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바이벌 프로그램'이라는 특성을 십분 활용해 무리한 상황을 제시하거나, 소위 '악마의 편집'을 해온 역사가 긴 엠넷이었기에 '스우파' 역시 각자 실력을 뽐내는 '경연'보다는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갈등'이 부각될 위험이 있었다. 그러나 훅·라치카·홀리뱅·코카N버터·프라우드먼·웨이비·원트·YGX 여덟 팀은 이런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이들은 매회 감탄이 절로 나오는 수준 높은 대결과 무대를 선보였고, 여기에 확실한 캐릭터와 관계성이 더해져 어마어마한 사랑을 받았다. 수많은 이들이 '여성 댄스 크루'의 존재를 알게 됐고, 미션 곡이었던 '헤이 마마'(hey mama)와 안무도 주목받았으며, 댄서들의 무대만으로 꾸미는 콘서트가 가능하다는 걸 입증했다. 종영 한 달 만에 여고생 크루들의 춤 대결을 다룬 파생 프로그램 '스트릿 걸스 파이터'가 방송된 것은 '스우파'의 대성공을 보여주는 예 중 하나다.
여성 출연진 프로그램으로 가능성을 확인하면 그다음 규모를 확 키워 적극 지원하는 남성 출연진 프로그램이 나오는 일이 종종 반복된다. 뒤늦게 '전 시즌 조작' 사실이 밝혀졌으나 한국에 아이돌 오디션 붐을 일으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프로듀스' 시리즈나, 트로트 열풍을 불러온 '미스트롯'이 그랬다. 그러니 '스맨파'의 탄생은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스우파' 종영 기자간담회에서부터 남성 버전의 '스트릿 맨 파이터'(이하 '스맨파') 얘기가 나왔으니.
공교롭게도 결정적인 순간 꾸준히 찬물을 끼얹은 이들이 있었다. 댄스 크루 프라우드먼의 리더이자 '스우파' 출연자인 모니카가 지난해 11월 예능 프로그램에서 언급한 내용을 두고 '팝핀이 아니라 팝핑이 맞다'라며 전문성 부족을 운운하는 움직임이 남성 댄서들을 중심으로 퍼졌다. '팝핀'('팝핑')을 대중화한 미국 댄서 팝핀 피트조차 두 개가 같은 춤 스타일이기 때문에 표현에 맞고 틀림이 있는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도 말이다. 불을 지피고 거드는 이들이 수십 명에 이르러 사실상 모니카를 향한 사이버 불링이 됐다.
누군가의 잘못을 시정하려고 하거나,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어 이를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본인 주장이 대중으로부터 충분한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고 머릿수 늘리기로 대응하거나, 댄서신에 '빠순이'(여성 팬을 비하하는 말)가 끼어들었다는 둥 수준 낮은 막말로 대응하는 태도가 문제일 뿐이다. '억지 논란'을 일으킨 댄서들을 향한 시선이 차가워진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스맨파'에 '팝핀 팝핑 사이버 불링'에 동참한 댄서들이 출연하는지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된 까닭이다.
올해 5월 열린 엠넷 댄스 IP 제작진 공동 인터뷰에서 '스우파'와 '스맨파' 연출을 맡은 최정남 PD는 '팝핀 팝핑 논란'을 자초한 남성 댄서의 '스맨파' 출연이 정해진 바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스맨파'의 전초전 격이었던 '비 엠비셔스'에는 '모니카 저격'에 나선 댄서가 출연했다.
제작진의 대표적인 무리수는 '스우파' 콘서트에 '스맨파' 보태기였다. '스우파'의 화제성을 활용하고 충성심 높은 팬층을 흡수하고 싶었던 걸까. 7월 열린 '스우파' 단체 콘서트에서 예매 당시에는 고지되지 않았던 '스맨파' 출연진이 나온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스우파' 팬들의 반발이 극심했다.
그러자 엠넷은 "'스맨파' 크루들은 '스우파' 크루들의 공연 시간을 할애해서 공연하는 것이 아닌 공연 중간 인터미션 시간에 스페셜 게스트로 출연하는 것"이라며 "'스맨파' 크루들은 방송 미션으로 진행된 무대를 관객들에게 선보이는 것일 뿐 미션 촬영을 진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사전 미고지 부분에 관해서는 티켓 오픈 당시인 6월 초만 해도 '스맨파' 크루 출연이 정해지지 않아 그랬다는 입장이다.
거기다 '비 더 스맨파' 방송에서 뱅크투브라더스'(BIIB)의 약칭을 '비투비'로 표기해 현재 활동 중인 K팝 그룹 '비투비'(BTOB)를 연상케 해 상도덕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로고도 유사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엠넷 제작진은 "비투비는 뱅크투브라더스 크루가 이미 쓰고 있던 약칭이지만 혼란을 드리게 된 부분을 인지해, 향후 방송상 혼란을 줄이고 변별력을 높이고자 크루명을 풀네임으로만 표기하도록 결정했다"라며 "로고 및 시그널도 독창성을 높이기 위해 빠르게 변경 작업을 진행해 차주부터는 변경된 버전으로 선보이겠다"라고 밝혔다.
"8월 중 매주 화요일 방송될 '스맨파'에 많은 관심 부탁드린다"라고까지 했으나, 비투비와 팬들, 소속사를 향한 사과는 빠져 있었다. 큐브 엔터테인먼트가 "'스맨파'에 참여하는 크루명과 자사 아티스트명이 같은 점, 해당 크루의 로고와 슬로건이 유사한 점을 인지"했다며 "엠넷 측에 비투비의 로고와 성명의 상표권이 기등록되어 권리 침해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리며, 관련 내용에 대한 사과를 강력히 요청했다"라고 밝혔음에도.
남성 댄서들은 '댄서'인데, 여성 댄서들은 '아이라인 뽝 하신 누님들'이다. 불과 지난해에 본인이 MC를 맡았던 프로그램에 출연한 이들을 전문 직업인으로 존중하는 태도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발언에 문제를 제기하자 "저런 분들은 스탠딩코미디 가면 화내시고 나오시겠다, 진짜"라고 비꼬듯 대응한 강다니엘은, 사태가 커지자 비로소 고개를 숙였다. 그는 "'긴장되고 떨렸다'라는 본의를 지나치게 과장해 표현해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켜 송구스럽다"라며 "제 대응 방식이 경솔했다"라고 인정하고 사과했다.
제작발표회에서도 실언이 나왔다. '스맨파'와 '스우파'의 차이를 물었을 때 권영찬 CP는 "여자 댄서들과 남자 댄서들의 춤이 확실히 다르다"면서 "여자들의 서바이벌에 질투와 욕심이 있었다면, 남자들의 서바이벌에는 의리와 자존심 싸움 등이 많이 보여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본인의 성별 고정관념으로 인해 단숨에 '스우파' 여성 댄서들은 '질투와 욕심', 남성 댄서들은 '의리와 자존심'으로 정리됐다.
묻고 지나가기에는 수습이 불가능한 수준의 발언이었기에 엠넷은 "일부 제작진의 발언은 엠넷이 추구하는 '편견을 깨는 새로움'이라는 핵심 가치와 저희 댄스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인 '경쟁과 연대를 통한 성장'이라는 취지에 맞지 않는 발언이었다. 이러한 일반화 오류적인 발언에 대해 엠넷은 책임을 깊이 통감하는 바"라는 사과문을 냈다. '스우파'와 '스맨파'에서 '책임 프로듀서'라는 중책을 맡은 권영찬 CP를 '일부 제작진'이라는 말로 가리는 것이 맞느냐는 비판을 피할 수는 없었다.
첩첩산중은 끝나지 않았다. '스맨파'의 유일한 히트 상품인 지코의 곡 '새삥'마저도 안무 표절 논란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스맨파'에 출연 중인 위댐보이즈 리더 바타가 만들었다는 '새삥'의 도입부 오토바이 안무는 이미 3년 전 발표된 에이티즈의 '세이 마이 네임'(Say My Name)의 안무와 지나치게 비슷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세이 마이 네임' 안무를 하는 에이티즈를 보고 '새삥 챌린지'를 하는 거냐는 반응이 나올 만큼 두 안무의 유사성이 수면 위로 떠 올랐다. 그러자 에이티즈 멤버는 공연에서 안무 유사성을 지적할 때 하는 핸드사인을 했고, 에이티즈 안무 원작자인 안제 스크루브 역시 바타가 사과할 일이라고 공론화했다.
표절 의도가 없었을지라도 창작물의 결과가 비슷하게 나오는 일은 왕왕 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의도적인 표절이 아니었다는 점을 최대한 구체적으로 밝히고 차가운 여론을 설득하는 것이다. 바타와 엠넷이 택한 방식은 '며칠간의 침묵'이었다.
침묵을 깨고 나온 바타의 글은 사과문이 아닌 입장문이었다. '창작 안무'에서 치명적인 '표절' 논란이 벌어졌음에도 "그저 지나가는 찬바람"인 줄 알았다거나, "아티스트와 안무가는 서로 리스펙트 하는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아 많이 안타깝다"라며 에이티즈를 저격하는 듯한 발언을 해 논란을 재점화했다.
여기에 '스맨파' 팬덤은 심사 결과에 불만을 품고 심사위원('파이트 저지')인 연예인들에게 악성 글과 댓글을 남겼다. 보아는 "배틀 팀을 저지가 정하는 것도 아니"라며 "매번 이럴 생각 하니 지치네요"라고 심경을 토로한 바 있다.
위에 열거한, '스맨파' 측의 경솔한 태도와 대응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진다. 바로 '존중 결여'다. '팝핀 팝핑'으로 트집 잡았던 댄서들은 전문 직업인이자 교육자인 모니카의 전문성을 의심하고 동료로서 존중하지 않았다. MC 강다니엘과 권영찬 CP는 여성 댄서들을 굳이 남성 댄서들과 비교해 낮잡아 보는 시각을 드러냈다.
2012년 데뷔해 10년 동안 활동하며 사랑받은 비투비는, 같은 약칭과 비슷한 로고로 등장하는 크루와 관련해 소속사가 공개적으로 문제 제기하고 사과까지 요구했으나 제작진으로부터 사과받지 못했다. 20년 넘게 춤을 춰 온 당사자이자 '스맨파'의 전신인 '스우파'에서도 전문성을 인정받아 심사를 맡은 보아는 '아이돌 가수'라는 이유로 존중받지 못했다.
원작자의 문제 제기에는 아무 말도 없었던 바타는 이것이 왜 표절이 아닌지를 이해를 구하고 허심탄회하게 소통하려고 하기보다, 본인의 안무가 '리스펙트' 받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문제가 되는 안무 구간이 기본 안무에 해당한다며 비슷한 동작을 하는 여러 영상을 제시하며 보다 적극적으로 설명하려 했던 최영준은 굳이 해시태그를 달아 이후 나올 '이견'을 '너무 무서운' 것으로 규정해 버렸다. 타인을 존중하지 않으면서 존중과 이해를 바란다. '스맨파'는 왜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