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16일 강원CBS <시사포커스 박윤경입니다>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 인터뷰 중 |
"(춘천 레고랜드는) 우선 우리나라에서 처음 지어진 글로벌 테마파크입니다. 저는 이게 매우 큰 자부심이라 생각하는데요. 우리나라에서 많은 지방 정부들이 글로벌 테마파크를 유치하겠다고 노력을 했고 발표도 했죠. 유니버설 스튜디오라든가 디즈니랜드라든가. 그러나 하나도 성공한 사례가 없습니다" "레고랜드는 유일하게 성공한 글로벌 테마파크입니다. 그것도 그 분들이 투자하는 형태인 외자투자죠. 코로나바이러스 이후로 외자투자가 끊겼습니다. 아마 이게 유일한 막차가 될 거 같습니다. 이것도 큰 자랑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테마파크로 자랑이 될 거라 확신합니다" |
최 전 지사의 '장밋빛 전망'과 달리 2년 후 강원도유지 춘천 중도에 유치한 레고랜드는 강원도 신용도는 물론 금융시장까지 흔드는 거대한 '회색 코뿔소(Gray Rhino: 계속된 경고로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쉽게 간과하는 위험)'로 돌변해 버렸다.
사업은 시작부터 논란을 예고했다. 본격적인 사업 추진에 앞서 여론 수렴을 위해 2013년 2월 22일 마련한 주민 사업설명회와 토론회는 관변 단체 중심의 토론자, 미리 대상을 정한 방청객들로 자리를 채워 진행했다. 다양한 여론에 귀를 닫은 채 닻을 올린 셈이다.
2013년 9월에는 당시 이광준 춘천시장이 제동을 걸고 나섰다. 강원도와 레고랜드 사업 투자사간의 본계약을 살펴본 결과 사업 추진이 지연되면 강원도 부담이 커지고 춘천시민들이 오랫동안 중도 관광지를 사용하지 못하는 피해도 간과할 수 없다는 지적이었다.
한달 뒤 강원도의회 도정 질문에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곽영승 의원도 "레고랜드 조성 뒤에 테마파크 매출이 연간 8백억원을 넘으면 총 매출액의 90%를 멀린이 갖고 나머지는 강원도를 포함한 국내투자자들이 갖도록 한 계약도 불평등하다며 오히려 로열티를 주고 강원도가 시공부터 운영까지 다 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주문했다.
2014년 춘천지역 시민단체들도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공론화 세부사항으로 △확실한 유적 보존 대책 및 발굴, 유적보존 모니터 △부풀려진 경제효과에 대한 철저한 검증 △지역경제 연계방안과 지역주민 고용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제시 △불공정협약에 따른 문제 발생시 대책 마련 등을 요구했다.
이듬해에는 레고랜드 사업 시행 특수목적법인 '엘엘개발(현 강원중도개발공사 GJC)'을 출자기관으로 지정하는 결정에 우려와 비판을 가하기도 했다.
기자회견에 나선 권용범 춘천경실련 사무처장은 "특수목적법인 상태인 현재도 자본금 확보나 재정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인데 출자기관으로 지정되면 결국 강원도가 부족한 자금을 지원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며 "조례는 다른 투자자들이 소극적으로 나설 경우 강원도의 책임만 커지는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자칫 무리한 빚을 내 강원도가 사업을 강행하다보면 제2의 알펜시아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강원도가 손해를 감수하면서 사업을 추진하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문제점이 드러나면 사업중단이라는 초강수를 써서라도 원점에서 개선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곳곳에서 경고음이 쏟아지는 사이 2014년 착공해 2016년 10월 완공하겠다는 최초 계획도 허언이 됐다. 문화재 발굴로 인한 물리적 이유도 있었지만 빚을 내고 땅을 팔아 공사비를 조달하겠다는 사업 추진계획이 스스로 발목을 잡았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다.
레고랜드 테마파크 운영사 영국 멀린은 2017년 8월 3일 이사회를 열어 테마파크 본공사비 1천 500억원 직접 투자 계획을 자체 재원조달의 어려움을 이유로 부결했다.
출자기관 지정을 받은 엘엘개발은 강원도 보증으로 빌린 돈 2천 50억원 중 절반 이상을 시행사 운영과 사업 준비에 사용했고 주변 부지 매각이 지연되면 또 다시 빚을 내 공사를 진행할 수 밖에 없는 처지로 전락한 것이 지금으로부터 5년전 상황이다.
김성근 9대 강원도의회 부의장은 "자칫 무리한 빚을 내 강원도가 사업을 강행하다보면 제2의 알펜시아 사태를 초래할 수도 있다. 강원도가 손해를 감수하면서 사업을 추진하게 된 원인을 분석하고 문제점이 드러나면 사업중단이라는 초강수를 써서라도 원점에서 개선책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절차와 법은 존중돼야 한다. 조금 빨리 가려고 신호등을 무시한다면 결국 사고로 이어지고 걷잡을 수 없는 큰 일로 일을 망칠 수 있다"
2018년 12월 14일은 레고랜드 사업을 재점검할 수 있었던 마지막 '골든 타임'으로 꼽힌다. 강원도의회는 277회 정례회 3차 본회의를 열어 강원도가 제출한 춘천 레고랜드 코리아 조성사업 강원도 권리의무 변경 동의안을 10대 도의회 다수를 차지한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표면적으로는 기존 엘엘개발이 직접 추진하던 춘천 레고랜드 코리아 조성사업을 멀린으로 사업 주체를 변경하는게 핵심이다. 테마파크 사업비용 예상액 2600억원 가운데 멀린이 1800억원을, 엘엘개발이 강원도가 지급보증한 대출금 2050억원 가운데 800억원을 투자하는 권리의무를 담았다.
테마파크 공사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어 온 강원도는 동의안 처리로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 사업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라고 호평했다.
반면 한국당(현 국민의힘) 강원도의회 신영재 원내대표는 "이제부터는 멀린에서 요구하는대로 거의 사업이 끌려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 계약상으로도 강원도와 엘엘개발이 멀린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없다.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늘(14일) 동의안이 부결돼서 강원도 권리를 찾아나가는 길이었는데 우리 강원도 의도대로, 방향대로 사업을 끌고 갈 수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강원도가 레고랜드 사업을 주도해 온 엘엘개발에 대한 2050억원 보증채무부담 행위를 함에 있어 사전에 투자심사를 득하지 않고 의회에 동의를 요청하는 것은 절차상 중대한 하자가 있었다"며 해당 금액 중 800억원을 사업 투자비로 지출하는 부분의 문제도 재차 강조했다.
"레고랜드 추진사업을 통해 지역발전을 도모하려는 뜻에 동의하고 공감한다"며 "절차와 법은 존중돼야 한다. 조금 빨리 가려고 신호등을 무시한다면 결국 사고로 이어지고 걷잡을 수 없는 큰 일로 일을 망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
"2022년 10월 우리가 겪고 있는 위기와 혼란은 계속된 경고를 무시한 자치단체와 정치권, 개발과 매각이 제한적인 매장 문화재가 가득한 사업부지를 보고도 돈을 빌려 준 금융기관, 이를 관리감독해야할 정부 기관 모두가 자초한 일"
마지막 '골든타임'을 흘려보낸 지 4년이 흘렀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5월 5일 춘천 레고랜드가 문을 열었다. 성공적인 외자유치를 했다던 강원도-중도개발공사의 레고랜드 직간접 투자금 및 무상임대 부지(공시지가) 규모는 총 7380억원을 넘어섰다. 지난 6월 기준 레고랜드 운영주체 영국 멀린사 투자금 1804억원으로 집계됐다.
2013년부터 빌린 대출금 누적 총액은 2140억원. 이 가운데 올해 상반기까지 상환한 금액은 90억원에 불과하다. 그동안 이자만 482억원을 물어야 했다. 남은 상환 대출금은 2050억원이다.
취임 석달 만에 김진태 강원도지사는 레고랜드 사업 부담 해소 방안으로 강원도가 최대 주주로 참여하고 있는 레고랜드 특수목적법인 강원중도개발공사(GJC)를 법원에 회생신청하겠다고 밝혔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강원중도개발공사가 강원도 보증으로 BNK투자증권에서 빌린 2050억원의 원금 상환이 내년 11월 도래하는 상황에서 잘못된 계약을 수정하고 기존사업을 재구성해 보증부담에서 벗어나기 위한 조치라는 설명이다.
2011년 투자협약을 시작으로 11년간 몸집을 불려온 강원도 춘천 중도의 '회색코뿔소'는 이제 국내 금융권과 김진태 강원도정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 회생신청이 채권시장에 불안을 불렀다는 비난이 일자 김진태 지사는 보증채무 이행을 위한 예산안 편성을 추진하고 있다고 급한 불 끄기에 나서고 있다.
이달 11대 강원도의회 첫 도정질문에서 레고랜드 전방위 감사를 요구했던 김기홍 강원도의회 부의장은 "2022년 10월 위기와 혼란은 계속된 경고를 무시한 자치단체와 정치권, 개발과 매각이 제한적인 매장 문화재가 가득한 사업부지를 보고도 돈을 빌려 준 금융기관, 이를 관리감독해야할 정부 기관 모두가 자초한 일"이라고 평가했다.
"최근의 혼란을 레고랜드 사업의 각론이 아닌 총론을 살피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이제라도 정부와 정치권이 레고랜드 사태 해결에 지혜를 모으고 타 지자체에서도 제2, 제3의 레고랜드 사업이 재현되지 않도록 철저한 반성과 대비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