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년 10월 26일 중국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의 거대한 풍채가 전주 한옥마을 앞 빵집에 나타났다. 이 집의 명물인 초코파이를 사려는 사람들은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우두커니 서 있는 높이 3m 안중근 의사 동상으로 시선을 옮긴다.
강동오 풍년제과 대표(56). 후백제의 왕도이자 조선왕조 500년 발상지인 전북 전주 한옥마을 주변 자신의 가게에 '안중근 장군 기념관'을 꾸렸다.
강 대표는 지난 2008년 3월 26일 중국을 찾았다. 빵을 중국에 마케팅하기 위한 첫발을 디딘 그는 여순 감옥소를 찾았다. 안중근 의사의 사형이 집행되는 날이었다.
안중근 의사가 머물던 감옥소를 보니 "참 훌륭하신 분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5년 다시 사업차 향한 중국에서 안중근 평화재단 청년 아카데미 이진학 이사장을 우연히 마주했다. 밤새 술잔을 기울이면서 한국으로 돌아가 안중근 의사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겠다고 다짐했다.
처음 중국 땅을 밟고 10년만인 2018년 3월 26일 전주시 한국은행 주변에 '안중근 장군 기념관'을 만들었다. 커다란 동상은 중국에서 제작해 가져왔다. 자치단체의 지원을 받지 않고 개인이 안중근 의사를 기념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것은 아주 드문 일이다.
기대와 달리 기념관은 건물 지하에 있었고 설상가상 코로나19 탓에 발길이 뚝 끊기면서 세간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후 강 대표는 지난 8월 12일 전주 한옥마을 앞에 건물을 매입한 뒤 일부는 가게로 쓰고 나머지는 '안중근 장군 기념관'으로 채웠다.
조선왕조의 마지막 황손 이석 씨가 '안중근 장군 기념관'의 명예 관장을 맡았다. 3층에는 사무실도 마련됐다. 카페가 겸비된 빵집은 자투리 공간마다 안중근 의사가 쓴 글이 걸려 있다. 중국 여순 감옥소를 재현한 공간과 학생들이 만든 안중근 의사의 예술 작품이 벽을 채우고 있다.
'안중근 장군 기념관'을 세운 비결은 뚝심과 따뜻한 마음이었다. 광주 출신인 강 대표는 빵과 함께한 세월만 30년이 넘었다. 2006년 전주에서 풍년제과를 인수하고 당시 망해가던 회사를 수출로 발을 넓히며 일으켜 세웠다.
스승인 친형의 도움으로 빵의 세계에 입문한 그는 전국 최초 부녀 기능장이다. 풍년제과 직원 60%는 장애인이다. "각자 잘하는 분야가 있기에 맞는 것을 찾아줘야 한다"는 그는 사회 공헌 활동도 왕성한데, 주변에는 알리지 않는다.
우리 밀로 만든 초코파이를 가지고 전북 명장 1호를 꿈꾸고 있는 강 대표.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가 없듯 한옥마을을 찾는 지역민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안중근 아카데미 등 프로그램 운영을 구상하고 있다. 제2, 제3의 안중근 장군이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