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터넷 매체와 유튜브 채널이 '핼러윈 참사' 피해자 명단을 유족 동의 없이 공개해 공분을 사고 있다.
15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각종 시민단체이 "명백한 2차 가해"라며 명단 공개자들을 겨냥한 형사 고발을 이어가고 있지만, 법조계에선 "형사 처벌은 어렵다"는 관측을 내놓았다.
다만 전문가들은 1차적으로 자료를 유출한 개인정보 담당 공직자에겐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1차 유출로 희생자에 대한 2차 피해가 발생하더라도 실명을 공개한 매체들을 형사적으로 처벌하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목소리를 모았다.
지난 14일 인터넷 언론 '민들레'와 유튜브 채널 '더탐사'는 '이태원 희생자, 당신들의 이름을 이제야 부릅니다'라는 제목으로 핼러윈 참사 사망자 155명의 명단을 공개했다. 명단에는 국내외 희생자 이름이 모두 적혔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공개 당시 기준 사망자는 총 158명으로 집계됐으나 명단은 그 이전에 작성돼 반영되지 않았다. 이들이 유족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희생자들의 실명을 공개하면서 '2차 가해' 논란이 거센 상황이다.
이들은 공개 이유를 두고 "많은 시민들을 분노케 한 상황에서 희생자들의 실존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최소한의 이름만이라도 공개하는 것이 진정한 애도와 책임 규명에 기여하는 길이라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부 유족이 강하게 반대의사를 표시하면서 현재 10여명의 이름이 지워진 상태다.
일각에서는 유족의 동의 없이 희생자들의 실명을 공개한 매체에 대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공분의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두 매체에 대한 형사고발도 검찰과 경찰에 이어지고 있다.
법조계 "매체에 법적 책임 묻긴 어려워…정보 제공한 공무원은 가능"
다만 법조계에서는 이들에 대한 형사처벌 가능성은 낮다고 관측한다. 문제라고 지적하는 지점 중 하나가 사망자의 신상을 유족의 동의 없이 유포했다는 건데,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서는 사망자의 신상 정보를 '개인정보'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또 해당 법은 공공기관·법인에서 근무하는 개인정보처리 담당자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민들레'와 '더탐사'는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최경진 가천대학교 법학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 통화에서 "현행 개인정보보호법에서는 사망자의 정보를 개인정보로 보지 않는다"며 "법상으로는 사망자의 이름이 개인정보가 아니기 때문에 법 적용 조차 어려운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다만, 최 교수는 이들 매체가 확보한 자료에 유족의 개인정보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면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보통 소방·구청·경찰 등 공공기관에서는 희생자와 유족의 개인정보를 데이터베이스화 해서 같이 관리한다"며 "그러한 자료가 공개됐을 경우엔 법에서 인정하는 개인정보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살펴볼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들 매체에 개인정보보호법을 적용해 수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이는 이들에게 자료를 제공한 공무원을 겨냥한 법안이다. 해당 법률은 개인정보 보안 책임이 있는 공공기관 법인의 '개인정보 처리자'에게 적용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개인정보 책임자가 이를 타인에게 무단으로 제공한 것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범한 법무법인YK 변호사는 "희생자 명단은 공공기관에서 담당자가 유출했을 가능성이 큰데 이 경우 공무상 비밀누설죄를 적용할 여지가 있다"고 설명했다.
최경진 교수 또한 "공무상 비공개로 결정한 정보를 무단으로 공개한 경우 해당 법률이 적용될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이름과 같은 정보는 정보 공개 요청 시에도 '개인 정보'에 해당돼 가려진 채 회신 받는 경우가 많다. 사망자의 이름도 '비공개 정보'로 취급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시민단체 사법시험준비생모임의 권민식 대표 또한 "희생자 명단을 만들 수 있는 사람들은 공무원밖에 없어 보인다"며 "그래서 해당 문서를 만든 대상으로 한정해서 공무상 비밀누설죄로 고발하게 됐다"고 밝혔다.
2차 피해 우려 더 커졌지만, 형사 책임 묻긴 어려워
지난 13일 이들이 희생자의 이름을 공개한 뒤, 추가적인 2차 피해 우려도 큰 상황이다. 실제로 참사 이후 SNS,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놀러 갔다 죽은 거 아닌가' 등 희생자를 비난하거나 모욕하는 글들이 게시되고 있다. 특히 실명 공개로 유가족이 겪을 2차 가해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이 또한 형사적 책임을 묻긴 어렵다는 것이 법조계 중론이다.
명예훼손 혐의는 살아 있는 자의 명예를 해치는 행위로 '공연성'과 '비방할 목적'이 요건으로 담겨 있어야 한다. 사자(死者)명예훼손 혐의 역시 현행법상 비방할 목적으로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만 성립한다고 규정돼 있다.
다만 민사상의 손해배상 소송을 통해 피해 구제를 받을 여지는 있다고 설명한다. 김범한 변호사는 "유족의 동의 없이 명단을 공개한 것 만으로도 도의적으로 문제가 되는 행위이고, 이로 인해 유족이 겪을 정신적 충격 등 손해가 뚜렷하게 보이기 때문에 충분히 제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