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본없는 '경제회의' 80분 생방송…尹도 朴처럼 지지율 오를까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2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발언을 하는 모습.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각 부처 장관과 참모들을 한데 모아 80분 동안 경제 회의를 주재하는 모습을 생중계로 방송하는 등 경제 행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윤 대통령은 27일 오후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는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 대부분의 국무위원과 김대기 비서실장,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최상목 경제수석 등 대통령실 핵심 참모들이 모두 참석했다.

윤 대통령은 모두 발언을 통해 "어떻게 하면 경제를 활성화시킬 수 있느냐 하는 경제 활성화 추진 전략과 그와 관련한 점검을 하고, 모두 함께 논의하는 회의로 진행하겠다"고 운을 뗐다.

이날 회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생방송으로 중계됐다. 원래 비상경제민생회의는 대통령실 출입기자들 중 1~2명이 대표로 취재하고 그 내용을 공유하는, 이른바 '풀(pool) 취재'로 이뤄지는데, 이날은 이런 취재와 더불어 생방송 중계도 진행된 것이다.

지난 27일 서울역 맞이방에서 시민들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 생중계를 지켜보는 모습. 황진환 기자

윤 대통령은 "너무 긴장하지 말아 달라"면서 "국민들께 진정성 있게 솔직하게 하면 될 것 같다. 저도 국민과 함께 잘 경청할 테니까 걱정마시고 편안하게 해주시길 바란다"면서 카메라 앞에서 긴장한 국무위원들을 달래기도 했다.

회의는 △주력산업 수출전략 △해외건설‧인프라 수주 확대 △중소‧벤처기업 지원 △관광‧콘텐츠산업 활성화 △디지털‧헬스케어산업 발전 방안 등 5개 분야에 걸쳐 현 상황에 대한 진단과 대책 그리고 부처간 협업 등을 논의했다.

각 이슈에 대한 발제와 토론 등은 각 부처 국무위원들 사이에서 이뤄졌다. 국가적 핵심 산업 역량 강화나 해외건설·인프라 수주, 방산·원전 수출 등은 사실 주무부처를 넘어 다른 부처와의 협업이 중요해 이러한 부처 간의 논의가 생중계되기도 했다.

가령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해외건설·인프라 수주와 관련해 우리나라의 '52시간 노동' 제한 때문에 타국 현지 사정과 맞지 않는 부분으로 애로가 있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고용노동부의 공조가 필요하다고 하자, 이정식 노동부 장관은 "52시간 예외로써 특별 사유가 있으면 (특별연장근로 시간을) 90일에서 180일로 연장하겠다"고 화답했다.

윤 대통령은 대부분 국무위원들의 토론을 지켜봤지만, 중간중간 의견을 피력하거나 직접 의견을 조율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차전지 관련 논의 중 핵심 광물을 공급하는 방안과 관련해 "적시에 (광물을) 공급하기 위해서는 공급 안전화를 위한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 한 것 같다. 공급망 안정화에서 중요한 게 다변화"라며 "오늘 외교부 장관이 안 나왔는데, 서플라이 체인(supply chain)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과 디테일한 상황도 상시 점검을 하고, 다른 부처와 기업들과도 공유해달라"고 지시했다.

또 방산이나 원전 수출과 관련해서는 "방산이나 원전의 경우 운영, 매니지먼트, 노하우까지 포함해 하나의 패키지로 수출하는 경향이 있다"며 "모든 부처가 산업부와 국방부를 중심으로 합심해야 한다. 외교부나 법무부에서도 관련 국가에 대한 법률·제도 등을 지원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영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에게는 '초격차 스타트업 양성' 과제와 관련해 "(스타트업에) 세제 혜택을 과감하게 줘도 정부는 사실 손해 볼 게 없다"면서 "기재부에 강력히 요청해서 세제지원을 대폭 끌어내 달라"고 주문했다.

아울러 경제 정책뿐만 아니라 디지털·IT 분야 등 과학·기술 교육과 관련해서도 윤 대통령은 "디지털 교과서가 되면 학생들이 책가방을 안 들고 다녀도 되는건가"라고 관심을 보이면서 "교육 과정에서 획기적인 디지털 전환이 일어나도록 해주시길 당부드린다"고 말했다.

지난 27일 서울역 맞이방에서 시민들이 용산 대통령실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하는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 생중계를 지켜보는 모습. 황진환 기자

윤 대통령은 또 전방위적인 경제 이슈와 관련해 각 부처의 보고와 토론을 들으면서도 확고한 시장경제 원칙을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윤 대통령은 정부가 합성생물학 기술 혁신을 위한 바이오파운드리를 만들겠다는 말에 "기업에서 해야지, 정부에서 공무원들이 운영해서 효과가 있겠나"라고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윤 대통령이 "이렇게 모였으니 전부 기재부 장관, 금융위원장에게 부처 애로사항들을 전하라"고 북돋우자 각 부처 장관들의 세제지원 요청이 쏟아지기도 했다. 이에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제 눈을 보면서 절절하게 돈 달라고 했다", "곳간 다 떨어지겠다"며 너스레를 떨자 회의장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윤 대통령은 마무리 발언에서도 "국방부는 방위산업부, 농림축산식품부는 농림축산산업부, 국토교통부는 국토교통산업부, 문화체육관광부는 문화산업부로 이렇게 산업 증진과 수출 촉진을 위해 다같이 뛴다는 자세로 일해주시길 당부드린다"고 강조했다.

대통령실의 경제회의를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 생방송으로 중계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그만큼 윤 대통령과 참모들이 경제 이슈에 집중한다는 점을 부각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국무위원 간 토론하는 모습을 생중계하자는 아이디어는 윤 대통령이 직접 제안했다고 한다. 경제위기 상황에 민간이 위축되지 않도록 정부의 경제활성화 비전을 제대로 알리기 위해서다. 윤 대통령은 지난 7일 열린 10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관계 장관들과 열띤 토론을 하며 이를 그대로 공개해도 좋겠다며 직접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제11차 비상경제민생회의에서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이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을 경청하는 모습. 연합뉴스

관심은 이같은 '경제 행보'가 윤 대통령의 지지율을 반등시킬 수 있느냐다.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4년 3월 20일 '규제개혁장관회의 겸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를 주재하면서 이를 생방송으로 중계했다. 방송 시간이 무려 7시간 5분이나 됐는데, 이때 박 전 대통령은 "우리가 한심한 나라가 돼서는 안 된다"면서 강도 높은 규제 개혁을 주문하는 모습을 연출하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규제개혁회의 생방송은 박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3%p 끌어올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한국갤럽이 2014년 3월 24일부터 27일까지 전국 성인남녀 1199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같은달 28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신뢰수준 95% 표본오차 ±2.8%포인트) 박 전 대통령 지지율은 전 주보다 3%p 오른 59%를 기록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번 회의는 10차례 비상경제민생회의를 하면서 다양한 현안을 짚어왔고, 그러한 내용들을 국민께 소상히 알리는 차원이었다"면서 "경제와 민생 현안에 집중하다 보면, 언젠가는 지지율도 오르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통화에서 "가짜 일자리로 경제가 나아지는 것처럼 위약(僞藥)을 주기보다는 경제위기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의 아우성을 듣고 도울 수 있는 자원을 다 동원해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대통령의 강한 의지가 잘 나타났다"고 평가했다.

대통령실 김은혜 홍보수석은 서면 브리핑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를 토대로 서민과 사회적 약자들이 기지개를 켜실 수 있도록 정책연대를 통해 윤석열 정부가 달성하고자 하는 국정목표는 '우리 국민 모두 다 같이 잘 사는 것'"이라며 "정책 비전을 설명드리는 자리를 앞으로도 기회가 되는대로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전했다.

이번 회의에서 금리와 환율 등의 문제가 주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에 대해선 "금리 등의 논의과정을 모두 알리는 것은 시장에 또 다른 리스크가 될 수도 있고, 회의 시간의 제약 등을 감안해 당장 공개하지 않기로 한 것"이라고 대통령실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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