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 화려함은 모두 거두고 이준익 감독은 그 자리에 무한함을 쫓는 인간의 욕망과 기억 그리고 삶과 죽음에 대한 핵심 메시지만을 남겨뒀다. 그렇게 '욘더'의 세계관은 현실-바이앤바이(VR)-욘더(메타버스) 3단계로 구축돼 점점 서사에 몰입하도록 만들어졌다.
근미래가 배경이지만 '욘더'는 인간과 삶에 대한 이준익 감독의 깊은 고찰 및 성찰이 녹아 있다. 그는 '욘더' 안에서 인간 관계와 타고난 이기심, 아름다운 이별 그리고 기억의 유한성과 죽음까지, 우리가 한번쯤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재주 좋은 이야기꾼 답게 이준익 감독은 큰 무리 없이 대중을 설득하는데 성공한 듯하다. 온갖 장르의 향연 속에서도 이야기는 결말을 향해 동력을 잃지 않는다. 이준익 감독과 첫 호흡을 맞춘 배우 신하균 그리고 한지민은 죽음 후에야 서로 진실하게 마주하는 부부가 되어 공감을 더한다. 이준익 감독이 지금까지 '해보지 않았던' 작품 '욘더'는 과연 어떻게 탄생했을까. 다음은 이준익 감독과 가진 화상 인터뷰의 일문일답.
A 촬영할 때는 드라마와 영화가 거의 달랐던 게 없던 것 같다. 영화 찍던 스태프들과 그대로 하니까 스타일이 바뀌지 않았다. 그러니까 영화 찍듯이 찍었다. 영화에서는 3시간 러닝 타임을 하기가 힘드니 미드폼을 한 번 해보자고 생각했다. 편집점이 어떻게 바뀌고, 그 사이에서 배우의 연기가 어떻게 더 깊숙하게 스며들게 할지 그런 부분에 호기심이 컸다. 3단 스테이지(현실-바이앤바이-욘더)를 건너가는 이야기로 계단식 구성을 하면 새로운 감상법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이었다. 스테이지를 건너가는 주인공의 내면을 침착하게 밀고 가면 마지막에 도달했을 때 오는 감정의 쓰나미가 클 것이라고 봤다. 좀 더 새롭게, 해보지 않은 것을 해보자는 선택이었다.
Q 사후 세계를 그린 SF 시리즈다. 처음 했던 본인의 상상이 현실로 잘 구현됐나
A 상상과 더 구체화된 결과와는 항상 편차가 있다. 이유 중에 가장 큰 것은 로케이션, 세트 등 부분의 부정확성 때문인데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인물이다. 인물이 상상했던 것보다 더 잘 나왔다. 배우들이 대사를 칠 때, 자기 마음에서 가져온 감정으로 더 풍부하고 의미 있고, 아주 복잡한 뉘앙스를 담아 깊이 있게 쳐줬다. 각자 자기의 본질, 즉 이기심을 그대로 잘 구현해냈다고 생각한다.
Q 현장에서 배우 신하균, 한지민과의 호흡은 어땠는지. 신하균과는 첫 작업인 것으로 안다
A 부부로 캐스팅을 했는데 자기들이 오누이인 줄 안다. (웃음) 신하균 배우는 스태프들 다 따로 챙겨서 함께 밥 먹고, 고맙다고 늘 감사 표시를 한다. 사소한 일에 굉장히 관심을 가지는, 세심하고, 명랑한 사람이다. 공식 석상에서는 과묵하다고 하는데 팬과 관객들에게 예의를 다하는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럴 때는 조심하는 사람이고, 현장에서 일할 때는 동료들에게 유쾌한 사람이다.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이라고 본다. 배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매력이 넘친다.
한지민 배우는 대범하고, 과감하고, 멋있다. 행동하고 말하는 게 그렇다. 자기 의견을 이야기할 때는 직관적으로 바로 한다. 그런 점이 멋있다.
A 소설에서 가져가려고 했던 것은 설정의 특별함이다. 넷플릭스가 한국에 들어오지도 않은 2011년에 작가는 '바이앤바이'는 VR(가상현실), '욘더'는 정확히 메타버스(3차원 가상세계) 개념으로 설정한 거다. 2040년대를 영상으로 다루려면 현실적 난이도가 너무 높았다. 막 날아다니거나, 사이보그가 있어야 될 거 같았다. 7~8년 전에 처음 시나리오 쓸 때는 이야기가 너무 커지더라. 그럴수록 이야기의 주제는 얇아졌다. 그렇게 몇 번 수정하고 쓰다가 과감하게 엎었다. 내가 아직 이 원작을 영화화 할 만한 준비가 덜 된 거 같았다. 그렇게 영화 3~4편을 찍고 다시 꺼냈을 때는 반대로 이야기를 미니멀(Minimal)하게, 즉 작게 줄이고 깊게 썼다. 그렇게 원작의 핵심만 전달하는데 집중했다.
Q 가장 핵심적인 '욘더' 단계의 세계관 구상에 고심이 깊었을 듯한데
A '욘더'는 온전한 메타버스다. 온라인의 독립적인 세계에 오프라인의 정보, 여기에선 기억이 입력이 된 거다. '욘더' 서버 안에 들어간 정보는 개별적인 AI(인공지능) 기능을 가지고 있다. 기억 속에 있는 공간을 어떻게 장면화 할 것인지가 관건이었다. 기억은 자기가 존재했던 리얼리티의 공간을 복제한 거다. 그래서 어떤 도심에 있는 집이 통째로 바닷가에 있어도 장소만 바뀐 거지, 공간은 같다. 똑같은 가구가 있는데 배치만 달라지는, 그런 식이다. 기억을 토대로 재구성한 메타버스의, CG를 포함해서 장면화하는 그런 세계관을 구축했다. 그 안에서 과학이 천국을 대신하고, 호기심과 함께 자신의 이기심으로 ('욘더'에) 간 사람들의 이야기다.
Q '죽음'의 키워드가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고 있다. 사회적 논쟁이 있을 수 있는 안락사가 합법화된 사회가 배경인데
A 앞부터 (안락사 관련 논쟁을) 깔면 이야기의 주제가 거기로 건너갈 수밖에 없다. 이게 '욘더' 세계관의 논리적 개연성을 과학적으로 푸는 게 이 영화의 목적이 아니라서 그거(안락사)는 수단이다. 수단을 통해 달성하려는 목적은 그런 환경 속에서 주인공의 삶과 죽음에 관련된 관계의 감정과 선택에 대한 이야기다. 그래서 그런 담론들이 살짝 얹혀지는 쪽으로 시나리오를 썼다.
죽음을 목적으로 하는 이유는 결국 삶에 대한 관점을 더 선명하게 하기 위해서다. 저 같은 경우는 윤동주 시인의 죽음이든, 가네코 후미코의 죽음이든, 단 한 사람의 죽음도 아주 소중하게 다뤄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럴 때 그 죽음의 의미가 더 가치 있게 다가올 수 있다. 죽음 자체가 갖고 있는 가치를 위해 이 이야기를 만든 거지 그걸 전개하는 장치를 위해 만든 건 아니다.
A 무한함은 인간 욕망의 허상이다. 진시황의 불로초, 3천년 전 피라미드 미라부터 그랬다. 그렇게 2500년 정도가 지났는데 이 다음에는 어디로 갈지 봤더니 모두가 디지털의 바다에 빠져들고 있다. 디지털이 무한을 보장해준다고 선언하고 있다. 그 과학적 무한을 믿고 '욘더'로 가는 사람들이 많을 거라고 봤다. 그럼에도 모든 인간의 삶은 항상 선택의 기회가 있다. 마지막에 재현(신하균)과 이후(한지민)는 하늘을 보면서 아름다운 이별을 한다. 두 사람 관계의 이별도 있고, 세상과 나와의 이별도 있다. 불멸이 아니라 소멸을 하면서 결국 세상과 자신의 이기심에서 탈출하게 된다. 아름다운 이별이 '욘더'의 부제다. 왜 우리는 늘 아름다운 만남만 꿈꿀까. 아름답게 헤어지자고 말하고 싶었다. 잘 안되는 이유는 이기심 때문이다.
Q 넷플릭스 등 OTT를 통해 K-콘텐츠가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한편으로 극장 등 기성 플랫폼들의 영향력이 약화되면서 플랫폼들 사이 경계도 무너지고 있는데 한국을 대표하는 영화 감독으로서 이런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A 받아들여야 하고, 아주 선행해서 받아들이면 더 좋다. 어차피 세상은 변하고, 그 변화는 퇴보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어차피 받아들일 것이라면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 결국 콘텐츠를 내보내는 플랫폼 차이가 있는 거다. 물론 그런 차이가 콘텐츠에 미치는 영향이 있지만 콘텐츠의 독창성은 더 넓어졌다. 영화가 다양한 포맷으로 확장된 것이지만 영화의 본질은 바뀐 게 아니고 형태가 확장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적극적으로 그 길을 치고 나가야 된다.
Q '욘더'는 새로운 소재와 도전이다. 이전에도 굉장히 다채로운 주제의 영화를 많이 만들었는데 늘 대중에게 사랑 받고, 울림을 주는 비결은 무엇일까
A 울림을 준다는 것은 마음을 흔드는 거다. 정말 놀라운 찬사이고, 사실 저는 그렇게(울림을 준다고)까지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다만 안타까운 것에 대한 소중함을 좀 알아봐 줬으면 하는 마음이 울림을 줬다면 그럴 수 있다. 훌륭한 것을 멋있게 다루는 것보다 안타까움에 대한 가치를 소중하게 다루는 것이 좋다. 좀 모자라고, 뭔가 실패한 자의 안타까움, 아무도 알아주지 않지만, 결과는 실패였지만 자신이 최선을 다했던 그 순간들의 안타까움은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