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컷체크]핵폐기물 임시 저장소, 영구 처분장 될까?

핵폐기물 임시저장소 건설 주민 반대 "임시저장소가 영구처분장 될 것이다"
정부, '중간저장시설' 설치 공백기 대비 임시저장시설 가동
방폐장 설치 시도 흑역사…부실한 공론화 과정
지형적으로 마땅한 곳 찾아도 결국 '주민 수용성' 가장 중요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조태임 > 한 주간의 뉴스를 팩트체크로 정리하는 모아모아 팩트체크, 오늘 핵연료 임시저장시설과 관련해 준비를 해오셨네요
 
지금 울산과 부산 지역 탈핵시민단체가 원전 부지 내 임시저장 시설 설치에 반대하고 있는데요. 반대르 하는 이유가 뭔가 하니, 임시시설이 곧 영구처분장이 될 것이다 이렇게 보고 있네요?
 
◆ 선정수 >  사실 정통적인 팩트체크 주제는 아닙니다. 팩트체크는 알려진 진술에 대한 사실 여부를 가리는 것이고, 실현되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는 팩트체크 대상으로 삼지 않습니다. 오늘은 가능성을 따져보고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자는 차원으로 준비해봤습니다.
 
◇조태임 > 원자력발전은 우리나라 발전량의 30% 가까이를 차지할 정도로 큰 부분이잖아요.  왜 처분장이 이슈가 되는 걸까요?
 
◆ 선정수 >  잘 아시다시피 원자력 발전은 방사성 물질인 우라늄을 정련해 만든 핵연료를 이용합니다. 핵연료가 핵분열을 일으키면서 열을 내뿜는데요. 핵분열이 순간적으로 일어나면서 폭발과 함께 막대한 에너지를 내뿜는 것이 핵폭탄이고요.
 
핵분열을 의도적으로 늦추면서 인간이 이용 가능한 수준으로 열을 발생시켜 발전에 이용하는 것이 핵발전이죠. 그런데 이 연료봉을 천년 만년 쓸 수 있는 게 아니고요. 경수로는 4~5년, 중수로는 약 10개월 정도 쓰면 효율이 떨어져서 새것으로 교체해야 합니다. 그럼 쓰고 남은 폐연료봉이 발생하죠.
 
◇조태임 > 말하자면 발전 쓰레기가 남게 되는 거네요.

한국원자력환경공단 홈페이지 캡처

◆ 선정수 >  그렇습니다. 원자력발전 쓰레기라고 보시면 되는데. 석탄재에서는 나오지 않는 막대한 열과 방사선을 방출합니다. 굉장히 오랜 기간을 격리해야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 까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는 시설이 없어요. 그래서 원전을 '화장실 없는 아파트'로 비유하곤 하는데요. 정부는 땅 속 깊이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파묻는 처리장을 만들 계획입니다.
 
◇조태임 >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위험해 보이는데 주민들은 싫어할 수밖에 없는 게 당연한 거 같아요. 굉장히 어려운 과정을 거치게 될 것 같은데요. 완공까지 얼마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되나요?
 
◆ 선정수 >  관련 입법에서부터 부지선정, 적합성조사, 주민 동의 등 여러 단계를 37년 동안 완성하는 일정이죠. 당장 올해 법이 통과된다고 하더라도 2059년에나 고준위 방폐장 처리가 가능한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태껏 사용해 온 원전 내 임시 저장 시설이 포화 된다는 겁니다. 2031년 고리, 영광 원전부터 부지 내에 사용 후 핵연료를 쌓아 놓을 곳이 없게 되는 거죠. 이렇게 되면 사용 후 핵연료의 안전한 보관 및 저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해당 원전을 더 이상 가동할 수 없게 됩니다.
 
이런 상황을 막기 위해 정부는 고준위 방폐장이 완공될 때까지 한시적으로 사용 후 핵연료를 저장할 중간저장시설을 만들려고 합니다. 정부가 내놓은 로드맵에 따르면 중간저장시설은 법안 통과 이후 13년차부터 20년차까지 7년에 걸쳐 건설됩니다. 마찬가지로 올해 법 통과가 된다고 가정해도 2042년부터 가동할 수 있는 것이죠. 최초로 임시저장시설이 포화되는 2031년부터 2042년까지가 공백기로 남게 되는 셈입니다.
 

◇조태임 > 그럼 11년 동안은 사용 후 핵연료가 갈 곳이 없어지는 건데요. 그동안 발전은 가능할까요?
 
◆ 선정수 >  이에 대해 정부는 원전 부지 내에 저장 시설을 만들어 공백기에 대비할 계획입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고리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건설 기본계획(안)'을 내놨습니다. 고리 원전 부지 내에 임시 저장시설을 만들어 2030년부터 가동한다는 계획입니다. 영광 한빛 원전과 울진 한울 원전은 2031년부터 부지 내에 임시저장시설을 가동할 계획입니다.
 
◇조태임 > 최종처분장을 만들 동안 중간저장 시설을 이용하고, 중간시설이 만들어질 때까지는 임시저장시설을 사용하겠다. 이런 거네요.
 
◆ 선정수 > 네 계획대로만 되면 그래도 해결책이 될 수도 있을 텐데 한수원 사외이사들도 이 계획에 반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요. 지역의 반발이 거셉니다. 울산과 부산 지역 탈핵 단체들은 "한수원이 일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임시시설'은 사실상 고준위핵폐기물의 영구처분장 즉 방폐장이 될 것"이라면서 "고리핵발전소 부지 내 사용후핵연료 임시 저장 시설 건설 계획을 전면 철회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지역 단체들은 한수원은 부지내 저장시설을 막아내지 못한다면 울산은 고리, 신고리, 월성, 신월성 총 16기 핵발전소와 핵폐기장에 둘러싸인 방폐장이 될 것이라고 우려합니다.
 
◇조태임 > 울산이 거대한 방폐장이 될 것이다?
 
◆ 선정수 >  정부는 '임시시설' 또는 '부지 내 한시적 저장'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지난 40년 동안 고준위핵폐기물의 영구처분장은 고사하고 중간처분장 부지 선정조차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입니다.
 
고준위 방폐장 건설 추진 과정은 말 그대로 '흑역사'에 가깝습니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공론화, 협의, 토론 등에 취약한 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첫번째 방폐장 확보 시도는 1986년, 3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한국에너지연구소(현 한국원자력연구원)은 한국전력기술(주)에 전국을 대상으로 부지환경 현황조사 용역을 의뢰합니다. 경북 울진, 영덕, 영일 등 3개 지역이 후보 지역으로 선정됐는데요. 중저준위 방폐장 영구처분시설과 사용후핵연료 중간저장시설이 입지하는 것으로 추진됐습니다.

그러다가 89년 임시국회를 통해 중저준위 방폐장 건설 계획이 알려지면서 지역내 반발이 거세지면서 계획이 무산됐습니다.
 
1990년에는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 사용후 핵연료 중간저장 시설을 설치하려다가 '안면도 사태'가 빚어졌죠. 정부가 별다른 소통 없이 일방적으로 부지를 발표했다가 안면도 주민 1만 5000명이 극렬하게 저항해 무산된 사건입니다. 2003년에는 '부안 민란'이라고 할 정도로 큰 반발이 있었는데요. 전북 부안군 위도에 방폐장을 지으려다가 부안군 주민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대규모 유혈사태가 빚어졌습니다. 결국 무산됐죠.
 
◇조태임 > 지역 주민들이 찬성 반대로 갈라져서 척을 지고, 반대하는 주민들이 경찰과 대치하다가 유혈 충돌이 빚어지고, 참혹한 일이었습니다.


◆ 선정수 > 결국 9차례에 걸친 시도 끝에 20년 만인 2005년 경주에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장을 짓는 방안이 확정됐습니다.

그러나 사용후 핵연료인 고준위 방사성 폐기장은 아직 부지도 확정을 짓지 못한 상태죠. 윤석열 정부는 전 정부와는 달리 원자력의 지속적인 이용을 탄소중립의 해법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원전을 계속 가동하려면 '화장실'은 반드시 지어야 하는 상황인 거죠.
 
◇조태임 > 윤석열 정부는 원전 활성화, 원전 생태계 회복을 내세우고 있어요. 그렇다면 방폐장은 꼭 필요할 것 같은데요?

◆ 선정수 >  그런데 방폐장은 아무 데나 지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사용 후 핵연료는 말 그대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인데 매우 강한 에너지를 가진 방사선이 나옵니다. 사람이 가까이 접근하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죠. 발전에 쓰이고 남은 사용 후 핵연료는 상당 기간 동안 고열을 내뿜습니다. 열이 식더라도 수백, 수천, 수만년 동안 치명적인 방사선을 내뿜기 때문에 사람의 접근이 불가능한 곳에 최종 처분하게 됩니다.
 

◇조태임 > 그런 곳이 있나요?
 
◆ 선정수 > 지구 상 유일하게 가동 중인 핀란드의 온칼로 처분장은 지하 400m 이상 깊은 곳에 설치됐습니다. 활성 단층이 지나가는 곳은 지진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방폐장을 설치할 수 없습니다. 기반암이 무르거나 지하수 흐름이 있는 곳도 설치하기 곤란합니다.

우리나라는 동해안과 서해안을 따라 원전이 건설됐기 때문에 핵폐기물은 처분장까지 선박으로 이송할 가능성이 큽니다. 육로 운송보다는 상대적으로 안전하기 때문이죠. 이런 이유로 역대 방폐장 부지선정에선 해안·도서 지역이 우선 순위로 검토됐습니다.
 
◇조태임 > 바닷길을 이용할 수 있어야 하고, 지질학적으로 안정된 곳이어야 하고, 기반이 단단한 곳이어야 한다. 이런 조건을 두루 갖춘 곳이 우리나라에 있나요?
 
◆ 선정수 > 우리나라에 별로 없습니다. 가장 유력한 곳은 강원도 남부 해안, 경북 북부 해안 지역입니다. 이런 지형적 특성을 충족하더라도 최종 관문이 남아있습니다. 바로 주민 수용성입니다. 안면도, 부안 지역의 사례에서 보듯 주민 동의를 얻지 못한 방폐장 추진은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태양광, 풍력 발전 또는 송전탑 건설에도 극렬한 반대가 일어나는데, 그보다 몇백배는 더 위험한 시설이 들어온다는데 순순히 뒷마당을 내어줄 지역이 있을지 의문입니다.
 
◇조태임 > 최종처분장 건설이 이뤄지지 않으면 결국 원전을 멈춰 세우거나, 임시 저장 시설에 계속 쌓는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 선정수 > 그렇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지역 주민과 환경 단체들이 원전 부지내 임시 저장 시설 설치에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겁니다. 임시 저장 시설에 사용 후 핵연료 보관이 가능한 상황이라면 고준위 방폐장 확보에 사활을 걸지 않을 것이라는 의심을 하는 것이죠.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은 "지금 한수원과 산업부는 꼼수인 캐니스터 건설로 시간을 벌 것이 아니라 투명하고 정확한 정보공개로 10만년을 보관해야 하는 핵 쓰레기에 대해 전기를 사용하는 국민 모두가 함께 책임질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투명하게 정보를 공개하고,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방식으로 주민 동의를 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탈핵 시민단체, '서울시는 고준위핵폐기물 책임져라'. 연합뉴스

 
◇조태임 > 얘기를 듣고 보니 왜 원자력 발전을 화장실 없는 아파트라고 부르는지 감이 오네요.
 
◆ 선정수 > 이게 우리나라 원자력 발전의 현주소입니다. 원전을 머리에 얹고 사는 인근 주민들은 불안합니다. 원전에 이어 고준위 방폐장까지 떠안게 되는 것 아니냐는 불안이 추가되고 있습니다.

원전 인근 주민들은 "그렇게 안전하다면 국회의사당 옆에 방폐장을 지으라"고 주장합니다. 바닷가에 원전을 짓고 송전탑을 만들어 사람 많은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냅니다. 수도권 사람들은 전기를 쓰고 위험과 불안은 원전 인근 지역 주민이 떠안고 있습니다.
 
◇조태임 > 주민 불안이나 불만도 정말 이해가 되거든요. 주민들의 불안을 거둘 수 있는, 현명한 대안을 찾아야 할 텐데요.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어느 특정 지역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전체의 문제라는 생각도 해야 할 것 같아요.   정부는 공약만 제시하고 장밋빛 목표만 내세우기보다는 책임 있는 대안을 내놔야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모아모아 팩트체크 선정수 기자였습니다.



실시간 랭킹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