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마약한 뒤 "함정수사·불법체포" 주장으로 무죄…전관변호사는 '호황' ②[르포]'마약과의 전쟁' 비웃듯 오픈 이벤트…온라인 암거래 백태 ③"야간노동 잠 깨려?"…세계화가 부른 마약 토착화 ④신종마약 침투 무방비, 의료용은 오남용…법망 비웃는 '중독' (계속) |
"마약하는 사람들은 새로운 걸 계속 찾게 돼요. 내가 아니라 뇌가 원하는 거죠. 올리, 스컬 엑스터시 등…마약하는 사람들끼리의 커뮤니티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다양한 종류의 (신종마약) 접하는 경우가 많아요."
"(의료용 마약인) 펜타닐은 처방이 너무 쉬워요. 이 병원 가서 이 친구 신분증 들이밀고, 저 병원 가서 내 신분증 들이미는 식으로 신분증을 계속 번갈아 가면서 처방 받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하루에 최대 (두 명이서) 3~40장 처방 받기도 했어요."
12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대마, 필로폰 등 익숙한 마약류 이외에도 세계 곳곳에서는 신종마약이 속속 등장해 한국에 들어와 널리 퍼지고 있었다. 의료용 마약류 또한 치료 목적을 벗어나 손쉽게 처방되고 사용됐다. 법망을 피해가는 신종마약과 본래의 목적을 잃은 의료용 마약류의 확산으로 인한 부작용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신종마약 확산은 계속…"3개월마다 유행 바뀌지만, 단속은 글쎄"
신종마약은 보편적으로 알려진 마약과 달리, 법적 제재를 피하기 위해 기존 마약류를 변형해 개발한 마약류를 일컫는다. 전문가들은 기존 마약의 화학구조를 바꾸는 형식으로 효과를 더 극대화한 것이 바로 신종 마약이라고 말한다.
신종마약은 전 세계적으로 늘고 있는 추세며, 우리나라에서도 식약처가 2017년 이후 임시마약류로 지정한 것만 94개에 달한다.
이러한 신종마약들은 주로 외국을 통해 국내로 유입된다. 최근 식약처가 임시마약류로 지정한 LSD 변형 신종 마약 '1V-LSD' 또한 캐나다발 국제우편으로 인천국제공항 세관에 반입되는 과정에서 발각됐다.
문제는 사법당국이 법률에 명시된 마약류만 단속하고 처벌할 수 있기 때문에, 신종마약을 유통·투약해도 아무런 제재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신종마약 확산을 막아야 할 긴급성이 있을 경우 식약처가 신종마약을 임시마약류로 지정해 관리하기도 하지만, 신종마약의 급속한 확산을 막기엔 역부족이다. 수사 일선에서는 마약류 관련 기관이 분산돼있는 것을 그 이유로 꼽기도 한다. 한 마약 수사관은 "우리나라의 경우 감정기관이나 수사기관, 마약류 지정 기관이 전부 분산돼 있어 (마약류 지정 및 관리가) 늦기만 하다"고 말했다
정부 또한 이러한 사실을 인지하고, 지난 2016년 임시마약류 지정에 걸리는 기간을 2~3개월 내로 단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마저도 신종마약 유행 기간이 3개월 가량으로 짧은 데 비해 여전히 더딘 속도다. 한 신종마약이 임시마약류로 지정될 때쯤 또 다른 신종마약이 등장해 단속에 엇박자가 나는 것이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클럽에서 유통되던 마약 X가 어느 정도 사람들한테 익숙해지면 다시 Y로 바뀌는 식"이라고 지적했다.
신종마약 단속에 차질이 생기는 건 결국 인력 문제라는 지적도 나온다. 식약처에서 마약류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은 현재 17명으로, 이들이 마약류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도맡고 있는 상황이다.
"펜타닐 맞죠?" 1분 만에 처방되기도…'의료용 마약류' 오남용 심각
"S의원 같은 경우는 가자마자 '(펜타닐) 패치 받으러 왔냐고 물어봐요. 몇 가지 질문만 한 뒤 1분 만에 진료가 끝나요."
신종마약뿐 아니라 '의료용 마약류'의 오남용도 심각한 상황이다. 특히 마약류(마약·대마·향정신성의약품) 중 마약으로 분류되는 진통제인 '펜타닐'은 마약과 같은 효과를 낸다는 소문이 퍼지며 최근 들어 더 널리 확산되고 있다.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이 식약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펜타닐 처방은 2018년 89만 1434건에서 2020년 148만 8325건으로 3년간 67%가 늘어났다.
20대 A씨도 펜타닐 중독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경험이 있다. 당시 A씨는 병원을 셀 수 없이 돌아다녔다. 허리 통증을 호소하면 처방은 쉬웠다. 병원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쇼핑하듯 펜타닐 패치를 처방받았다. 그렇게 처방받은 펜타닐 패치를 태워 5분에 한 번, 10분에 한 번 연기를 흡입했다. 패치 한 장으로 반나절을 버텼고, 하루에 두 장 반 정도 사용했다. A씨는 "펜타닐만큼 환각 증세가 강하고 그런 약이 없다"며 "끊으려 하면 오한, 식은땀, 구토 등이 나면서 사람을 미치게 만들어서 끊으려 해도 버틸 수가 없었다"고 밝혔다.
A씨는 또 "한 장을 3일 간 붙이는 거라 한 번에 10장 정도를 처방해준다"며 "한 장만 붙이면 너무 아프다고, 한 번에 두 장 붙인다고 말하고 더 받기도 했다"며 "원래 한 달 치씩만 처방되는 건데 5일에 한 번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펜타닐 이외에도, 졸피뎀, 스틸녹스와 같은 향정신성의약품(향정)마저 의료 목적 외로 처방돼 오남용되고 있다. 향정 과다복용 시 발생하는 환각 등 부작용을 기대하며 '마약 대용'으로 사용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는 데다가, 그만큼 병원 처방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범진 아주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향정 등 의료용 마약류 처방을 남발해서 식약처로부터 경고나 주의를 받는 개인 병·의원들이 4~50개 정도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의사 처방 없이 손쉽게 구할 수 있기도 하다. 실제로 SNS에 해당 의약품들을 검색해보니, '처방전 없이 졸피뎀, 스틸녹스 수면제 얻는 법'이라는 문구 등과 함께 해당 약품들이 버젓이 판매되고 있었다. 의료용 마약류를 판매하는 계정과 게시글의 개수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 병원에서 분실, 절도 등의 경로를 통해 유통되는 것으로 의심된다.
의료용 마약류로 분류되지는 않지만 '마약 대용'으로 사용되는 전문의약품도 있다. 제2의 프로포폴로 불리는 '에토미데이트'가 그런 경우다. 한 수사관은 "프로포폴과 거의 같은 효과를 나타내는 에토미데이트를 가지고 다니면서 유흥업소 종사자들에게 돈을 받고 놔주는 이들이 있다"며 "마약은 아니라 맞은 사람이 (법에) 걸리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전문가들 "마약류 단속 강화하고 역량 한데 모아야"
의료용 마약류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선 일선 병원 및 약국에서 처방과 투약을 할 때 환자의 투약내역을 의무적으로 확인하도록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해 3월부터 시행된 마약류의 오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환자의 투약내역 조회 서비스 이용률은 지난해 기준 11.8% (국내 의사 11만명 중 2,038명)로 저조했다. 이에 지난달 강선우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병원을 비롯한 마약류취급의료업자가 마약류를 처방할 때 환자의 투약내역을 확인하도록 의무화해야 한다는 법안을 발의한 바 있다.
또 전문가들은 신종마약의 무분별한 확산을 막기 위해 유관기관의 모든 단속 역량을 한데 모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범진 아주대학교 약학대학 교수는 "흩어져 있는 관련 기관들의 역량을 한데 모을 필요가 있다"며 "우리나라도 마약 수사 전담 기구, 즉 마약청 설립을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 마약 수사관 또한 "미국도 마약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때는 경찰 등 각 기관별로 따로 하다가 조직적으로 문제가 되니 DEA라는 연방을 만들었다"며 "우리나라도 마약사범이 계속 늘어나면서 옛날 시스템으로 가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