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톤급 북한 상선 1척이 24일 새벽 서해 백령도 서북쪽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해 우리 군이 경고사격을 통해 퇴거시키는 일이 일어났다. 북한 '상선'의 NLL 침범은 5년만의 일이다.
그런데 NLL을 인정하지 않는 북한은 오히려 우리 해군 함정이 '해상 군사분계선'을 최대 5km까지 침범했다면서 방사포탄 10발을 서해로 쐈다. 우리 군은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며 규탄에 나섰는데, 북한이 의도적으로 도발을 기획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30년 전 스커드 미사일 수출 시도했던 그 상선, NLL 3.3km 침범했다
합동참모본부는 "오늘(24일) 오전 3시 42분쯤 서해 백령도 서북쪽(약 27km)에서 북한 상선(무포호) 1척이 NLL을 침범하여 우리 군은 경고통신 및 경고사격을 통해 퇴거 조치했다"고 밝혔다.군은 무포호가 NLL을 넘기 직전 1차 경고통신을 실시했고, 침범 이후 2차 경고통신을 했는데 뱃머리를 돌리지 않아서 M60 기관총으로 배 진행 방향에 10발을 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행 방향을 돌리지 않아서 2차로 10발을 또 쏘자 뱃머리를 돌렸다고 설명했다.
이 시점까지 무포호는 NLL 남쪽 약 3.3km 지점까지 내려왔고, 침범한 지 40분쯤 지난 오전 4시 20분쯤 NLL을 벗어났다. 군은 무포호의 항적 등을 분석한 결과 이 배가 중국 방향으로 가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무포호는 배수량 5천톤급 상선으로, 지난 1991년 스커드 미사일을 싣고 이를 시리아에 수출하려다 북한으로 되돌아간 적이 있다.
북한 배가 NLL을 넘은 사례는 몇 차례 있지만, 대부분 기관이 고장났거나 항로를 착각한 경우 등이어서 군은 이를 '월선'으로 규정해 왔다. 이번은 실수가 아니기 때문에 군은 '침범'으로 평가하고 있다.
'적반하장' 북한, 기관총 경고사격 구실로 방사포 사격해 9.19 또 위반
그런데 북한은 상황이 종료된 지 약 1시간만인 오전 5시 14분, 황해남도 장산곶 일대에서 NLL 북쪽 해상완충구역 내에 방사포 10발을 쐈다. 합참은 "NLL을 침범한 북한 상선에 대한 우리 군의 정상적인 작전조치에 대해 북한군이 방사포 사격을 실시한 것은 명백한 9.19 군사합의 위반이자 도발이다"고 경고했다.이어 북한군 총참모부는 오전 6시를 조금 넘겨 대변인 명의 발표를 내고 "오늘 새벽 3시 50분경 남조선 괴뢰해군 2함대 소속 호위함이 불명 선박단속을 구실로 백령도 서북쪽 20km 해상에서 아군 해상군사분계선을 2.5~5km 침범하여 '경고사격'을 하는 해상적정(敵情, 전투 상황이나 대치 상태에 있는 적의 특별한 동향이나 실태)이 제기되었다"고 주장했다.
대변인은 "서부전선 해안방어부대들에 감시 및 대응태세를 철저히 갖출 데 대한 지시를 하달하고 오전 5시 15분 해상적정발생수역 부근에서 10발의 방사포탄을 발사하여 적 함선을 강력히 구축(驅逐, 몰아서 쫓아냄)하기 위한 초기대응조치를 취하도록 하였다"며 "우리 군대는 24일 5시 15분 용연군일대에서 사격방위 270도 방향으로 10발의 위협 경고사격을 가하였다"고 밝혔다.
그는 최근에 지상전선에서의 포사격도발과 확성기도발에 이어 해상침범도발까지 감행하고 있는 적들에게 다시 한 번 엄중히 경고한다"고 덧붙였다. 상선이 침범한 일에 대해 9.19 군사합의를 위반하지 않는 수준의 경고사격을 해 쫓아냈는데도 이를 '도발'이라고 억지 주장을 편 셈이다. 기관총 사격은 9.19 군사합의로 금지하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합참 관계자는 "무포호가 NLL을 침범해 우리 군이 조치한 곳과 북한이 방사포를 쏜 해역은 상당히 떨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NLL 인정 안 하는 북한…전문가들 "의도적으로 계획, 우발적 충돌 우려돼"
북한이 오히려 '우리 해군이 해상군사분계선을 침범했다'는 주장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NLL은 1953년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이 설정한, 지상 군사분계선(MDL)의 연장선상에 있는 바다 위의 선인데 북한은 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은 1999년에는 서해 5도가 자신들의 영역 내에 있다는 '서해 해상경계선'을 주장했다가, 2007년 12월 7차 장성급 회담에서 '서해 경비계선'으로 약간 바뀐 주장을 했다. 이 선은 NLL보다는 약간 남쪽에 있는데 서해 5개 도서의 북쪽 바다가 포함돼 있다. 두 선은 지점에 따라 조금씩 다르지만 최대 몇 킬로미터 정도 차이가 난다.
물론 우리는 해상경계선이든 경비계선이든 북한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는다. 합참 관계자는 "우리 군은 NLL을 기준으로 작전을 펼쳤고,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 총참모부 대변인이 제기한 '확성기도발'에 대해선 "최근에 중부전선에서 응급환자를 이송하기 위해 헬기가 민간인 출입통제선 북쪽에 진입한 적이 있었는데, 이를 위해 GP에 설치돼 있는 경고장비로 방송을 한 적이 있다"면서도 "그 외에 다른 사례는 없는데, 총참모부 대변인이 이것을 갖고 억지 주장을 하고 있는지는 좀더 확인해 보겠다"고 밝혔다.
우리 군과 북한군은 2018년 판문점 선언 이후로 확성기를 통한 심리전 방송을 하고 있지 않다. 때문에 북한이 고의로 NLL을 침범한 뒤, 대비태세를 떠보는 겸 군사도발을 위한 명분 축적에 나섰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우발적 군사충돌로 이어질 가능성이다. 특히 서해는 바다라는 특성상 1·2차 연평해전, 대청해전, 천안함 피격 사건, 연평도 포격전 등 우리 군 전사자도 발생한 교전이 여러 차례 벌어진 적 있다.
북한대학원대 양무진 교수는 "북한의 대응은 다분히 계산된 의도성을 가진 것으로 분석한다"며 "최근 육해공 상호군사적 맞대응은 9.19 군사합의 이행의 강조인지, 파기의 수순인지 불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양 교수는 "우려스러운 점은 그간의 경과를 볼때 서해상 충돌은 우발적 상황 하에서 전개되어 왔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으며, 우발적 충돌은 최전선 군부의 긴장감과 피로누적이 주요 요인으로 작용한다"며 "남북한은 상황 악화 방지와 9.19 군사합의 이행을 위한 군사공동위원회를 조기에 구성하고 운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세종연구소 정성장 북한연구센터장도 "북한군의 사전 승인 없이 북한 상선이 NLL을 침범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로, 서해 NLL을 무력화하기 위해 북한이 의도적으로 기획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이번 사건은 '서해 해상불가침 경계선'에 대한 남북한의 합의 부재를 다시 한번 보여준 것으로서, 북한은 '전술핵무기' 운용에 대한 자신감을 배경으로 향후 그들에게 불리하게 그어진 NLL을 무력화하려 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