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가 오직 112탓? "꼬리자르기" 비판도

'압사 우려' 신고 11차례 받고도…참사 발생
정부, '부실대응' 112 혁신 계획
112가 참사 원인? 시스템 문제 아직 확인 안돼
참사 당일 경찰 1천명은 대통령실 집회…이태원엔 100여명
"수뇌부가 현장 경찰에 책임 전가" 비판도

윤희근 경찰청장이 1일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이태원 참사' 관련 입장을 표명을 표명하며 사과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이태원 참사'를 계기로 경찰의 112시스템을 혁신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일선 현장에선 이번 사태를 일부 개인들의 책임으로 돌리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일부 미비점을 사태의 원인으로 확대했다는 것이다. 더욱이 참사 당일에는 경찰력 대부분이 인근 대통령실 집회 현장에 투입된 사실이 확인되면서 부실 대응의 원인을 원점부터 짚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이태원 사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는 부실 대응 논란이 일고 있는 경찰의 112 대응체계를 혁신하겠다고 밝혔다. 참사가 발생하기 약 4시간 전부터 112상황실로 '참사 우려' 신고가 접수됐음에도 제대로 조처하지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경찰은 총 11차례 접수된 관련 신고 중 4건에 대해서만 현장으로 출동했다. 나머지 7건은 전화로만 상담하는 문제점을 드러냈다.

중대본은 구체적인 계획은 밝히지 않았지만, 현재 진행중인 경찰의 수사·감찰 결과에 따라 개선책을 내놓을 전망이다.

지난 1일 윤희근 경찰청장도 "사고가 발생하기 직전 현장의 심각성을 알리는 112신고가 다수 있었다"며 "112신고를 처리하는 현장의 대응은 미흡했다는 판단을 했다"며 고개를 숙였다.

'오원춘' 이후 개편한 112…10년만에 문제점 발견?

오원춘이 거주했던 다세대 주택 대문. 안쪽에는 각종 생활쓰레기가 쌓여 있다. 정성욱 기자

그러나 참사 나흘만에 112 개편 계획을 밝힌 것은 '꼬리자르기'라는 반발이 나온다. 수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문제의 원인을 경찰 112 시스템으로 지목했다는 것이다.

이미 경찰은 10년 전 '오원춘 사건'을 계기로 현행 시스템의 기반을 갖췄다. 오원춘 사건은 지난 2012년 4월 경기도 수원에서 오원춘(우위안춘)이 20대 여성을 살해한 사건이다. 당시 경찰은 "성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도 재차 위치를 확인하거나, 범행을 저지르는 사람이 누구인지 등을 물으며 시간을 허비했다. 결국 골든타임을 놓치며 신고자는 숨졌다.

이후 경찰은 긴급상황 시 신고자의 휴대전화 GPS(위성 위치확인시스템)를 강제로 작동시킬 수 있도록 했다. 또 '긴급상황'을 의미하는 '코드 제로(0)'를 도입하고 사건 코드도 5개로 늘려 세분화했다.

현행 112시스템의 치명적인 문제로 부실한 대응이 이뤄졌다는 정황은 아직까지 파악되지 않고 있다. 경찰이 공개한 11건의 신고 녹취록에서도 신고자의 위치나 당시 상황을 확인하는 등 매뉴얼을 따랐다. 때문에 112가 '신고 묵살' 등 참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직접적인 원인으로 봐서도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 경찰 관계자는 "참사 4시간 전에 받은 신고를 포함해 압사가 언급되는 신고를 11차례나 받고도 참사가 일어났기 때문에 결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면서도 "다만 112시스템이 먹통이 된 것도 아니고, 출동 지시를 안 내린 것도 아닌데 윗선에선 112로 꼬리자르기를 하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 1천명은 대통령실 집회 투입…이태원엔 100여명

연합뉴스

오히려 인파를 통제할 수 있는 경찰 인력 대부분은 용산 대통령실 인근에서 열린 집회 현장에 투입된 것으로 확인됐다. 윤석열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는 진보단체는 참사 당일 오후 4시 태평로에서 출발해 서울역을 거쳐 삼각지역 쪽으로 행진했다. 이어 삼각지역에서 집회를 하다 오후 9시20분쯤 마쳤다고 한다.

이 현장에는 현재 대기발령 상태인 이임재 서울 용산경찰서장을 비롯 1천명가량의 경력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10만명의 인파가 몰린 이태원 일대에 배치된 경력은 137명에 그쳤다. 이 중에서도 50명은 마약이나 불법촬영 단속 등에 집중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다른 경찰 관계자는 "112가 출동 지시를 내려도 현장에서 가용 가능한 경력은 많아야 수십 명 아니겠나"라며 "이번 사태의 궁극적인 원인을 112나 현장 경찰관에게 돌려선 안 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이어 "더욱이 112든 현장이든 이번 참사의 책임을 경찰로만 한정하는 것도 문제"라며 "서울시나 용산구 등 지자체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일선 현장에서도 특정 기능에 책임을 지우는 분위기를 경계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경찰 내부망에도 "수뇌부가 현장 경찰에 책임을 전가하고 있다", "감찰조사와 징계를 먼저 논하지 않기를 바란다" 등의 게시글이 올라왔다.

한편 윤 청장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지 2시간만에 사고를 인지했던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될 전망이다. 경찰청은 윤 청장이 최초 보고를 받은 시점이 지난달 30일 오전 12시 14분이라고 밝혔다. 이는 압사가 발생한 29일 오후 10시15분으로부터 1시간59분 뒤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