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난달 29일 저녁 핼러윈데이 상황을 점검하기 위해 이태원 주변을 둘러봤다는 주장이 나온 가운데 용산구는 사고발생 직전까지 아무런 안전조치를 하지 않은 채 박 구청장은 참사 지역 인근 자택 주변에 머물렀던 것으로 드러났다.
4일 CBS노컷뉴스 취재결과 참사가 발생한 이날 첫 112신고가 있던 6시 전후 이태원역이 자리한 이태원로 일대는 병목현상으로 정상적인 차량흐름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태원역을 중심으로 핼러윈 인파가 몰렸고 인근에서는 촛불전환행동의 집회 행렬이 이어져 주말을 맞은 용산 일대는 혼잡 그 자체였다.
이날 박 구청장은 고향인 경남 의령군 지역축제에 참석했다가 관내로 복귀해 구청에서 도보로 귀가했다. 용산구에 따르면 박 구청장은 오후 8시가 넘어 구청사에 도착했다. 이후 8시20분과 9시30분경 두 차례 이태원 '퀴논길'을 찾았다.
참사가 발생한 10시 15분을 기준으로 박 구청장은 44분이 지난 10시 59분 참사 현장에 도착했다고 설명했지만 용산구가 홈페이지에 공개한 주요 조치사항에는 이 시각 참사 현장에 용산구 재난안전대책본부장이 도착한 것으로 나온다. 용산구는 이후 소방당국으로부터 관련 신고가 처음 들어온 것은 10시 15분, 박 구청장이 참사를 인지한 시각이 10시 51분이었다고 밝혔다.
용산구청에 현장에 10시59분 최초 도착한 인물이 박 구청장인지, 구 재난안전대책본부장인지, 아니면 함께 도착한 것인지 문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퀴논길은 용산구청에서 이태원역으로 이어지는 보광로59길로 역까지 도보로 약 10분거리다. 박 구청장의 자택은 이 길의 중간인 이태원로 20가길 인근에 위치했다고 알려졌다. 참사 지점까지 약 4분거리다.
참사 직후 박 구청장이 상황점검차 이태원 일대를 점검했다는 주장이 나왔지만 용산구 측은 "순시나 순찰 목적은 아니었고 마침 그 시간 지나가면서 현장을 본 것"이라고 밝혔다.
대규모 인파가 몰렸는데도 별도의 안전조치가 없었던 것에 대해 구 관계자는 연합뉴스 인터뷰를 통해 "구청장도 '그럴 줄 알았으면 나도(이태원역 주변으로) 갔을텐데, 나도 가볼 걸'이라고 말한다"며 "(퀴논길)은 주말에 북적이는 수준이었고 9시 쯤에도 특별히 위험스럽다고 생각을 안 할 정도였다고 한다"고 전했다.
해당 시각 이태원로 해밀턴호텔 주변은 이미 사고 위험으로 '압사할 것 같다, 도와달라'는 시민들의 112신고가 빗발치고 있었다.
경찰이 공개한 112신고 내용에 따르면 당일 오후 6시 34분경 참사가 발생한 골목길에 위치한 이마트24 편의점 앞에서 "인파가 많아 압사당할 것 같다"는 최초 신고가 접수됐고 오후 8시9분 이태원역 3번 출구 맞은편에서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넘어지고 다치고 난리다"는 신고가 추가로 접수된 이후 사고 발생을 우려한 신고들이 빗발쳤다. 박 구청장이 퀴논길을 두 차례 둘러봤다는 시각은 사고 발생 위험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이었다.
박 구청장이 퀴논길을 둘러본 시점에 용산을 지역구로 둔 국회의원인 권영세 통일부 장관에게 위급한 상황을 알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박 구청장은 권 장관의 정책특보 출신이다.
권영세 장관 측에 따르면, 박 구청장은 퀴논길을 둘러본 직후인 오후 9시30분경 권 장관을 포함해 용산을 지역구로 둔 국민의힘 서울시의원, 구의원 등이 지역현안을 논의하는 텔레그램 대화방에 "인파가 많이 모이는데 걱정이 된다. 계속 신경 쓰고 있겠다"는 내용의 메시지를 보냈다.
하지만 박 구청장은 이 무렵 경찰이나 소방 등 사고·재난 관련 기관에는 연락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해 박 구청장은 "권 장관에게 (핼러윈데이 인파에 대해) 말하고 있을 때 이태원 관광특구연합회 부회장으로부터 '사고가 났다'는 문자를 받았고 즉시 현장으로 이동했다"고 말했다. 박 구청장은 오후 10시 51분 사고 사실을 알았고, 10시 59분 현장에 도착한 후 11시 24분에 권 장관에게 전화한 것으로 전해졌지만 용산구가 게시한 시간대별 조치사항에는 10시59분 현장에 용산구 재난안전대책본부장이 도착한 것으로 나온다.
박 구청장의 구체적인 행적이나 동선은 용산구와 박 구청장의 주장, 언론취재 내용이 얽혀있어 실제 동선과 조치행위는 경찰수사를 통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핼로윈데이를 앞두고 용산구청과 이태원관광특구연합회(상인회), 용산경찰서 관계자 등 실무진이 협의를 가진 사실이 확인되면서 용산구와 박구청장도 이태원 일대에서 10만명 이상의 인파가 몰리고 경찰의 마약 등 범죄단속이 실시될 것이란 정보를 사전에 파악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상인회가 작년까지 코로나19 여파로 경찰의 집합금지 등의 단속이 이어지면서 힘들었다며 경찰과 방역공무원 등 공권력 투입을 최소화해달라고 요구해 이 것이 수용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박 구청장은 156명이 숨지는 참사 발생 이틀 후인 31일 녹사평역에 차려진 합동분향소를 찾은 자리에서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했다"며 "이태원 핼러윈 행사는 주최 측이 없어 축제가 아니라 현상으로 봐야 한다"고 말해 공분을 샀다. 관내 구청장임에도 수많은 사상자가 난 상황에서 책임 회피성 발언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결국 하루 뒤 입장문을 내고 "먼저 관내에서 발생한 참담한 사고에 대해 구청장으로서 용산구민과 국민 여러분께 매우 송구스럽다"며 "갑작스러운 사고에 자식을 잃은 유가족 여러분을 생각하면 저 역시 애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용산구청 홈페이지 참여소통 자유토론 공간인 '나도 한마디' 게시판에는 박 구청장을 비판하거나 사퇴를 촉구하는 게시물로 도배가 되고 있다.
한 시민은 "이렇게나 많은 젊은이들이 허무하게 사망한 대참사를 막지 못한 것, 애초에 준비를 하나도 안 해놓은 것만도 천벌을 받을 일"이라며 "당장 사퇴하라"고 요구했다.
또 다른 시민은 용산구청이 여전히 '사고 사망자'로 표기하고 있다며 "당장 '희생자'로 바꾸세요"라며 구청장 파면을 촉구했다.
박 구청장은 지난 10월 한 언론과 가진 인터뷰에서는 이태원 이미지 변화에 대한 질문을 받고 "이번 할로윈도 걱정"이라며 "저희가 관여할 수 있는게 아닌 자생적으로 일어나는 일이라, 저희가 안전에는 신경을 쓸 것"이라고 말한 내용이 최근 회자되며 결과적으로 안전조치 책임을 방기했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한편, 4일 오전 11시 현재 사망자 156명을 포함한 347명의 사상자를 낸 '이태원 참사' 부실 대응을 수사하는 경찰청 특별수사본부는 2일 용산구청을 비롯해 서울경찰청, 용산경찰서, 서울시소방재난본부 서울종합방재센터, 용산소방서, 서울교통공사, 다산콜센터 등을 압수수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