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 여순, 또 다른 비극의 서막…대를 거친 악몽 어디까지 이어졌나 ② "지리산에 산다고 끌고 가 맥없이 죽였어"…끝나지 않은 여순 ③ 생지옥 임실 폐광굴 '오소리 작전'…"민간인 600명 몰살" ④ 핏빛으로 물든 지리산…"보이는 건 모두 적, 섬멸하라" ⑤ 기록되지 못한 상처, 기억해야 될 시간…여순사건 과제 산적 (계속) |
지난 8월 22일 전남 순천의 한 장례식장.
고(故) 김동심 여사의 빈소가 차려진 이곳에 여순사건 희생자 유족들의 발걸음이 하나둘 이어졌다.
여순사건 당시 순천 월등면 큰박골 사건으로 남편 권성옥(당시 29세)씨을 잃은 뒤 한 많은 인생을 보낸 그녀였다.
빈소는 같은 여순사건 희생자 유족으로서 서로를 위로하고 때로는 진상규명을 위해 한목소리를 내왔던 이들로 채워졌다.
조문객들은 유복자가 된 아들을 어쩔 수 없이 시어머니에게 맡기고 시댁을 나와야 했던 김 여사의 삶을 꺼내며 고인을 기렸다.
이내 빈소 곳곳에서는 여순사건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을 위해 속도를 내야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한숨이 이어졌다.
올해 1월 21일 여수·순천 10·19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시행과 함께 피해 신고 접수가 이뤄지고 있지만 진상규명 속도보다 74년 세월을 버텨온 1세대 유족들의 시간이 훨씬 빠르게 흐르는 터였다.
주홍글씨로 인한 상처, 희생자·유족 신고 저조
"여순사건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장면을 TV에서 지켜보면서도 마음을 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70여 년이 넘도록 남모르게 피눈물을 흘리며, 부모도 모르고 살아올 때는 눈길 한 번 주지 않더니. 올해 초 동사무소에서 신고 접수를 재촉하는 전화가 왔지만 가족들은 그렇게 모질게 고통 받고 기죽고 살았으면 됐지, 또 가슴 후빌 일 있느냐며 말렸습니다. 그날 이후 며칠 몇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며 여기까지 왔습니다."
광양지역 여순사건 희생자 고(故) 김병석씨 딸 명자(74)씨는 지난 19일 광양에서 열린 여순사건 74주기 정부 합동 추념식에서 이같이 말했다.
명자씨의 사연에서처럼 이데올로기 대립에서 시작된 아픔은 급격한 반공주의를 거쳐 유족들의 가슴에 주홍글씨로 남았다.
평생을 연좌제 피해를 당하며 살아왔던 희생자 유족들이 특별법이 시행된 지금까지도 적극적으로 신고에 나서지 못하는 이유다.
어렵게 피해 신고에 나서더라도 고령의 나이와 조사 인력 부족이 걸림돌이다.
74년이 지난 역사인 만큼 당시 유복자로서 가장 연세가 적은 희생자 유족이 74세인 상황.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의 단초가 될 피해 신고 접수부터 어려움이 큰 실정이다.
고령이 되면서 희미해진 기억에서부터 보증인 부재, 제적등본에 나타나지 않는 희생자 등 접수 시작부터 난관에 처할 때가 많다.
현장에서 신고 접수 돕고 있는 박소정 여순10·19범국민연대 운영위원장은 인력 증원과 함께 행정 차원의 사명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위원장은 "신고 접수 인력에서부터 현장을 쫓아야 할 조사원 인력이 태부족하다는 것은 일선 현장에서 다 나오는 이야기들이다"며 "여순사건과 관련한 지자체 주무부서가 있지만 다른 행정까지 담당하다보니 한계를 보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 특별법 시행에 따라 올해 1월 21일부터 지난 14일까지 전라남도에 접수된 여순사건 희생자 유족 피해 신고는 3450(진상규명 123, 희생자신고 3327)건에 불과하다. 전북과 경남지역 신고건수는 20건이 채 되지 않는다.
전라남도가 여순사건 발발 다음해인 지난 1949년 실시한 조사에서 1만 1131명이 희생됐다고 집계된 것을 감안하면 매우 저조하다.
특히 당시 조사가 여순사건의 여파로 1955년까지 이어진 지리산권 초토화 작전의 피해를 제외하고 전남지역에만 국한한 점을 감안하면 여순사건 희생자는 1만 1천 명대를 훌쩍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직자 중심의 상임위원 하나 없는 이원화된 기구도 문제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의 키를 쥐고 있는 여순사건위원회의 한계점도 짚어봐야 할 부분이다.
특별법 시행에 따라 출범한 여순사건위원회는 국무총리 소속의 여순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이하 중앙위)와 전라남도 차원의 여순사건 실무위원회(이하 실무위)로 구성됐다.
실무위 심의를 거친 희생자·유족 심사건이 중앙위에 제출되면 특별법 시행령에 따라 90일 이내에 심사·결정이 이뤄지는 구조다.
중앙위와 실무위는 각각 국무총리와 전라남도지사를 위원장으로, 일부 민간 전문가가 위촉직 신분으로 참여한 가운데 당연직을 맡고 있는 공직자 중심의 비상임 체계로 운영 중이다.
그러나 학계를 비롯한 정치권, 지역사회 곳곳에서 공직자 중심의 위원회 구성부터가 문제라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민간 전문가의 역할이 미미한데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비상임 체제에서는 제대로 된 진상규명이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민간을 중심으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활동을 전개해온 5·18민주화운동과 대비된다.
조진태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과거 청산의 경험을 보면 국가기관이나 정부에서 적극 나선 경우가 드물다. 5·18도 철저하게 민간에서 운동적 측면으로 진상규명 활동을 벌여왔다"며 "여순사건 진상규명에 있어서도 민간 전문가가 전면에 나서 책임 있는 역할을 해야 한다. 5·18기념재단이 정부로부터 자유롭게 진상규명 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민간재단이기 때문"이라고 조언했다.
주철희 여순사건위원회(중앙위) 위원 역시 "과거사 정리를 위해서는 그 사건을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 책임을 지고 위원회 활동을 꾸려가야 하는데 여순사건의 경우 중앙위나 실무위 모두 국무총리와 전라남도지사를 위원장으로 한 비상임 구조를 띄고 있다"며 "국정과 도정을 총괄하는 이들이 여순사건에 얼마나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겠느냐. 위원회 구성 자체부터 잘못됐다"고 지적했다.
주 위원은 이어 "진상규명 과정에서는 생각하지 못한 문제들이 많이 발생하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위원회가 탄력적으로 일해야 하지만 법령에 따라 일하는 공직자는 상대적으로 경직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며 "조직 개편이 어렵다면 민간 출신 상임위원을 1명이라도 둬야 한다. 비상임은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여순사건 특별법 개정 움직임…'국회 통과' 여전한 숙제
특별법을 대표발의한 소병철 의원(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은 조직 구성 개편의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현 상황에서는 행정력의 도움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소 의원은 "신고를 받아 희생자 규모를 확정하는 과정에서는 행정력의 도움을 받는 것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며 "다만, 신고 접수가 어느 정도 마무리되면 위원회 구성을 들여다보고 민간 전문가들이 도움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위원회 구성에 변화를 갖는 것도 검토해볼 일이다"고 의견을 밝혔다.
실무위 운영과 일선에서 피해 신고 접수를 맡고 있는 전라남도는 이같은 의견을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앞서 전문성에 대한 우려를 보완하기 위해 자문위원 14명을 5개 분야로 위촉했으며 실무위 위원장을 민간 전문가로 교체하는 방안도 다음 회의 안건으로 준비하고 있다.
또 여순사건 희생자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에도 있는 만큼 중앙위 위원장인 국무총리를 중심으로 각 시·도지사가 협약을 맺어 희생자 유족 신고 접수에 적극 나서는 계획도 수립하고 있다.
현 특별법에 대한 한계점과 보완의 필요성도 함께 언급되고 있다.
소 의원은 "특별법의 궁극적인 종착점은 국가가 희생자들에게 배상하고 사과를 하는 것이지만 현재는 진상규명까지만 법에 들어가 있다. 종착점까지 절차적으로 거쳐야 될 부분이 많다"며 "예를 들어 희생자와 같이 고통을 겪은 유족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하는 방안도 필요한데 특별법 원안에는 있었지만 통과 과정에서 삭제됐다. 이런 부분을 개정안을 통해 하나하나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의견이 이어지면서 본격적인 특별법 개정 움직임도 시작됐다.
서동용 의원(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을)은 여순사건 74주기를 하루 앞둔 지난 18일 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보상 기준을 담은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희생자 및 유족에 생활지원금 지급 △특별재심 규정 신설 △진실·화해 조사위원회 조사 결정에 대한 경과조치 신설 △중앙위원회와 실무위원회의 비상임구조를 상임구조로 변경 △위원회 상임위원의 자격을 법률에 명시 △신고 및 조사보고서 작성기간 연장 △위령사업을 위령·기념사업으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서 의원은 "여야 합의로 특별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많이 노력했지만 부족한 부분이 있다"며 "지역사회의 목소리를 반영해 민간 전문가의 활동 범위를 넓히고 피해 접수 기간을 늘리는 내용의 개정안을 꾸준히 검토해 왔다"고 전했다.
다만, 이같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야 합의를 이루기 위해 특별법 제정에만 20년이 넘는 세월이 걸렸던 만큼 개정안의 국회 통과 여부는 끝까지 관심을 갖고 지켜봐야 할 숙제다.
학계에서도 조명되지 않는 여순사건 연구
여순사건을 포함한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과 관련한 연구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주 위원은 "여순사건은 물론 전북과 경남을 포함한 한국전쟁 전후 지리산권 민간인 학살과 관련해 연구가 제대로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며 "특히 전북의 경우 동학 세력의 영향으로 당시 사회주의적 성향이 강했는데 우리 사회가 급속히 반공국가가 되면서 민간인 학살 등에 대해 말문을 떼기 어려운 환경이 돼버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반공 분위기 속 나서서 다치고 싶지 않다는 심리가 크게 작용했기 때문"이라며 "한국전쟁 전후 민간인 학살에 대해 학문적으로도 금기시될 수 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이 분야를 연구해 임용되기도 굉장히 어렵다. 우리 사회의 포용 능력이 굉장히 부족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이 영상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정부광고 수수료를 지원받아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