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여 명의 사상자가 나온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 이후 밀집 공간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지옥철'이란 오명이 붙은 서울 9호선과 2호선, 그리고 김포골드라인 등이 유사한 위험이 재연 가능한 공간으로 꼽힌다.
서울, 경기 등에 인구가 집중된 우리나라 특성상 대다수 국민은 '밀집 사회'를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겨 왔다.
하지만 6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평소 혼잡한 지하철을 이용할 때 위험성을 크게 못 느꼈던 시민들까지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 이후 달라진 인식을 보였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30대 여성 직장인 이모씨는 지난달 29일 발생한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 이후 지하철이 두려워졌다. 그는 출퇴근길에 혼잡한 역사로 꼽히는 2호선 합정역과 신도림역을 두루 거친다. 평소엔 별생각 없이 지나쳤지만, 이젠 사람이 붐비는 모습만 봐도 끔찍한 '압사' 재난 현장이 떠오르는 탓이다. 이씨는 "사고 이후 '아 사람이 많겠네' 의식하게 됐다"며 "나한테 그런 위험이 찾아오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고 말했다.
9호선 노량진역에서 만난 대학생 임현수(22)씨는 "한 번도 압사에 대해서 무섭거나 공포를 느낀 적이 없는데, (이태원 참사) 사진을 보고 처음으로 사람이 되게 무섭다는 걸 느끼고 사람 많은 데는 최대한 자제해야 되겠다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혼잡한 출퇴근 시간대 출입문 앞까지 사람이 꽉 들어차도 다음 열차를 기다리기보다 비집고 들어가는 모습은 여전한 실정이다.
평소 9호선을 타고 출퇴근한다는 김모(31)씨는 "9호선은 급행열차가 있고 인구 밀집 지역인 강서에서 강남까지 직통으로 이어지는 노선인데, 항상 문제가 생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며 "인파를 피하기 위해 잠을 줄여 가면서까지 (붐비는 시간대를 피해) 일찍 출근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개찰구에 들어서면서 확인할 수 있는 상황판에 열차가 곧 도착한다는 알림이 뜨자 이를 놓치지 않기 위해 뛰는 승객들도 눈에 띄었다. 군중이 밀집한 신도림역 승강장에서 급히 뛰어오던 한 승객이 열차에서 내리던 한 승객과 어깨를 부딪치기도 했다.
퇴근 시간대 김포골드라인 김포공항역에서 만난 직장인 한모(31)씨는 "제가 키도 작고 체구가 작아서 (열차 안에서) 껴있으면 진짜 숨쉬기 힘들다"며 "깔려서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종종 했었다"고 말했다.
지하철 내 사람이 붐비면서 발 디딜 틈이 없게 되면 가장 먼저 밀려나는 이용객은 유모차나 휠체어 등 공간을 차지하는 보조기구를 이용해야 하는 교통약자들이다.
오후 4시 20분쯤 아기 유모차를 끌고 9호선 노량진역을 찾은 이지연(39)씨는 "출퇴근 시간은 위험해서 그 시간은 피해 다니는 편"이라며 "그때는 아예 유모차를 넣지도 못한다"고 했다.
서울교통공사는 서울 전동차 1량의 혼잡도 100% 기준을 160명이 탑승한 상태로 상정한다. 이는 54좌석이 꽉 차고 통로와 출입문 쪽에 서 있는 승객이 모두 106명일 때다. 혼잡도가 150%(240명)로 증가하면 서 있기만 해도 서로 어깨가 부딪칠 정도가 된다. 승객이 더 탑승해 170%(272명)가 넘어가게 되면 열차 내 이동이 어렵고 몸과 얼굴이 밀착돼 숨이 막히는 수준에 이르게 된다.
9호선 급행열차의 노량진역에서 동작역 구간 출퇴근 시간대 최대 혼잡도가 185%(2021년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정원이 160명인 한 전동차 내 296명이 탑승했다는 얘기다. 이어 4호선 한성대입구-혜화 구간(150.6%), 2호선 방배-서초(149.4%), 3호선 무악재-독립문(140.6), 8호선 강동구청-몽촌토성(134.1%), 5호선 길동-강동(132.2%), 7호선 중곡-군자(127%) 순으로 혼잡도가 높다.
한편 2량짜리 김포골드라인은 양촌역에서 구래역 등을 거쳐 김포공항역까지 23편성으로 운행하는 노선이다. 김포골드라인은 출퇴근 시간대 1량당 정원이 172명인 전동차에 승객이 최대 280여명에 육박할 정도로 붐빈다.
김포시는 지난해 6월부터 출근 시간대 혼잡률 완화를 위해 김포공항행 골드라인을 양촌역이 아닌 구래역에서 출발시켜 운행 시간을 일부 단축하고 있다. 또 출퇴근 시간대에는 역무원과 공공근로자 등을 통제 요원으로 각 역사마다 1명~6명씩 배치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사람이 밀집하는 지하철 역사의 경우 압사사고 위험을 간과할 수 없다며, 미리 대비할 필요가 있다고 입을 모은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보통 1㎡당 3명이 적당하고 6명이 되면 위험하고 10명이 되면 압사 위험이 있다"며 "적정한 수준으로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채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서울 지하철의 전동차 1량의 입석 면적이 약 41.9㎡(약 12.7평)인 것을 고려했을 때 180명 정도가 타는 게 적정한 수준이고, 혼잡도가 190%일 때 위험할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 이번 이태원 핼러윈 압사 참사를 계기로 밀집 사회에 익숙한 시민의식을 되돌아보고, 관계 기관의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포골드라인 김포공항역에서 퇴근 시간대 통제 요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이창한(25)씨는 "순서 안 지키고 급하게 타려고 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그것 통제하는 일을 하고 있다"며 "다음 열차 타려고 기다리시는 분들이 옆으로 나와 계시는데, 뒤에 온 분들이 이를 밀치면서 (승차하려고 해) 문제가 일어나는 경우가 있다"고 어려움을 전했다.
공하성 우석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출퇴근 지하철 등 밀집도가 높은 곳에서의 생활이 너무 익숙하다 보니까 이 정도 밀집한 상황에서 그렇게 위험성을 느끼지 못하는, 망각해버린 영향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며 "시민의 안전의식을 다시 한번 되돌아봐야 하고, 관계 기관에서는 군중 밀집에 대한 안내방송, 대처법에 대한 영상 등을 좀 더 적극적으로 시민들한테 알릴 필요가 있다"고 당부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 3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주재로 다중밀집 안전예방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특별시, 광역시, 인구 50만명 이상 대도시 지하철 역사의 다중 밀집 인파사고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정부는 지하철 역사에 다중 밀집으로 인한 인파사고가 우려되면 사전 경보를 발령하고, 지하철 환승역 밀집시간대 사고 예방활동을 펼치도록 지자체에 독려한다는 내용이 골자다.
이와 관련해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승강장 과밀이 제일 문제 될 수 있어 혼잡도가 높은 대상 역사를 선정해야 하고, 역사마다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방법론도 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공간 문제와 열차 운행 문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