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본 지침은 구체적…" 분향소는 자율 설치로 지역별 '애도 편차'

'이태원 참사' 추모시설 시·군별 격차
지역 사상자 유무 등으로 설치 제각각
정부, '시·군은 자율적으로 운영' 지침
글씨 無 근조 리본 구체적 지시와 대조
공직사회 내부서도 "일관성 없다" 지적
국가애도기간 '취지 무색' 비판 등도
행안부 "기초지자체 부담 고려한 조치"

2일 40대 주부 김모씨가 자신의 딸과 함께 경기도 오산시에 있는 이태원 참사 관련 합동분향소에서 조문하고 있는 모습. 김씨는 자신이 거주하는 지역에 분향소가 없어 이곳에서 애도를 표했다. 박창주 기자

"국가가 애들을 지켜주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죠. 부모된 입장에서 슬픔을 나누는 데 지역 구분이 어디 있나요."
 
2일 오후 1시쯤, 경기도 오산시청 앞 광장.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기리는 합동분향소에는 숙연한 표정의 추모객들 발길이 이어졌다. 영정사진 하나 없는 단상에 국화를 올리며 눈물을 훔치는 시민들도 눈에 띄었다.
 
이날 자녀와 함께 분향소를 찾은 40대 주부 김모씨는 "오산 주민은 아니고 우리 동네에 분향소가 없어서 볼일 보러 왔다가 조문하게 됐다"며 "책임만 피하려는 정부는 믿지 못하게 됐고, 그래서 더 가슴이 아파 애도라도 하고 싶어 온 것"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지역에 연고를 둔 사상자는 없지만, 오산시는 경기도를 통해 행정안전부의 합동분향소 운영 지침이 내려진 뒤 이튿날인 지난달 31일 분향시설을 조성했다. 접근성을 고려해 장소도 시청 앞 광장으로 정했다.
 
오산시 관계자는 "광역지자체에는 필수지만 각 시·군은 자율적으로 설치하라고 위에서 지시가 내려왔다"며 "지역에 희생자가 없더라도 추모 공간은 필요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고 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 땐 국가장이라 의무였는데, 이번엔 분향소 기준이 어떻게 설정됐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반면, 김씨가 거주한다는 A시에는 분향소가 없다. 오산시와 마찬가지로 이태원 참사 사상자가 발생하지 않은 곳이지만, 같은 이유로 추모시설 설치 여부에 대한 판단은 엇갈린 셈이다.
 
A시 관계자는 "기초지자체에는 자율에 맡긴다는 취지로 지침을 받았고 희생자도 발생하지 않아 별도 분향소는 설치하지 않기로 했다"며 "대신 인근 지자체 분향소를 안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군 절반은 분향소 無, 무늬만 '국가애도'?

 
행정안전부에서 각 시·도 광역지자체에 송부한 업무연락 공문. 시·군 분향소는 자율적으로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박창주 기자
이태원 참사 직후 서둘러 국가애도기간부터 설정했던 정부가 정작 애도를 위한 추모시설 조성은 기초지자체 자율에 맡기면서, 지역별 분향소 설치에 편차가 발생해 빈축을 사고 있다.
 
경기도에 따르면 2일 기준 도내 이태원 참사 관련 합동분향소를 차린 지역은 31개 시·군 가운데 절반인 16곳에 불과하다.
 
이처럼 선택적으로 분향소를 설치하게 된 배경에는 행안부의 업무지침 때문이다. 행안부는 지난달 30일 전국 시·도에 최소 1곳 이상의 합동분향소를 설치하라는 취지로 공문을 발송했다.
 
이후 각 기초지자체에는 분향소 설치를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문의가 잇따르자, 행안부는 '업무연락' 형태의 공문을 통해 시·군은 자율적 판단에 맡긴다는 내용의 추가 지침을 내렸다.
 
이 때문에 상당수 지자체들이 지역에 연고를 둔 피해자가 없다는 등의 이유로 분향소를 설치하지 않은 반면, 고양·부천·안양시 등 일부 지자체는 시민 편의를 위해 2개소씩 운영하며 지역별 편차를 보였다. 
2일 기준 경기도 내 시·군별 이태원 참사 관련 합동분향소 운영 현황. 경기도청 제공
이에 대해 지자체 공직사회 내부에서도 국가애도기간 설정에 부합하지 않는 '알아서 하라'는 식의 일관성 없는 추모시설 지침에 대한 비판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도내 또 다른 기초지자체 관계자는 "근조 리본은 글자 없는 검은색 이미지안까지 구체적으로 지시하며 '눈에 안 띄게 하려는 것이냐' 등의 의혹만 커졌다"며 "그런데 애도를 위한 핵심 시설인 분향소 설치는 지역에서 알아서 판단하라고 하니까 더 납득이 안 되고 의심만 깊어진다"고 털어놨다.
 

정부 태도 비판론…"추모 위한 최소한의 배려" 촉구

 
시민들 역시 참사가 발생하자마자 유례없이 국가애도기간부터 지정해 놓고, 되레 추모객들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에는 소극적인 정부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다.
 
50대 직장인 양모(여)씨는 "끔찍한 사회적 참사를 목격하면서 슬픈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이라며 "애도를 표하고자 하는 시민들을 위해서라도 지역마다 분향소를 설치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단체도 정부의 무책임한 태도에 일침을 가했다.
 
유병욱 경실련경기도협의회 사무처장은 "상식적으로만 봐도 전 국가적인 애도기간을 정했으면 모든 지역에 설치하게 하면 될 일인데, 앞뒤가 안 맞게 분향소 마련을 시·군에 알아서 하라고 하니까 기준도 없어 우왕좌왕하게 된 것"이라며 "이 정부에서 하는 일들이 컨트롤타워가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 과연 맞느냐"고 따져 물었다.
 
수원특례시 시청사 앞 주차장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 모습. 박창주 기자
다만, 일각에서는 기초지자체까지 분향소 설치를 강제하는 데 대해서는 다소 신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뒤따른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시민사회에서는 (애도 분위기 축소 우려에 대해) 충분히 의혹을 제기할 수 있는 사안이라고 본다"면서도 "지방자치 측면에서 볼 때, 기초지자체 입장에서는 해당 지역 출신 희생자가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분향소를 만들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있을 수는 있다"라고 판단했다.
 

행안부 "기초지자체 행정 부담 감안한 조치"

 
정부는 거점 중심으로 광역시·도에는 분향소를 모두 차질 없이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오히려 기초지자체에는 행정 부담을 우려해 분향소 설치를 자율 사항으로 둔 것이라고 해명했다. 정부 방침에는 절차나 내용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얘기다.
 
행안부 관계자는 CBS 노컷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기초지자체까지 의무 설치를 지시하기에는 지역별 예산이나 인력 부담 등이 따를 수 있어 자율에 맡긴 것"이라며 "시·군에 대해 분향소 설치와 관련된 별도 규정이나 기준은 없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이상민 행안부 장관의 책임 회피성 발언 논란이 확산한 데 이어, 희생과 피해, 참사라는 표현 대신 '사망', '사고'로 규정하면서 분향소 현수막 등에도 '이태원 사고 사망자'로 표기했다. 이와 관련해 이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가 "중립성 확보를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책임을 회피하려고 민감한 용어를 의도적으로 자제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이 가시질 않고 있다.
 
또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한 근조 리본에 대해서도 정부는 '글자 없는 리본을 착용하라'고 했다가 '글자가 있어도 된다'고 오락가락하면서 일선 지자체들의 혼란을 자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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