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7년 연속 한국시리즈(KS) 진출을 이뤘던 김태형 감독과 결별을 택한 두산. 새 사령탑 후보로 '국민 타자' 이승엽 한국야구위원회(KBO) 홍보대사 겸 SBS 해설위원이 떠올랐다.
두산은 지난 11일 올해까지 8년 동안 팀을 이끈 김 감독과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모기업에 보고한 새 감독 후보군에는 이 위원이 포함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위원은 프로야구 역사상 최고 타자로 꼽히는 거물급 인사다. 리그 통산 최다인 467홈런과 한 시즌 최다 56홈런 기록을 보유한 이 위원은 일본 무대까지 포함하면 통산 626홈런을 쏘아 올린 거포다.
특히 이 위원은 국제 대회에서 몇 번이나 극적인 장면을 만들며 한국 야구의 위상을 높여 '국민 타자'로 불린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일본과 동메달 결정전 결승 2루타,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일본과 4강전은 물론 쿠바와 결승전 결승 홈런을 날린 이 위원은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일본, 미국 등 강팀들을 상대로 홈런을 터뜨려 4강 신화를 이끌었다.
이 위원이 두산 지휘봉을 잡는다면 선동열 전 국가대표 감독 이후 최고의 스타 플레이어 사령탑이 탄생하게 된다. 선 전 감독은 2005년 삼성 사령탑에 올라 2년 연속 한국시리즈(KS) 우승을 이루는 등 명장 반열에 오른 바 있다.
물론 이 위원이 지도자 경험이 없다는 점은 약점으로 꼽힌다. 이 위원은 2017시즌을 끝으로 은퇴한 뒤 홍보대사와 해설위원 등으로 활동해왔다. 최근에는 TV 야구 예능 프로그램인 '최강 야구' 감독을 맡았지만 실제 프로 구단에서 코치 등 지도자 생활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위원은 해설을 하면서 KBO 리그를 가까이 지켜본 만큼 현장 감각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다만 두산의 현재 전력이 이승엽이라는 이름값에 비해 떨어질 수 있다. 두산은 지난해까지 7년 연속 KS에 진출했지만 올해는 9위로 마무리했다. 김현수(LG), 양의지, 박건우, 이용찬(이상 NC), 오재일(삼성), 최주환(SSG) 등 주축들이 매년 FA(자유계약선수)로 풀려 다른 팀으로 이적한 전력 누수를 끝내 이기지 못했다. 모기업 사정이 좋지 않아 외부 FA를 영입할 상황도 아니어서 화수분 야구로 버텨왔지만 올해 한계점에 이르렀다.
'스타 감독' 이승엽에 걸맞지 않는 성적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선 전 감독이 부임했던 2005년 삼성은 심정수, 양준혁 등이 포진한 강팀이었고, 당시 초보 사령탑 최초 2년 연속 통합 우승을 이뤘다. 아무리 스타 사령탑이라고 해도 팀 전력이 약하면 손쓸 방법이 없다. 더욱이 현장 지도자 경험이 없는 이 위원이라면 곤경에 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두산은 현 시점에서는 대권보다는 리빌딩을 노려야 할 상황이다. 이 위원을 감독으로 영입한다면 롤 모델로서 젊은 선수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함께 성장해가는 시나리오를 쓸 수도 있다. 첫 지도자 생활인 만큼 구단도 당장의 성적보다는 충분한 시간을 줄 가능성이 크다. 팀이 처한 상황 자체가 그렇다.
하지만 두산 그룹이 이 위원을 새 사령탑으로 낙점한다면 통 크게 전력 보강에 나설 확률도 높다. 이른바 신임 감독의 취임 선물이다. NC는 2019시즌 이동욱 감독 부임과 함께 4년 125억 원에 FA 최대어 양의지를 영입하면서 힘을 실어줬고, 이듬해 창단 첫 우승까지 이룰 수 있었다. KIA도 올해 지휘봉을 잡은 김종국 감독에게 6년 150억 원에 합류한 나성범, 4년 103억 원에 복귀한 양현종 선물을 안기며 4년 만에 가을 야구에 진출했다.
두산은 전통적으로 빅 마켓은 아니지만 필요할 때는 과감히 지갑을 열었다. 2014시즌 뒤 좌완 최대어 장원준을 4년 84억 원에 데려온 두산은 2018시즌 뒤 NC로 떠난 양의지에게도 4년 120억 원 이상을 제시하기도 했다. 지난 시즌 뒤 4번 타자 김재환을 4년 115억 원에 앉혔던 두산이다.
감독 이승엽을 영입한다면 그에 걸맞는 전력을 갖춰주기 위해 FA 시장에 뛰어들 가능성이 적잖다. 사실 김태형 전 감독도 이른바 취임 선물을 받았다. 2015년 부임과 함께 합류한 장원준 그해 12승, 이듬해 15승, 2017년 14승 등을 거두며 두산 왕조의 기틀을 마련했다. 김 감독 이후 8년 만의 새 사령탑인 만큼 두산도 감독에게 힘을 실어줄 선물을 준비해야 할 상황인 셈이다.
과연 국민 타자가 '곰 군단'을 이끌 새 사령탑에 오를 수 있을까. 두산의 지휘봉을 잡을 신임 감독은 오는 17일 두산의 마무리 캠프 전에 결정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