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력 당권 주자인 안철수 의원은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글을 통해 자신을 포함해 "유승민, 나경원 두 분 모두 출마하시기를 희망한다"며 "세 명의 출마로 국민과 당원들께 총선 승리를 위한 최선의 선택지가 무엇일지를 묻는 전당대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어 세 사람 각자의 강점과 약점까지 짚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굳이 안 의원의 언급이 아니더라도 유 전 의원은 이미 당권 레이스를 앞두고 몸풀기에 나선 상황이다. 최근 페이스북을 통해 다양한 정치 현안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하고 있는 유 전 의원은 지난 9일 자신이 대구경북(TK) 지역에서 차기 당권 주자 가운데 지지율 1위를 기록했고, 이를 민주당 지지층에 의한 역선택으로만 보기 힘들다는 내용의 기사를 페이스북에 공유했다. 사실상 당권 경쟁에 돌입한 것이라는 평가와 함께 일각에서는 유 전 의원이 차기 전당대회 캠프를 꾸리기 위해 당내 인사들과의 접촉에 나섰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나 전 의원은 다소 유보적인 입장이다. 그는 11일 KBS 라디오에 출연해 "당 대표 부분에 대해서는 깊게 고민하지 못했다. 지금은 아직 언급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거리를 두면서도 "조금 더 고민해보겠다. 정권 초기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해야 하는데, 내가 어떤 일을 하면서 가장 기여할 수 있을지 생각하고 있다"고 출마 가능성을 열어뒀다. 또, 유 전 의원과의 경쟁구도와 관련해서는 "국민의힘 지지층 여론조사에서는 제가 항상 1등"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다른 당권 주자들도 많지만 안 의원이 두 사람을 당권 경쟁 상대로 지목한 이유는 세 사람 모두 중량감 있는 정치인이자 '비윤', 혹은 '반윤'으로 분류되는 인사라는 공통점 때문으로 보인다. 안 의원은 대선 후보 단일화와 인수위원장을 거치며 '윤석열 정부 연대보증인'을 자처하고 있다는 점에서 '친윤'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하지만, 초대 내각 인선 과정에서 자신의 추천 인사들이 철저히 배제되며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가 소원해 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당내 몇 안되는 차기 대선 주자로 꼽힌다는 점에서 태생적으로 친윤으로 묶일 수 없는 한계가 있다. 이와 관련해 당내 한 인사는 "본인 외에 안 의원을 친윤으로 보는 인사가 누가 있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유 전 의원은 최근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윤리위원회의 추가 징계와 관련해 "'막말' 윤석열 당원은 왜 징계하지 않느냐"라고 비판하는 등 반윤 색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나 전 의원도 윤석열 정부 장관 후보로 여러차례 하마평에 올랐지만 끝내 성사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윤' 그룹으로 분류된다. 다만 나 의원 스스로는 "반윤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들 외에도 5선의 조경태 의원이 '비윤'으로 분류되는 당권 주자 가운데 한 명이다.
반면, '친윤'을 기치로 내세운 후보군도 다양하다. 당권 도전을 공식화하지는 않았지만 원조 윤핵관으로 불리는 권성동 전 원내대표는 출마 가능성이 높다는게 당안팎의 분석이다. 권 전 원내대표는 문자파동과 비대위 가처분 인용 등으로 불명예 퇴진했지만 김건희 여사 관련 각종 의혹과 순방 중 윤 대통령의 막말 논란, 최근에는 한미일 합동군사훈련을 매개로한 친일 논란 등 정치 현안마다 전면에 나서 윤 대통령의 호위무사를 자처하고 있다.
일찌감치 당권 도전을 공식화한 김기현 의원 역시 연일 윤 대통령을 공격하는 야당을 향해 강성 발언을 쏟아내며 윤심을 적극 공략하고 나선 상황이다. 또, 신(新) 윤핵관으로 부상하고 있는 윤상현 의원도 당권 도전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비대위원장을 맡으며 윤심과 가까워진 주호영 원내대표의 출마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다.
내년 초로 예상되는 전당대회를 앞두고 이렇게 반윤, 비윤, 친윤 그룹의 경쟁구도가 그려지고 있는 가운데 안철수.유승민.나경원 등 반윤, 혹은 비윤 그룹은 대중적 지지도가 높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반면, 권성동.김기현.윤상현.주호영 등 친윤 그룹의 경우 윤심을 등에 업을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이다. 이 가운데 정부 출범 초기라는 특수성, 그리고 전당대회 룰을 결정할 현 지도부를 친윤 그룹이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반윤이나 비윤 그룹보다 친윤 그룹이 보다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다만, 친윤 그룹에서는 현재 거론되고 있는 친윤 후보들이 모두 출사표를 던질 경우 표가 분산되며 당권을 비윤이나 반윤 후보에게 헌납할 수 있다는 우려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친윤 그룹의 한 의원은 "지금 회자되고 있는 (친윤) 후보들이 모두 대중적 지지도가 낮다는 점이 고민의 시작"이라며 "그런데 이들이 모두 출마하면 대통령의 의중이 무엇이냐를 놓고 또 혼선이 생길 수 있고, 어부지리를 누가 얻을지는 뻔하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지난 원내대표 선거 때와 마찬가지로 여러 후보의 출마 선언에 앞서 여권내 누군가가 나서 후보 단일화를 시도하는 모양새가 연출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여권의 한 고위 관계자는 "지난 원내대표 선거 때 주호영 원내대표 외에도 여러 후보들의 출마 움직임이 있었지만 결국 정리가 됐다"면서 "자기정치를 하겠다는 이준석 전 대표가 물러나기까지 얼마나 힘든 과정을 겪었는데 또다시 정권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당대표를 선출하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겠느냐"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차기 당권과 관련해 당내 공부모임으로 한차례 출범이 늦춰진 '민들레(민심들어볼래)'의 향후 움직임을 주시하라는 얘기도 나온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국정감사가 끝나고 민들레가 출범하게되면 본인들은 부인하겠지만 당내 최대 계파가 되고 어떤 방식으로든 전당대회에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며 "민들레를 통해 윤심을 가늠할 수 있지 않겠냐"고 귀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