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범야권이 여당의 반대에도 핼러윈 참사 관련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면서 국민의힘의 고심이 깊어졌다. '경찰 수사가 우선'이라는 기조를 고수하며 반대 입장을 재확인했지만, 의석 수를 앞세운 야권이 추진하는 국정조사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 만큼 내부적으로는 참여여부는 물론 시기, 범위 등에서 계산기를 두드리는 모양새다.
9일 민주당과 정의당, 기본소득당은 '용산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 의안과에 제출했다. 요구서에는 대통령실부터 국무총리실, 행정안전부, 경찰청, 소방청, 서울시, 용산구가 조사 범위에 포함됐다. 국정감사와 관련한 법에 따르면, 재적의원 4분의 1이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해 본회의에 상정되면 과반 동의로 요구서를 통과시킬 수 있다.
일단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국정조사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강제력 없는 국정조사는 수사에 지장을 주고 정쟁만 일으킬 뿐"이라며 "수사 진행과정을 보며 부족한 점이 있으면 국정조사를 할 일이지, 지금은 수사가 착착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국정조사를 하자는 것은 의도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동시에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은 이날 핼러윈 참사 현장을 찾아 "젊은 영혼들의 희생 헛되지 않도록 더 안전한 대한민국 우리나라 만들기 위해서 철저 노력 기울여 나갈 것"이라고 말하며 이태원 파출소와 119 안전센터 등 현장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야당이 '정부 책임론'을 제기하며 국정조사를 압박하는 상황에서 독자적인 진상규명과 재발방지 대책 논의 등 자체 행보를 시작한 셈이다.
다만 원내에서는 야당이 국정조사를 밀어붙이면 사실상 손을 쓸 방법이 없는 만큼 국정조사에 참여해 공세에 대응해야 한다는 기류가 부상하고 있다. 국정조사 특위는 조사에 참여하기를 거부하는 교섭단체 의원은 제외할 수 있는 만큼, 야권의 단독 조사를 방관하기보다는 참여해 '실리'를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정하 수석대변인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국정조사가 국회법상 의석수에 따라 처리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그걸 받아서 같이 할지, 야당에서 단독으로 해야 할지 선택의 문제가 있다"며 "의원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할 상황"이라고 참여 가능성을 열어뒀다.
하지만 여전히 국정조사에 참여할 수 없다는 강경론도 비등하다. 비대위 관계자는 "민주당이 진상규명 뜻이 있는 건지 정쟁만 하겠다고 이사람 저사람 불러내 시간 끌면서 '이재명 방탄'을 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며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한 초선 의원도 "핼러윈 참사가 구조적으로 공모된 범죄도 아니고 CCTV와 진술이 다 있는데 무슨 조사를 하겠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며 "국정조사의 필요성을 느끼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국정조사 조사계획서가 의결되는 오는 24일 본회의 전까지 국민의힘이 시기와 범위를 최대한 유리하게 조율하며 국정조사에 참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협상을 통해 국정조사 시기를 예산심사가 끝나는 정기국회 이후로 늦추는 방법도 거론된다. 핼러윈 참사 관련 수사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만큼 국정조사 시기가 늦어지면 '선 경찰조사, 후 국정조사'의 기존 기류에 부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민주당 입장에서도 야당끼리만 국정조사를 협의하기에는 부담스러워 여당 참여를 원할 것"이라며 "만약 협조를 한다면 예산심의가 중요하니 정기국회에 집중한 이후에 하는 방향으로 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