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핼러윈 참사'와 관련해 현재까지 경찰 특별수사본부(특수본)에 입건된 인물 중 상당수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받고 있는 가운데, 해당 혐의 입증 여부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입증을 위해선 '과실', '예견가능성', '인과관계' 등이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입건된 경찰·소방·구청 등의 지휘부가 상황에 대한 사전·사후 보고를 받고 인지를 했음에도 적절한 지휘를 했는지를 따지는 것이 위 세 가지 요건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증거로 작용할 것이라 분석했다.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입증 쟁점 ①과실 ②예견가능성 ③인과관계
12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특수본에 입건된 용산구청장과 용산소방서장, 전 용산경찰서장과 용산서 정보과장 등 4명의 공통 혐의는 '업무상과실치사상'이다. 업무상 주의 의무를 소홀히 해 많은 시민들이 상해를 입거나 사망에 이르게 했다면 이 혐의에 해당한다. 해당 혐의를 받던 용산서 정보계장의 경우 숨지면서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가 입증되기 위해선 크게 3가지 요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실', '예견가능성', '인과관계' 여부가 그 요건이다. 가장 먼저 '과실(주의 의무 위반)이 존재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업무 당사자들은 업무상 이행해야 하는 '주의 의무(위험발생 방지의무)'가 존재하지만 그러한 의무를 다하지 않았을 때 '과실'이 존재한다고 본다.
김남근 참여연대 정책자문위원장은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과실을 논하는 데 있어서는 법률이나 조례상의 의무를 따진다"며 "경찰의 경우 경찰관직무집행법상 혼잡 상황 등에서 위험 여부를 인지할 경우 위험 발생 방지조치를 해야 할 의무가 존재하는데, 그 조치를 하지 않았다면 과실이 존재한다고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용산소방서장이나 용산구청장의 경우엔) 재난안전관리법상 사회적 재난의 위험을 인지한 경우 통행제한 긴급이동명령 등을 해야 되는데, 하지 않았다면 과실이 존재한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과실과 더불어 중요한 요건은 '예견가능성'이다. 예견가능성은 위험발생 방지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과실을 행한 이가 자신의 과실이 사고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예측할 수 있었는지 여부를 뜻한다.
통상적으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입증이 어려운 이유는 예견가능성 때문이다. 피의자가 자신의 업무상 과실이 사상 및 사고를 낳을 수 있다고 예견했는지 여부를 객관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어려운 탓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이번 참사의 경우 예견가능성이 충분했다고 보고 있다.
이창민 민변 10·29 참사 TF 공동간사 변호사는 "참사 직전까지 112신고가 11차례나 있었고, 작년까지만 해도 핼러윈 축제 안전사고 대비를 해오지 않았냐"며 "안전사고 우려를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이고, 쉽게 예견 가능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과관계' 또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입증의 중요한 요건이다. 업무상 과실이 원인으로 작용했고 사상이라는 결과가 발생했으며, 그 원인과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요건들을 입증하기 위한 핵심은 '보고 및 인지' 여부와 시점을 따지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입건된 경찰·소방·구청 등의 지휘부가 상황에 대한 사전·사후 보고를 받고 인지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적절한 조치를 내리는 지휘를 했는지를 따지는 것이 위 세 가지 요건을 판단하는 데 중요한 증거로 작용할 것이라 봤다.
세월호·일본 효고현 참사…유사 사고 판례는?
국내외에서 벌어진 비슷한 참사들의 경우에도 경찰 및 공무원의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해당 요건들을 중점적으로 따졌다.
세월호 참사 당시 현장 지휘관이었던 해경 123정 정장 또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가 입증돼 징역 3년을 선고 받았다. 법원은 해당 정장이 승조원 임무 배치나 승객 퇴선 유도 등의 조치 등 업무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인정되며, 그 과실로 인해 참사 희생자들이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었다는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성수대교 붕괴 사고 당시에도 관련 공무원들의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가 입증된 바 있다. 이창민 변호사는 "성수대교 붕괴 참사 당시에도 대법원은 교량의 유지·관리 책임을 맡고 있던 공무원들에게 교량 제작 시공자들과의 공동책임이 존재한다는 판결을 내렸다"고 밝혔다.
실제로 대법원은 성수대교 같은 교량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공무원들이 제작·시공 상의 감독을 철저히 하고, 유지·관리를 했어야 한다는 판단을 내렸다. 이러한 의무를 철저히 하지 못한 과실이 합쳐져 교량이 붕괴될 수 있다는 사실은 쉽게 예견 가능하기 때문에, 공무원들 또한 붕괴에 대한 공동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판단이었다.
외국 또한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를 입증하는 데 있어 비슷한 요건들을 따진다. 240여 명의 사상자를 낳은 일본 효고현 참사 또한 마찬가지였다. 2001년 일본 효고현 아카시시 불꽃축제에서 발생한 압사사고와 관련해서도 혼잡경비 업무를 담당하는 경찰관 간부가 금고 2년 6개월의 실형을 받았다.
양성우 민변 10.29 참사 TF 공동간사 변호사는 "(해당 경찰관은) 참사 발생 직전에 (압사 우려에 대한) 신고가 수차례 있었을 뿐 아니라 기동대 등 추가인력 요청이 있었지만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았다"며 "해당 경찰관이 업무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한 과실이 인정된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일본 최고재판소는 "혼잡사고의 원인이 될 수 있는 사정 등울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혼잡방지를 위한 효과적인 방안(대책)이 마련되지 않았다"며 과실과 예견가능성이 있었음을 지적했다. 또 "혼잡경비를 담당했던 경찰 간부의 경우 (혼잡 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았음에도 아무런 조치도 강구하지 않았다"며 "만약 그 즉시 기동대 출동조치를 했다면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고 과실과 사망 간의 인과관계 또한 인정했다.
한편 특수본이 경찰청장과 서울청장을 상대로 강제수사에 착수하면서 향후 수사의 종착점이 경찰 수뇌부로 향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윤희근 경찰청장과 김광호 서울경찰청장 또한 입건된다면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가 적용될 전망이 우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