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 국가애도기간이 끝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번 사태와 관련한 문책 인사를 놓고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사고 전후로 대응 문제가 도마에 올랐던 경찰의 수장 윤희근 경찰청장과 '면피성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던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등에 대한 경질론이 거세지고 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조만간 아세안(ASEAN, 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의와 '주요 20개국'(G20) 회의에 참석차 해외순방을 떠날 예정인 만큼 그 전에 경질성 인사를 단행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윤 대통령은 7일 오전 용산 대통령실에서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를 직접 주재한다. 이태원 참사 이후 지난 1일 국무회의에서 "조만간 관계 부처 장관 및 전문가들과 함께 국가안전시스템 점검회의를 개최할 것"이라며 "관계 부처는 잘 준비해 주시기 바란다"고 지시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회의에서 '크라우드 매니지먼트'(crowd management:군중 관리) 등 안전 사각지대를 찾아 관련 대책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특히 대통령실은 이번 '이태원 참사' 때처럼 주최 측이 없는 행사의 경우, 기존의 대응 관행으로는 충분한 안전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하고 있기 때문에 관련 논의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최근 대전 아울렛 지하주차장 화재나 봉화 광산 매몰 사고, 항공기 불시착 등 안전 관련 사건·사고가 많았던 만큼 관련한 대책도 다뤄질 전망이다.
대통령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정부와 지자체, 민간 전문가 그리고 일선 공무원이 함께 참여해 현 재난안전관리체계에 대한 철저한 진단과 평가에 이어 대한민국에 안전한 시스템을 바로 세우기 위한 방안을 숙의하고 토론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태원 참사와 관련한 책임 소재를 가리고, 그에 따른 문책성 인사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가장 책임소재가 큰 인물은 윤희근 경찰청장이다. 참사 전 112신고센터로 이태원의 많은 인파와 압사를 우려하는 신고 전화가 있었지만, 경찰의 대응이 미진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윤 청장이 첫 보고를 받은 시각이 윤 대통령보다도 더 늦었다는 점에서 책임론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윤 청장이 보고를 받았을 당시(30일 00시 14분)에는 이미 윤 대통령의 2차 지시까지 떨어지고 난 이후다.
윤 청장은 한때 카카오톡 배경화면에 '벼랑 끝에 매달렸을 때 손을 놓을 줄 알아야 대장부'라는 뜻의 게송(偈頌)을 올렸다가 삭제했다. 게송은 불교 교리가 담긴 한시의 한 종류로, 이태원 참사 당시 경찰 책임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직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심정을 담은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아울러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에 대한 경질론도 거세다. 경찰청을 관리·감독하는 상위 부처이자, 재난 대응의 핵심 부서이기 때문에 이번 참사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평가다. 또 이 장관은 지난달 30일 브리핑에서 "경찰과 소방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해 불필요한 '면피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윤 청장은 물론, 이 장관 역시 이번 참사로 인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이 장관은 윤 대통령과 충암고 선후배 사이로 최측근 인사이기 때문에 책임론을 피해가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었지만, 참사의 규모가 크고 여론이 좋지 않은 만큼 물러나야 한다는 주장도 힘을 얻고 있다. 다만 이 장관 경질 여부를 두고 고심이 계속되는 것으로 전해졌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 관련 부처 장관이 책임을 지지 않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관심은 윤 대통령의 결단 시기에 쏠린다. 윤 대통령은 오는 10일부터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열리는 아세안 정상회의와 이어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도 참석할 예정이다.
결국 윤 대통령의 결단도 출국 전이 될 것이란 전망이 높다. 이미 이번 참사와 관련한 경찰의 대응 전반을 수사하는 경찰 특별수사본부가 서울경찰청과 용산경찰서 등을 압수수색하는 등 강도 높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스타일상 신중론도 힘을 얻고 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사고 수습을 하는 과정에서 쉽게 경질을 결정하기 쉽지 않은 측면도 있다"고 했다.
이번 주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예산심사와 관련 법안심사, 연말의 내년도 부처 사업계획 수립 등을 고려할 때 행안부 장관을 공석으로 두기 어렵다는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감찰과 수사 결과가 드러나야 책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며 "지금까지와 같이 국면 전환용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도 "경찰 지휘부 책임은 분명하지만 행안부장관까지 한꺼번에 책임을 묻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며 "감찰 결과를 보고 책임 소재를 분명히 가려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다른 관계자도 "대통령의 성향상 누군가에게 정치적인 책임을 지우기보다는 시시비비를 분명히 가려 인사를 단행할 것"이라고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이태원 참사 희생자 추모 미사'에 참석한 뒤 가진 대통령실 참모회의에서 "다시는 이 같은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할 책임이 대통령인 저에게 있다"고 말했다고 김은혜 홍보수석이 서면브리핑을 통해 밝혔다. 앞서 윤 대통령은 4일 조계사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추모 위령법회'에 참석해 "국민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대통령으로서 비통하고 죄송한 마음"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참사에 대한 야권의 정부 책임론이 거세지는 가운데 스스로 국정의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의 책임을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