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인모가 시벨리우스 콩쿠르 출전을 결심한 건 작년 12월. 양인모는 "2015년 제54회 프레미오 파기니니(이탈리아) 콩쿠르에서 우승했을 때만 해도 앞으로 콩쿠르는 다시 안 나가도 될 줄 알았다. '이제 원하는 걸 다 할 수 있겠구나' 싶었지만 생각보다 우승 이후 연주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했다.
"유럽으로 거취를 옮겼다면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 미국에서 공부(뉴잉글랜드 음악원 학사·최고연주자 과정)를 하고 있어서 커리어가 미국에 집중됐었죠. 펜데믹도 영향을 미쳤어요. 팬데믹 기간 무대에 서지 못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면서 연습을 해야 하는 이유와 음악가로서 존재의 이유를 다시 생각하게 됐죠. 그래서 또 한 번 콩쿠르에 도전에서 음악활동에 대한 동기 부여를 얻고 싶었어요."
양인모는 "지금은 연주 제의가 많이 들어온다. 특히 올해는 음악적으로 듣는 귀가 달라졌고 듣는 음악의 폭도 넓어졌다"면서도 "콩쿠르는 끝이 아닌 시작이다. 커리어를 유지하는 게 더 어렵다"고 강조했다.
콩쿠르 출전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세상에 저의 연주를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죠. 콩쿠르를 준비하는 시간만큼은 특정 곡에 매진하면서 스스로의 한계를 측정하고요. 우승 여부와 상관 없이 심사위원에게 조언을 받고 협연하는 지휘자나 오케스트라 단원과 이야기하면서 배운다는 점도 좋아요. '다른 출전자는 곡을 어떻게 해석할까' 보고 느낄 수도 있죠. 다만 모든 연주자가 콩쿠르에 출전해야 하는 건 아니에요. 유럽에는 콩쿠르에 나가지 않아도 좋은 커리어를 유지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진은숙이 2001년 완성한 이 협주곡(4악장)은 이듬해 비비아네 하그너의 바이올린과 켄트 나가노가 지휘한 베를린 도이치심포니오케스트라 연주로 초연됐다. 진은숙은 이 곡으로 2004년 권위 있는 그라베마이어 작곡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양인모는 "원래부터 관심있던 곡이라서 이번 협연이 잡히기 2년 전쯤부터 자필 악보를 구해 연습했었고 본격적으로 연습한 건 지난 6월(하루 3시간)부터다. 베토벤이나 모차르트 곡이 상대적으로 쉽다고 느껴질 만큼 비교적 어려운 곡"이라고 설명했다.
"고전적인 면과 모던한 면이 공존하는 느낌의 곡이죠. 솔리스트가 거의 쉬지 않고 연주해야 해서 체력적으로 굉장히 힘들지만, 타악기만 27개가 사용되고 다른 현대음악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스틸 드림 같은 악기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워요." 그는 "리허설을 4번 이상 하는 등 준비를 많이 했다. 놀이터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놀이기구를 탄다는 느낌으로 연주를 즐겨 달라"고 했다.
"자신의 곡을 만들고 싶은" 바람도 전했다. "바이올린 협주곡을 써서 직접 연주할 수 있다면 행복할 것 같아요. 대위법을 공부하면서 매일 작곡을 조금씩 하고 있어요. 바이올린은 바흐나 푸가 곡을 연주할 때 다른 성부를 놓치는 경우가 많은데 대위법에서는 여러 성부를 어떻게 구성할 때 가장 아름다운 음악이 나오는가를 공부하죠." 그는 "알고 있는 음악은 많은데 오선지 앞에 앉으면 아무것도 쓸 수 없다. 그때 작곡가의 위대함을 많이 느끼고 내 음악을 세상에 내놓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벌써 2022~2023년 연주 일정이 빼곡하다. 양인모는 "12월 8일 헬싱키 뮤직센터에서 오스모 밴스케가 지휘하는 헬싱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시벨리우스 콘체르토)이 가장 기대된다"고 했다. "2019년 서울시향과 시벨리우스 곡을 협연했을 당시 밴스케가 시벨리우스에 대한 의문점을 많이 해소시켜줬어요. 이번 시벨리우스 콩쿠르를 보고 제 연주를 마음에 들어했다고 하니 더 기대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