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지 15일로 두 달을 맞았다. 취업제한 족쇄를 벗은 이 부회장은 주요 계열사 순회와 활발한 해외출장 등 광폭 행보로 경영 복귀 신고를 순조롭게 마쳤다.
이 부회장이 조만간 회장으로 취임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그룹 콘트롤타워 복원 등은 '이재용의 뉴삼성' 시대를 본격적으로 열기 위한 과제로 제시된다.
15일 재계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지난 11일 미래 주요 성장동력으로 지목한 바이오 부문의 인천 송도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 준공식 참석을 끝으로 전자와 비(非)전자를 아우른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순회를 완료했다.
이 부회장은 8·15 광복절 특별사면으로 복권된 이후 첫 행보로 삼성전자 기흥캠퍼스 반도체 연구개발(R&D) 단지 기공식에 참석한 데 이어 두 달 동안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SDS, 삼성생명 등을 연이어 방문했다.
현재의 핵심 먹거리인 반도체에서 경영 행보를 시작해 '제2의 반도체 신화'를 구현하겠다는 미래 먹거리 바이오로 마침표를 찍으면서 이 부회장은 역동적 혁신 성장을 위한 삼성의 미래 준비를 대외적으로 알렸다.
내부 직원과의 소통도 활발했다. 각 계열사를 찾을 때마다 구내식당에서 배식을 받거나 임직원들의 '셀카' 요청에 스스럼없이 응하고, 직원 가족과 영상 통화를 하는 등 격의 없는 모습을 보였다.
글로벌 네트워크 복원에도 박차를 가했다. 지난 8월 16일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인 빌 게이츠를 만난 데 이어 최근에는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을 만나 영국 팹리스 ARM과의 전략적 협력 관계 등을 논의했다.
지난달에는 보름간 멕시코와 파나마, 영국 등지에서 2030부산세계박람회 유치 지원과 해외 현장 경영을 펼쳤다.
이 부회장은 지난 12일에는 1년 9개월 만에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준법위)를 찾아 위원들과 1시간가량 면담하며 준법경영 의지를 재확인했다. 사실상 회장 취임 전 사전인사를 겸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부회장은 면담에서 "2020년 대국민발표 내용을 충실히 이행하고 위원회의 활동 방향인 공정하고 투명한 준법 경영, 환경·사회·지배구조(ESG) 경영에 적극 동참할 것이며, 노동인권을 보호하고 다양한 이해 관계자와의 소통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고 준법위는 전했다.
재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준법위 면담을 계기로 삼성그룹이 전문경영인이 이끄는 집단지배체체 등을 포함한 지배구조 개편과 그룹 콘트롤타워 복원 등에 본격 착수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앞서 이 부회장은 2020년 대국민발표를 통해 자녀에게 경영 승계를 하지 않겠다며 '4세 경영 승계 포기' 의사를 밝혔다. 삼성은 또 2017년 그룹의 콘트롤타워였던 미래전략실을 폐지하고 사업 부문별로 3개의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중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자사 사업과 무관한 삼성화재안내견학교의 행사 소식 안내를 담당해 이목을 받았다. '맏형'인 삼성전자가 그룹 차원의 투자 발표를 주도한 적은 있지만 공식 행사 홍보는 미래전략실 해체 이후 처음이었다.
삼성전자는 또 지난 11일 이 부회장의 삼성바이오로직스 제4공장 준공식 참석도 직접 챙겼다. 일각에서는 삼성전자가 사실상 나머지 계열사를 총괄하며 그룹의 새 콘트롤타워 복원을 준비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와 관련해 이찬희 준법위원장은 '그룹 콘트롤타워 복원이 필요하다고 보느냐'는 질문에 "개인적 신념으로는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개인 의견과 위원회 의견은 완전히 별개"라며 "아직 논의도 안 됐고 결론도 안 내렸다"고 말했다.
지배구조 개편은 해묵은 과제다. 올해 2월 출범한 2기 준법위는 '지배구조 개선을 통한 ESG 경영 실현'을 3대 중심 과제로 꼽았다. 2년 전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생명 3개사가 보스턴컨설팅그룹에 지배구조에 대한 용역을 줬으며, 최종 보고서는 아직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
삼성의 지배구조는 이 부회장 등 오너일가→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진다. 삼성물산 최대 주주인 이 부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가 보유한 삼성물산 지분 31.31%를 통해 삼성생명, 삼성전자를 간접 지배하는 형태다.
야당은 '금산분리' 원칙에 입각한 일명 '삼성생명법' 입법을 추진 중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을 총자산의 3%만 보유할 수 있어 20조원 이상에 달하는 나머지 지분은 모두 팔아야 한다.
삼성물산과 삼성생명을 고리로 한 지배 구조가 무너지면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은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 부회장과 준법위의 면담에서는 그룹 콘트롤타워 복원과 지배구조 개선 방안 등에 대한 논의가 오갔을 것으로 보인다.
경영 전면에 나선 이 부회장의 회장 취임이 임박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 부회장은 2012년 12월 44세에 부회장으로 승진한 뒤 10년째 부회장 직함을 유지하고 있다. 4대 그룹 총수 중 유일한 부회장이다.
회장 취임 시기로는 오는 25일 고(故) 이건희 회장 2주기, 11월 1일 삼성전자 창립 51주년 기념일, 사장단 정기 인사 시즌인 12월 등이 거론된다. 내년 3월 정기 주주총회를 거쳐 등기 임원에 오르면서 회장 직함을 다는 방안도 언급된다.
다만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가 30년 만에 삼성그룹의 총수(동일인)를 이 부회장으로 변경하면서 '이재용 시대'가 이미 열린 데다 사법리스크가 아직 남아 있어 굳이 회장 취임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이 부회장은 지난달 해외 출장 후 귀국길에 '연내 회장 승진 계획이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회사가 잘 되는 것이 더 중요한 것 같다"고 답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