요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관할 복지전담 공무원이 아무리 부족하다 해도 발달장애 가족 수만큼 적지는 않다. 바람직하게는 분기마다 한 번씩, 어렵다면 반년이나 1년에 한 번씩 가정방문이 필요하다 본다"며 "대개 발달장애아가 있는 집은 그런 서비스를 물어보거나 신청하러 가기도 힘들다. '전화라도 하면 민원을 처리해주겠다' 정도가 (진짜) 찾아가는 서비스 아니겠나. 그러면 이런 안타까운 일을 훨씬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