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경기 침체 속에 '레고랜드' 사태에서 촉발된 단기자금시장 경색으로 국내 금융시장이 불안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가운데, 정부와 한국은행의 잇단 유동성 대책이 효과를 나타낼 지 주목된다.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주요국 중앙은행들이 금리를 연쇄적으로 올리면서 투자 수요가 감소하고 이에 따른 수익성 악화로 '돈맥경화' 현상이 발생한 만큼, 전문가들은 당장 다음 주로 예정된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의 공개시장위원회(FOMC) 결과에 따라 금융시장 변동성 확대 여부가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채안펀드 추가지원·유동성 자산 확대 인정…쏟아지는 대책들
금융당국은 당장 다음 주 중에 대대적인 자금 시장 지원에 돌입한다.금융위원회는 28일 금융권과 자금시장 관련 현황 점검 회의를 열고, 지난 24일 매입을 시작한 채안펀드에 3조원 규모의 1차 추가 캐피탈콜(펀드 자금 요청)을 다음 주 중에 시작하기로 했다.
시중은행들과 달리 자금난에 시달리는 중소형 업권을 위한 맞춤형 대책도 속속 내놓고 있다.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은 같은 날 손해보험업계(삼성·KB·DB·한화·ACE)와 자금 현황 점검 회의를 열고 보험회사 유동성비율 규제시 유동성 자산의 인정 범위를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현행 규정으로는 만기 3개월 이하 자산만 유동성 자산으로 인정하지만, 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만기 3개월 이상 채권 등 즉시 현금화 가능한 자산까지 포함하는 개선안을 마련해 유동성을 간접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다.
전날 은행과 저축은행이 기업부문에 충분한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도록 예대율 규제를 한시적으로 유연화하는 조치 시행을 발표한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기업부문 자금조달 수요에 적극 대응할 수 있도록 예대율 규제비율은 은행 100% → 105%, 저축은행 100% → 110%로 완화된다. 이럴 경우 은행과 저축은행의 추가적인 기업대출 여력이 발생하는 효과를 낸다.
통화당국인 한은이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증권사·증권금융 등을 대상으로 약 6조원 규모의 환매조건부채권(RP)를 매입하기로 결정한 것도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 부실 리스크에 휩싸인 중소형 증권사들의 숨통을 틔워줄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한시적인 조치라 금리 인상 기조가 꺾이거나 투자 심리가 회복되지 않는 한 내년 초 또다른 위기를 겪을 수 있다고 우려하지만, 각종 정부 대책이 쏟아지는 만큼 얼어붙은 시장 심리를 일부 완화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앞서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 27일 "여러 시장 안정 조치들이 조금씩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며 "최소 이번 주가 지나면 '레고랜드 사태' 이전 상황으로 어느 정도 돌아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고위 당정협의회·5대 지주회장 회의 소집
여당과 정부, 대통령실도 30일 고위 당정협의회를 열고 금융시장 동향을 살핀다.
30일 오후 2시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열리는 고위 당정 협의회에서는 이번 주 마련한 각종 정부 대책의 효과를 살피고 추가 유동성 공급 방안 등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국내 5대 금융그룹 회장들도 다음 주 한 자리에 모여 단기자금시장 경색 해소와 금융시장 안정 방안을 위해 머리를 맞댄다.
이 자리에는 김 위원장을 비롯해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회장, 손병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 등이 참석할 것으로 전해졌다.
다음주 미 FOMC 추세변화 이끌 언급 나올지 초미의 관심사
국내 채권시장을 안정시킬 가장 큰 변수는 지난해 8월에 비해 2.5%포인트나 급등한 현행 기준금리(연 3.0%포인트)의 향후 인상 폭과 속도다.한국 은행이 올해 11월 마지막 금통위를 남겨 놓고 있는 가운데, 당장 다음 주인 11월 1일~2일(현지시간)에 개최되는 미 연준 FOMC에서 어떤 시그널이 나올지에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월가 등에서는 연준이 이번에도 정책금리를 0.75%포인트 올리는 '자이언트 스텝'을 밟을 것을 유력하게 보고 있다.
하지만 그간 금리 인상폭이 급격했던 만큼, 연준 인사들 사이에서 인플레이션 정점에 대한 언급만 나오더라도 투자심리 회복에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안예하 키움증권 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채권시장은 여전히 투자심리가 회복되기에는 가장 큰 전제조건이 변화하지 않았다"며 "결국 미 연방준비제도가 11월 FOMC에서 어떤 시그널을 주는가가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안 연구원은 "'(가파른 금리인상) 효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등의 언급이 있을 경우, 시장은 연준의 피벗(정책방향 전환) 기대감을 높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양혜정 DS투자증권 연구원도 "(미국) 부동산 가격 하락이 확인된 만큼 미 연준은 금리 인상으로 인플레이션이 낮아 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봤다"며 "올해 들어 뒤늦게 금리 인상을 하다보니 빠른 금리 인상으로 나타날 부작용을 검증할 틈이 없었다"고 진단했다.
양 연구원은 "연말이 다가오면서 점차 정책을 검증하고 다시 경로를 고민하는 시기가 됐다"며 "아마도 연준의 속도 조절 가능성이 높아진 이유일 것"이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