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이 불붙인 '원격 의료 제도화'…해외 각국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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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유행을 거치며 그간 국내에서 잠잠했던 비대면 진료(원격 의료)의 제도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원격 의료 시장이 커지고 있으며 필요성도 점차 인정되는 상황 속 제도화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만큼 섣불리 허용됐을 때 흔들린 대면 진료 원칙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CBS노컷뉴스는 우리나라보다 한 발 앞서 원격 의료 제도화 논의가 빠르게 이뤄진 해외 각 국의 상황을 살펴봤다.  

OECD 38국 중 32국 원격의료 시행…미국 1997년부터 법제화


21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고영인 의원실이 입수한 국회 입법조사처 '비대면 진료 관련 해외 주요국 입법례'를 보면 202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8개국 중 원격 의료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는 32개국이다. 원격 의료가 허용되는 범위와 조건은 국가 별로 다르지만 비중으로는 80% 정도의 국가가 법규에 의해 혹은 특정 법규 없이도 원격 의료를 허용하고 있는 셈이다.

원격 의료에 대한 논의가 가장 빨리 이뤄진 대표 국가로는 미국이 꼽힌다. 미국 연방정부는 1997년 '균형재정법'(the Balanced Budget Act of 1997) 개정을 통해 의료 전문가가 부족한 농촌 지역의 원격의료 행위에 대해 메디케어에서 보험급여를 제공할 것을 의무화했다. 메디케어란 65세 이상의 노인 혹은 65세 미만의 특정 장애를 가진 사람 등을 위한 미국 연방정부 차원의 건강보험이다.

메디케어가 지원하는 연방 정부의 원격 의료는 그 대상과 조건을 까다롭게 설정하는 게 특징이다. 가령 메디케어 대상 원격 의료는 농촌 지역을 위한 의료공급 서비스로 간주하고 있다. 이에 따라 환자의 장소는 △통계청이 정의하는 도시통계지역 이외 지역 △미국 보건부 보건자원서비스청이 지정한 전문의 부족지역에 위치한 의료시설로 한정된다.

원격의료 서비스의 형태도 기본적으로는 실시간 영상 형태만 인정된다. 진료 내용을 미리 촬영 후 저장해 전송하는 방식은 원칙적으로는 허용되지 않으며 예외적으로 알래스카와 하와이에서만 시범 사업이 이뤄지고 있다. 반면 주 정부가 시행하는 의료보험제도인 '메디케이드'가 지원하는 원격 진료는 메디케어와 달리 환자의 위치를 농촌지역으로 한정하지 않아 보다 폭넓게 진료 대상을 인정한다.

일본 '외딴섬에서 전국으로'…프랑스 '늦은 출발 빠른 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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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나라 일본 또한, 원격 의료가 일찍이 허용된 국가 중 하나다. 일본은 1997년 12월 외딴섬이나 산간 지역 등 의료 접근성이 떨어지는 벽지 거주 주민에 대해 원격 의료를 처음으로 허용했다. 2015년 8월부터는 '정보통신기기를 활용한 진료에 대한 고시'가 제정되며 원격 의료가 법제화됐다.
 
원격 의료 범위도 지속적으로 넓어지고 있다. 처음 관련 고시가 제정됐을 때만 해도 그 대상을 도서·벽지에 거주하는 9가지 만성질환 환자로 한정했지만 이후 3차례 개정을 거쳐 2015년 8월부터는 전국에서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가 전면 허용됐다. 2018년에는 원격 의료에도 건강보험을 적용하기로 해 정식적으로 의료체계에 편입된 상태다.

일본의 원격 의료 대상은 기본적으로 의사의 판단에 맡기고 있다. 단 초진 후 6개월 이상 동일한 의사에게 대면진료를 받았거나 최근 1년 동안 6회 이상 통원해야 하는 조건은 붙는다. 이 조건을 갖춘 환자가 의사 판단에 따라 원격 의료 대상이 될 경우 관련 스마트폰 원격진료 앱을 통해 예약부터 진찰, 수납, 처방 그리고 결제까지 가능하다.

우리나라 의료보험제도와 유사한 단일 보험체계를 갖춘 프랑스는 비교적 최근에서야 원격 진료가 제도화됐다. 2009년 7월 원격의료와 관련된 규정이 처음 정해지며 이듬해 원격 의료를 ①원격상담, ②원격자문, ③원격감시 ④ 원격의료지원 ⑤ 기타 필요한 경우 등 다섯 가지로 명시했다. 이처럼 부분적으로 인정되던 원격의료는 2018년 들어 정부가 공식 합법화하며 대상이 확장되고 있는 상태다.

프랑스 또한, 일본과 마찬가지로 원격진료 진행 여부는 의사가 결정한다. 대상 환자가 최근 1년 이내 해당 의사와 대면진료를 해본 적이 있는 재진환자이며 주치의 중심의 진료체계에서 원격진료가 이뤄지는 경우 70% 수준의 건강보험 보장률이 적용된다. 원격 의료의 제도화는 상대적으로 미국, 일본 등보다 늦었지만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원격 의료가 활성화되며 원격 진료 이용은 점차 늘어나는 상황이다.

팬데믹 거치며 논의 가속화…민영화·영리화 우려도


우리나라는 그간 원격 진료 활성화 논의가 빠르게 진전되지는 않은 축에 속한다. OECD 국가 중 칠레, 체코 등과 함께 원격 의료가 허용되지 않은 국가로 분류돼 있다. 현재 우리나라 의료법 규정상 원칙은 대면 의료로 정하고 있으며 원격 의료는 의료인에게서 또 다른 의료인에게 의료지식이나 기술을 지원하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즉 환자를 대상으로 한 원격 의료는 명확한 제도나 법이 부재한 상황이다.

이처럼 잠잠했던 논의는 최근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 특히 보건복지부의 한시적 비대면 진료 고시로 코로나 유행 속 원격 의료를 경험해 의료기관과 환자 모두 부담의 턱이 한 단계 낮아진 상황이다.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를 실시하는 의원급 의료기관은 지난 2020년 9464개소에서 올해 5월 기준 1만8970개소로 2배 늘었고 비대면 진료 횟수는 같은 기간 96만 건에서 1083만 건으로 11배 가량 증가한 상황이다.

이러한 흐름 속에 코로나19 이전까지 원격 의료 허용을 강경하게 반대했던 의료계도 변화의 기류가 나타나고 있다. 일부 허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면서 다만 △진찰료의 현실화 △원격의료 시행 의료인에 대한 법적 책임 경감 등 조건이 맞춰지는 것을 전제로 내걸고 있다. 반면 국토 면적이 좁고 의료기관 접근성이 용이한 우리나라의 특성을 고려하면 원격 의료 허가가 자칫 의료민영화ㆍ영리화를 부추길 수 있다는 우려도 여전히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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