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으로 세상에 드러난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처우를 개선하고, 조선업 인력난을 해소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내년 초까지 원-하청 상생협약을 체결해 이행하도록 정부가 지원해 조선업 불황 이전 수준으로 하청노동자들의 임금을 개선하겠다는 목표다.
"하청노동자 임금, 조선업 불황 전 원청 80% 수준까지는 끌어올릴 것"
정부는 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비상경제장관회의를 통해 관계부처 합동으로 '조선산업 격차해소 및 구조개선 대책'을 발표했다.앞서 지난 7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의 파업을 계기로 조선업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이 부각되자 정부도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특히 2016년 이후 조선업계가 불황을 겪으면서 주요 원청 조선사도 경영상황이 악화돼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은 원청 대비 50~70% 수준(연봉 기준)으로 떨어진 상태다.
최근 선박 수주가 회복되면서 인력 수요도 늘고 있지만, 정작 노동자에 대한 처우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어 인력난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고용노동부 권기섭 차관은 "불황 전에는 원·하청 임금 격차 수준이 80% 수준이었다"며 "불황 전 수준은 회복되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정부 대책의 목표를 말했다.
원-하청 기업 상생협약 후 원·하청 노사협의체에서 4자 대화 이어가기로
우선 정부는 다음 달 중으로 정부와 조선 주요 조선사와 협력업체들이 내년 초 '원하청 상생협력 실천협약'을 체결, 이행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다.이를 위한 첫걸음으로 이날 정부와 원청 조선업체 간의 MOU를 체결하고, 다음 달 중으로 원·하청 업체들과 전문가, 지자체 등이 참여하는 '조선업 원하청 상생협의체'를 출범해 협약 체결을 준비할 계획이다.
권 차관은 "다음 달(11월)부터 시작해 이르면 내년 2월, 적어도 1분기 안에는 상생협약을 체결할 것"이라며 "내년 말에는 원·하청 노사가 공동협의체를 구성하는 스케줄로 움직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사측 뿐 아니라 원하청 노동자도 참여하는 공동협의체를 발족하고, 지역노사민정협의회를 통해 협약 이행 여부를 살필 예정이다. 또 정부 합동평가단도 구성해 이행 상황을 종합 평가하기로 했다.
또 기업 단위로도 개별 원청 조선업체 단위의 원·하청 노사가 참여하는 노사협의체를 내년에 설치해 대화를 지원하기로 했다.
정부는 상생협약의 구체적 예시로 △적정 기성금 지급 △하청사 대형화 및 물량팀 축소 유도 △물량팀 재하도급 자제 △조선업 근로복지기금 조성 △원·하청 통합 산업안전 관리 강화 △직무·숙련 중심 임금체계 개편 등을 꼽았다.
다만 권 차관은 "조선업은 수주에 있어 국가 간 경쟁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라며 "당장 물량팀을 없앨 경우 여러 어려움이 있어 조금 더 시간을 갖고 물량팀을 최소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협약을 참여·이행하는 기업에는 각종 장려금·수당을 우대지원하고 한국기업지배구조원 ESG 평가에서 가점을 부여하는 등 지원한다.
아울러 조선업종 차원에서는 숙련퇴직자 재고용 장려금 및 기술전수수당, 계속고용장려금, 공동이용시설 개선비용 등을 제공하는 '조선업 상생지원 패키지'를 신설해 정부 지원을 강화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올해 중에는 조선업 표준하도급 계약서를 개선하고, 내년 상반기에 하도급 대금 결제조건을 공시하도록 의무화해서 원청이 하청을 상대로 벌이는 불공정거래를 막겠다고 밝혔다.
특히 현장 상황을 파악하도록 내년부터 노동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공정거래위원회가 합동으로 하도급 실태조사를 매년 실시하기로 했다.
조선업 취업자 정부 지원 확대…임금체계 개편 위한 실태조사도 이뤄져
이처럼 원·하청 노동자 간의 노동조건 격차를 해소해 처우를 개선하면서 신규 인력이 유입되고, 숙련 기능인력이 현장에 남도록 유도하는 정부 지원도 함께 제공된다.대표적 사례로 사내하청업체에 신규 입직한 취업자가 3개월 이상 근속하면 취업정착금 100만원을 지급하는 '취업정착금' 사업을 신설한다.
또 올해 도입됐던 '조선업 희망공제'는 내년부터 시행지역 및 대상 연령을 확대한다. 조선업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와 지자체, 정부가 함께 연 600만원을 적립해 지급하는 방식이다.
하청 노동자가 원청 상용직으로 옮길 수 있는 '채용사다리' 사업도 재개한다. 기술교육원 훈련을 받고 하청 노동자로 2년 이상 근무하면 원청업체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기업별 공동근로복지기금에 대한 정부 매칭지원 규모를 확대하고, 내년부터 기숙사 임차료, 교통비 등 하청노동자의 복리후생 지원도 확대한다.
불황 동안 현장을 떠났던 숙련퇴직자가 재취업할 경우 기업과 노동자 모두 30만원씩 지급하고, 고령자 계속고용장려금 지원기간도 1년 연장한다.
특히 눈에 띄는 지점은 내년부터 조선협회 주관으로 직종·숙련도별 조선업 시장임금을 조사한다는 점이다. 정부는 현재 미래노동시장연구회에서 논의 중인 임금체계 개편에 발맞춰 직무·숙련도를 반영한 임금체계의 기반으로 조사 결과를 활용할 계획이다.
'발등의 불' 인력난 해소토록 외국인 노동자 배정, 특별연장근로도 확대
당장의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외국인력도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E-9 비자 외국인력을 조선업에 최우선 배정하고, 사업장별 고용허용인원도 확대할 방침이다.
그럼에도 인력난이 계속돼 일감을 소화하기 어려울 경우를 대비해 제조업종 특별연장근로 기간 한도를 180일 확대하기로 했다.
이 외에도 조선업 현장의 안전 관리 실태를 논의하도록 주요 조선사별로 원하청 통합 안전보건협의체를 구성하고, 하청업체가 안전관리체계를 구축하도록 원청이 지원하면 정부가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산업안전 상생협력 프로그램' 참여를 유도하기로 했다.
내년에는 건설업에만 적용되던 강화된 산업안전관리비 편성·반영 기준을 조선업에도 적용하도록 하고, 거제에 '근로자 건강센터'를 새로 설치한다.
하청업체가 열악한 경영 상황을 이유로 임금 체불이 잦은 점을 고려해 조선업체가 밀집한 경남권의 체불 다발 조선업체에 기획감독·직권조사를 실시한다.
또 하청업체가 임의로 노동자들의 임금을 가로챌 수 없도록, 원청이 노무비를 신탁계좌에 지급하고 하청이 실제로 임금을 지급해야만 인출할 수 있도록 하는 '노무비 구분지급·확인제'를 확산하겠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이러한 내용에 대해 같은 날 오후 주무부처인 노동부와 산업부, 공정위와 조선업 주요 원청업체 등이 모여 '조선업 재도약을 위한 상생협력 공동선언'도 함께 발표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