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에서 핼러윈 파티를 즐기려는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벌어진 압사 사고로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 이번 참사와는 별개로 영미권 기념일인 핼러윈이 고도의 상업주의와 결합되며 무분별한 외래문화 모방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핼러윈은 고대 켈트족이 한해의 마지막날로 여겨 기념하는 '서우인'(Samhain) 축제가 그 기원으로 알려졌다. 이후 카톨릭의 '만성절'(모든 성인 대축일) 전야제와 결합되며 영미권에서 전통 기념일로 자리잡았다.
핼러윈에는 산자와 죽은자의 경계가 흐려져 죽은 혼령이나 귀신이 돌아다닌다는 무속신앙에 기반해 괴기스런 복장과 분장을 한 어린이들이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사탕을 얻으러 다니는 모습이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 소개되며 한국에서도 익숙해진지 오래다.
그러나 실제로 핼러윈이 대중화된 것은 2010년대 중반부터다. 이태원이나 홍대 등 원어민 강사 등 외국인들이 자주 찾는 번화가의 클럽이나 카페를 중심으로 핼러윈 파티가 열리면서 20대 젊은층을 중심으로 핼러윈을 즐기는 이들이 점차 늘어났다.
한국 정서와는 거리가 먼 외래문화가 입소문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면서 유통가를 중심으로 핼러윈 마케팅이 불붙었고, 이에 일부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도 가세하면서 핼러윈은 최근 몇년 사이 젊은층에게 빼놓을 수 없는 기념일로 자리잡았다.
유통가는 핼러윈을 앞두고 1~2달 전부터 다양한 관련 의상과 소품 등을 판매하며 분위기 띄우기에 나선다. 롯데월드와 에버랜드 등 놀이시설들도 다양한 핼러윈 관련 행사를 열어 방문객 유치에 공을 들이고, 호텔 등 숙박업계도 웃돈을 붙여 핼러윈 파티 장소를 제공한다.
연예인과 인플루언서들은 핼러윈 관련 콘텐츠를 자신의 SNS에 올리며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특히 일부 인플루언서의 경우 핼러윈 파티에서 입을 노출이 심한 의상과 컨셉을 미리 SNS에 공개하며 구독자 끌어모으기에 나서기도 한다.
출처 불명의 외래문화에 이같은 상업주의가 결합되며 퇴폐적이고 자극적인 한국식 핼러윈 문화가 자리잡았고, 이는 3년 가까이 이어져 오는 코로나19 사태로 억눌려 있던 젊은층을 '해방구'라는 이름으로 거리로 이끌었다.
실제로 매년 핼러윈 때마다 각종 성범죄가 잇따르는가 하면 이번 핼러윈에 앞서서는 경찰이 이태원과 홍대 클럽 등에서 마약 유통 등 범죄 발생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단속에 나서는 등 일부에서는 핼러윈을 빌미로한 일탈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여기다 핼러윈의 기원이나 의미를 전혀 알지 못하는 어린이들에게까지 이런 상업주의의 마수가 이미 뻗치고 있다. 현재 원어민 강사가 다수인 영어 유치원은 물론이고 상당수 일반 유치원, 그리고 일부 초등학교까지 핼러윈 파티를 매년 열고 있다.
이날 서울역에서 자녀들과 함께 이태원 참사를 접한 A씨는 "둘째가 다니는 유치원에서도 핼러윈 파티를 연다며 나눠먹을 간식과 선물, 복장 등을 준비할 것을 요구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외국문화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도 불만인데, 이것 저것 요구하는 것도 많아 골치가 아프다"라며 핼러윈을 '신(新) 등골브레이커'라고 푸념했다.
초등학교 1학년 자녀의 성화에 못이겨 31일에 핼러윈 파티를 계획했던 B씨도 "딸이 핼러윈이 무슨 날인지도 모르면서 친구들과 모여서 파티를 해야 한다고 졸라 어쩔 수없이 준비했지만, 당장 취소해야 겠다"면서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같은 교육기관에서 왜 이런 정체불명의 기념일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꼭 이번 참사 때문이 아니더라도 얄팍한 상술이 덧입혀지며 변종된 외래문화가 무비판적이고 무분별하게 퍼져나가고 있는 현상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