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호승 "택배로 온 슬픔…슬픔의 나눔 필요한 사회"

누구에게나 '슬픔'이 택배처럼 오는 날 있다
연이은 불행의 시대…연대하고 슬픔 공유해야
시는 '영혼의 양식'…한 숟갈로도 배부른 존재
문학관 개관? 시인에게 내려진 '신의 큰 축복'


■ 방송 :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FM 98.1 (07:2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정호승 (시인)

여러분, 오랜만에 제가 좋아하는 시 한 편 읽어드릴게요.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 흘리신다.

중간 생략. (웃음) 수선화에게. 너무나 유명한 정호승 시인의 시죠. 위로의 시인, 정호승 선생이 2년 만에 새 시집을 펴냈습니다. 제목이 슬픔이 택배로 왔다. 등단 50주년 14번째 시집을 낸 정호승 시인, 오늘 화제의 인터뷰에서 만나보겠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선생님.
 
◆ 정호승> 반갑습니다.
 
◇ 김현정> 벌써 50주년이 되셨어요?
 
◆ 정호승> 그러게 말이에요.
 
◇ 김현정> 제가 어디서 보니까 나이를 세다가 충격을 받았다, 그렇게 쓰셨더라고요.
 
◆ 정호승> 저는 안 늙어갈 줄 알았는데. (웃음) 저도 어김없이 노인이 되었고 시간의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것을 절감하게 됩니다.
 
◇ 김현정> 시간의 속도가 화살같이 간다 그러는데 진짜 그래요?
 
◆ 정호승> 맞습니다.
 

◇ 김현정> 아니, 1972년에 등단을 하셨으니까 지금까지 쓰신 시가 몇 편이나 되는지 혹시 세 보셨습니까?
 
◆ 정호승> 1100여 편 정도 됩니다.
 
◇ 김현정> 1100여 편.
 
◆ 정호승> 네.
 
◇ 김현정> 그런데 저는 시를 쓸 줄은 모르지만 저는 시 읽는 걸 굉장히 좋아하거든요. 그러니까 이 시를 쓴다는 건 상당히 유리구슬 같은 감수성을, 아주 예민한 감수성을 유지하면서 쓰는 게 있어야 될 것 같은데 그게 쉽지는 않으실 것 같은데 어떠세요?
 
◆ 정호승> 시는 우리 삶 속에 가득 들어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그 시를 제가 발견할 수 있고 그 발견된 시를 제가 쓰느냐 안 쓰느냐, 그게 문제입니다. 그런데 저는 시인이기 때문에 항상 써야 만이, 시를 써야 만이 그 현재성 속에 있어야만 시인이기 때문에 제가 밥 먹듯이 시를 썼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 김현정> 이런 말씀 하셨더라고요.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올 때마다 책상 앞에 문학은 결사적이어야 한다라는 문구를 붙여놓고 그걸 본다.
 
◆ 정호승>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이거는 그러면 시인의 어떤 숙명 같은 건가요?
 
◆ 정호승> 그렇죠, 시를 쓰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또 다른 분들도 다른 분들이 하시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에 저도 아이고, 시 안 쓰고 살았으면 좋겠다, 이런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그러나 일단 시인으로서의 어떤 삶에 최선을 다하려면 그런 제 마음을 다 바쳐야 된다.
 
◇ 김현정> 다 바쳐야 된다.
 
◆ 정호승> 그렇게 생각을 합니다.
 
◇ 김현정> 취미생활 하듯이 그냥 쓰다 말다가 아니라 써지지 않을 때도,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나는 시인이니까 결사적으로 써야 한다.
 
◆ 정호승> 항상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더 그렇습니다.
 
◇ 김현정> 뭉클하네요. 결사적으로 써야 한다. 우문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마는 그래도 팬 입장에서 궁금해서 지금까지 1000여 편 넘는 작품 중에 제일 아끼는, 시인이 가장 아끼는 작품이라면 어떤 건가요?
 
◆ 정호승> 시를 쓰는 이유 중에는 이제 제 자신이 스스로 위로받고 위안 받을 수 있는 그런 가능성을 열어놓고 시를 쓰기 때문에 먼저 제가 위로받고 그다음에 제 시를 읽는 다른 분들도 위로받고 했으면 참 좋겠다. 위로가 없는 우리 삶은 생각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제 스스로 위로받는 시는 산산조각이라는 시를 제 스스로 위로받고 있습니다. 제가 쓴 시지만.
 
◇ 김현정> 산산조각. 지금 제가 언뜻 떠오르지는 않는데 이게 지난번, 앞에 조금만.
 
◆ 정호승> 마지막 구절은 제가 알고 있는데 제가 제 시를 외우지 못하기 때문에.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을 얻을 수 있지. 산산조각이 나면 산산조각으로 살아갈 수 있지' 그 구절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삶 속에서 산산조각나는 삶을 누구나 어느 특정 개인만이 그런 삶을 사는 것이 아니고 누구나 다 살다가 보면 아, 내 인생이 산산조각이 났구나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럴 때 산산조각을 얻었다고 생각하고 산산조각으로 살아가면 되지 않느냐라는 그런 내용의 시인데 그 시가 저한테 큰 위로를 주고 또 많은 다른 분들도 그 시를 통해서 큰 위안을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슬픔이 택배로="" 왔다=""> 출처: 출판사 창비

◇ 김현정> 이번 시집에도 먹구름에 대한 얘기가 있어요. 먹구름 얘기가 있는데 저는 그거 보면서 구름이 많다라는…
 
◆ 정호승> 구름이 많다.
 
◇ 김현정> 내 인생에 구름이, 먹구름이 엄청 꼈는데 먹구름이라도 많이 가졌으니 얼마나 좋냐.
 
◆ 정호승> 그렇습니다.
 
◇ 김현정> 배가 부르다, 이런 마음. 아니, 그런데 선생님, 이번 시집, 50주년을 맞아서 펴낸 시집인데 제목이 '슬픔이 택배로 왔다.'
 
◆ 정호승> 네, 그렇습니다.
 
◇ 김현정> 아니, 어쩌자고 그 반가운 택배를. 그 택배에다가 슬픔을 배송하신 거예요?
 
◆ 정호승> 제가 배송한 게 아니고 저는 원한 것은 아니죠. 아닌데 우리가 택배 문화 속에서 지금 살고 있고 그리고 내가 신청한, 또는 배송을 의뢰한 그러한 제품이 배송될 때까지 기다리는 기쁨, 기다리는 즐거움이 있잖아요.
 
◇ 김현정> 그럼요.
 
◆ 정호승> 그런데 어느 날 저한테 배송된 택배가 슬픔이 택배가 되어 왔다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저 뿐만 아니라 누구한테도 슬픔이 택배되는 날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슬픔이라는 택배는 이별이라는 제품이다. 이렇게 생각되고 그것도 죽음을 통한 이별이라는 택배가 나에게 배송되어 왔다. 그것은 반송도 할 수도 없고 또 누가 보냈는지도 모르고 열어봐도 어떤 슬픔인지 구체적으로 알기도 어렵고 그러나 제가 생각할 때는 결국 인간은 누구나 단 한 번은 죽음이라는 그런, 죽음을 통한 이별이라는 슬픔이라는 택배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런 시를 한번 썼습니다.
 
◇ 김현정> 그 말씀 듣고 보니까 죽음이라는 택배는. 그래요. 어제 온 옷가지나 신발이나 연필은 마음에 안 들면 반송할 수 있는데.
 
◆ 정호승> 그렇습니다.
 
◇ 김현정> 죽음이라는 택배는 그게 나의 죽음이든 가족의 죽음이든 친구의 죽음이든 반송 불가.
 
◆ 정호승> 반송할 수가 없습니다.
 
◇ 김현정> 세상에서 가장 슬픈 택배. 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택배.
 
◆ 정호승> 받을 수밖에 없죠.
 
◇ 김현정> 그렇군요. 그 시를 좀 읽고 나서 더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는데. 선생님, 슬픔이 택배로 왔다 중에 그 시가, 제목이 택배예요, 택배?
 
◆ 정호승> 택배입니다.
 
◇ 김현정> 택배. 시인께서 직접 낭송해 주시는 기회를 좀 주신다면 더 멋있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희가 음악도 준비해 놨거든요. 틀어주시죠.
 

◆ 정호승> 택배.
슬픔이 택배로 왔다.
누가 보냈는지 모른다.
보낸 사람 이름도 주소도 적혀 있지 않다.
서둘러 슬픔의 박스와 포장지를 벗긴다.
벗겨도 벗겨도 슬픔은 나오지 않는다.
누가 보낸 슬픔의 제품이길래
얼마나 아름다운 슬픔이길래
사랑을 잃고 두 눈이 멀어
겨우 밥이나 먹고 사는 나에게 배송돼 왔나.
포장된 슬픔은 나를 슬프게 한다.
살아갈 날보다 죽어갈 날이 더 많은
나에게 택배로 온 슬픔이여.
슬픔의 포장지를 스스로 벗고
일생에 단 한 번만이라도 나에게만은
슬픔의 진실된 얼굴을 보여다오.
마지막 한방울 눈물이 남을 때까지
얼어붙은 슬픔을 택배로 보내고
누가 저 눈길 위에서 울고 있는지
그를 찾아 눈길을 걸어가야 한다. 이런 내용의 시입니다.
 
◇ 김현정> 좋네요.
 
◆ 정호승> 그래서 우리는 슬픔이라는 택배를 안 받으면 좋겠습니다마는 그러나 인간의 어떤 숙명은 그렇지는 않다라고 생각됩니다.
 
◇ 김현정> 너무 좋습니다. 누가 보낸 슬픔의 제품이길래 얼마나 아름다운 슬픔이길래 사랑을 잃고 두 눈이 멀어 겨우 밥이나 먹고 사는 나에게 배송이 됐나. 시인께서 직접 낭송해 주시니까 더 가슴에 와 닿는 시인데 사실은 지금 슬픔에 빠진 이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우리 사회가 코로나로 3년 동안 엄청나게 고통을 받았고 극복하자마자 경제 위기가 왔고 참사가 터지고 너무도 많은 사람이 정말 신음하고 있습니다. 어떤 말로 위로가 될까요?
 
◆ 정호승> 때로는 인간의 불행 앞에 신도 어안이 벙벙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이 시대에 우리 사회 속에서 신도 어안이 벙벙해지는 인간의 불행이 끊임없이 연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그러한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될까. 그냥 마냥 슬퍼만 하고 있어야 될 것인가. 저도 시인으로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고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신의 슬픔이 그것이 죽음을 통한 이별의 슬픔이라 할지라도 당신의 슬픔이 바로 나의 슬픔이다라는 그런 슬픔의 나눔.
 
◇ 김현정> 연대 의식일까요.
 
◆ 정호승> 연대, 공유.
 
◇ 김현정> 공유.
 
◆ 정호승> 공유. 이것이 가장 무엇보다도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의 죽음은 나의 죽음이 아니야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당신의 죽음이, 그 슬픈 죽음이 결코 원하지 않았던 그 죽음이 곧 나의 죽음이다라고 깊게 공유하는 마음, 나누는 마음이 무엇보다도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자식을 보낸 부모의 마음이 아, 나의 마음을 이렇게 공유하고 함께 나누어주는구나 얼마나 큰 위안을 받겠습니까?
 
정호승 문학관. 대구 수성구 제공

◇ 김현정> 참 좋은 말씀입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분명히 지금 많은 신음하고 있는 많은 분들에게 위로가 됐을 것 같고요. 정호승 문학관이 만들어진다고 제가 들었습니다.
 
◆ 정호승> 네.
 
◇ 김현정> 언제인가요?
 
◆ 정호승> 내년 봄에 공식 개관을 하게 되고요.
 
◇ 김현정>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에.
 
◆ 정호승> 네, 제가 초중고등학교 12년 동안 살았던 옛집이 있던 곳입니다. 그래서 저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지만 제 문학관이 개관된다는 것은 저에게 시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큰 신의 축복이다.
 
◇ 김현정> 신의 축복이다.
 
◆ 정호승>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김현정> 겸손한 말씀이십니다. 다시 한 번 축하드리고요. 문 열면 저도 한번 가보고 싶네요. 정호승 시인에게 시란?
 
◆ 정호승> 시는 제가 생각할 때는 항상 영혼의 양식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매일 밥을 우리가 매일 먹어야 되잖아요. 그것처럼 영혼의 양식도 매일 먹어야 된다. 그런데 시는 그냥 단 한 숟갈만 먹어도 배부른 존재다,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 김현정> 저는 완전 공감, 저는 정말 시를 좋아하거든요. 좋은 시 앞으로도 많이 써주시고요.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정호승> 감사합니다.
 
◇ 김현정> 정호승 선생님 고맙습니다.
 
◆ 정호승> 네, 감사합니다.
 
◇ 김현정> 이제 50주년, 등단 50주년 맞으셨습니다. 새 시집을 펴낸 정호승 시인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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