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지난달 초 서울 광진구 지하철 건대입구역 인근 무인 사진촬영관에 놓여있던 분실카드 보관함을 털었다. 안에 들어있던 카드는 모두 70여 장이었다.
'잃어버린 분은 찾아가세요'라는 안내는 즉석사진을 찍은 뒤 카드를 놓고 나온 이들이 분실물을 쉽게 찾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A씨에게는 죄책감을 덜어주는 문구에 불과했다.
A씨는 대형마트와 편의점에서 이들 카드를 긁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난 19일 성북구 길음동의 한 대형마트에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붙잡혀 이틀 뒤 구속됐다.
25일 서울 종암경찰서에 따르면 A씨는 "알아서 찾아가라고 적힌 박스가 있길래 안에 있는 카드를 꺼내왔다"고 태연하게 진술했다. A씨는 분실물 보관함에 들어있던 카드 5장으로 지난달 29일까지 모두 29차례에 걸처 50여만 원어치를 결제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은 나머지 카드 60여 장으로 긁은 금액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보고 결제내역을 확인 중이다.
경찰은 A씨에게 절도 아닌 점유이탈물횡령 혐의를 적용했다. 주인의 손을 벗어난 물건을 가져간 경우다. 형량은 1년 이하 징역이나 300만원 이하 벌금 또는 과료다. 6년 이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 벌금형을 받는 절도에 한참 못 미친다.
무인점포나 무인결제 시스템이 보편화하면서 A씨처럼 주인 없는 물건을 슬쩍하는 범죄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무인점포의 분실물 관리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강형구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사업주는 신용카드를 비롯한 분실물을 습득한 경우 별도 장소에 따로 보관하고 카드회사나 지역 경찰에 신고하는 등 소비자 보호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카드 소유자 역시 분실 사실을 인지하고도 신고를 안 하거나 지연한 경우 범죄피해 보상에 제한이 생긴다"며 "카드 분실신고는 24시간 가능하기 때문에 잃어버리면 즉시 신고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