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제약 주식을 다수 보유해 '이해충돌' 논란을 빚은 백경란 질병관리청장이 국정감사 막판까지 야당 의원들이 요청한 취임 전 주식거래 내역을 제출하지 않았다.
여당에서도 신속한 자료 제출을 촉구한 가운데 야당은 백 청장이 국회를 모독했다며 국회증언감정법 위반으로 청장을 고발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강훈식 의원은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종합감사에서 "국감 첫날 백 청장의 주식 거래내역 자료제출을 요구했는데 3주가 지난 오늘, 국감 마지막 날까지 (자료 제출이) 거부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백 청장이) 민간 자문위원 시절 서약서에 자필 서명을 하고도 내부정보를 활용해 주식을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은 자료제출 거부로 전혀 해소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백 청장이 3332주의 주식을 보유하고 있었던 신테카바이오는 보건복지부의 400억대 '인공지능(AI) 기반 신약개발 플랫폼 구축사업'에 참여한 6개 기업 중 하나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최근 인사혁신처는 백 청장 배우자 명의의 100여 개 종목 주식 중 2가지(엑세스바이오·SK)에 대해 직무관련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파악됐다.
백 청장은 해당 주식을 모두 매각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지만, 취임 이후에도 관련 주식들을 보유하다 뒤늦게 매각한 사실이 드러나 논란을 키웠다.
강 의원은 이같은 상황을 들어 "인사혁신처에 직무연관성 심사 의뢰를 했다는 주식은 매각하더라도 심사가 계속된다는 보도해명자료와 달리 심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사실상 직무연관성 심사를 피하기 위해 제약·바이오 주식들을 매각한 게 아니냐는 새로운 의혹도 추가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1차 질의 종료 전까지 백 청장에게 주식 거래내역을 제출할 것을 재차 재촉하며 "이쯤 되면 질병청장이 아니라 '주식관리청장'이라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당연하다"고 압박했다.
같은 당 김원이 의원도 "백 청장은 그동안 자신의 보유의혹에 대해 해명자료를 계속 내고 있는데, 그 자료가 또다른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최근 10년간 주식 보유 및 수익 내역, 청장 임명 당시 이해충돌 검증 주체와 인사검증 내역 등의 자료를 모두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여당도 가세했다. 국민의힘 간사인 강기윤 의원은 백 청장에게 "뭐가 그리 떳떳하지 않은가"라며 "파격적인 모습 좀 보여주시기 바란다. (의원들이 요청한) 자료를 제출해 달라"고 거들었다.
하지만 이날 오후 4시경까지 관련 자료는 제출되지 않았다.
이에 강훈식 의원은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2차 질의를 마감할 때까지 시간을 다시 한 번 드리겠다"며 '사모펀드 의혹' 등으로 검찰 수사대상이 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례까지 거론했다.
강 의원은 "지난 정부 때 모 장관은 서울대 교수 시절 본인도 아니고 아내가 사모펀드에 가입했단 이유로 검찰 조사뿐 아니라 모든 가족들이 샅샅이 다 털렸었다"며 "더군다나 지난 5월 19일 이해충돌방지법이 시행돼서 이제 청장님은 (기관 관계자가) 직무상 비밀을 이용해서 이익을 취득하면, 과태료(부과)나 직무정지를 취해야 하는 위치에 가 계신다"라고 짚었다.
이어 "본인은 법망을 피할지 모르지만 본인의 도덕성이 그것을 집행하는 기관 전체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중요하다고 본다. 국민의 신뢰 문제"라며 "본인이 (이해충돌 소지가 있는) 역할을 했다면 오히려 공개하고 사과할 것은 사과하고, 물러날 일이 있으면 물러나야 될 것"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이 문제는 어쩌면 질병청 전체 직원, 복지부 전체 하위직 공무원도 주식을 하지 않았나, (보유주식이) 직무 연관성이 있지 않았나 등의 조사도 불가피하단 점을 명심해야 한다"며 "본인 스스로가 결자해지할 각오로, 떳떳하다면 정면 돌파하라"고 거듭 자료제출을 촉구했다.
민주당 강선우 의원 역시 "본 의원과 정춘숙 위원장께서 오전 질병청에 자료제출을 공식 요구했지만 이 시간까지 자료제출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심지어 저희 의원실에 일체 연락조차 없다. 이는 국회에 대한 심각한 모독"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민감한 개인정보의 선택적 제출, 국회에 대한 합법적 자료제출 거부에 대해 질병청은 법적,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며 "백 청장과 김헌주 차장을 비롯해 자료제출을 거부한 질병청 관계자들에 대해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징계, 위원회 차원의 고발을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정춘숙 복지위원장은 "일단 양당 간사들께서 의논해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한편, 질병청은 소속 직원들의 보유주식에 대한 감사도 실시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민주당 신현영 의원실에 따르면, 식약처는 지난해 임·직원을 대상으로 한 보유주식 이해충돌 심사에서 20명을 적발했다. 각각 9명은 공무원, 11명은 공무직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들의 소속부서는 의료기기안전관리과, 의약품정책과, 의료제품실사과, 건강기능식품정책과 등으로 업무 관련성이 있는 일양약품, 한미약품, 셀트리온 등의 주식을 보유한 것으로 조사됐다. 해당 직원들은 대부분 임용 전이나 제한 대상이 되기 전 주식을 매수했다고 해명했지만, 그 이후에도 주식을 처분하지 않은 점은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식약처는 거래시점 상 이들이 식약처의 자체 행동강령을 위반한 것은 아니라 판단했지만, 이해충돌 방지 차원에서 매매 제한과 자진 매각 등을 권고했다고 밝혔다. 반면 국감 내내 청장의 이해충돌 의혹이 지속된 질병청은 보유주식에 대한 내부 감사가 전무(全無)했다.
이밖에 질병청은 수사기관에도 내주지 않던 코로나19 확진·접종이력 등을 감사원에 넘긴 사실로도 도마에 올랐다(관련기사: [단독]검경에도 안주던 코로나 개인정보…감사원에만 넘겼다).
이 문제를 질의한 민주당 한정애 의원은 "질병청이 감사원에서 요구한 코로나19 관련 2만 5천 명 가량의 정보를 통째로 제공했다. 지금까지 검찰·경찰이 수사를 위해 수없이 자료를 요청했을 때는 단 한 번도 제공한 적이 없었다"고 짚었다.
한 의원은 "그간 질병청이 신뢰를 쌓아왔던 것은 내가 백신을 맞았건, 확진됐건 그 정보가 (방역 외) 어딘가에 쓰여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런 식으로 질병청이 국민을 배신한 것은 문제가 굉장히 심각하다. 대국민 신뢰 회복을 위해 질병청의 사과가 있어야 하고, 백 청장은 방역정책 수장으로서 자격이 없다고 본다"고 맹공했다.
백 청장은 "개인정보와 민감정보가 잘 보호돼야 한다는 원칙적 내용에 깊이 공감한다"면서도 "감사원법과 그 하위규칙에 민감정보를 포함한 개인정보를 제출받아 처리할 수 있게 돼있는 것으로 검토한 바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