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실시한 한미일 합동 군사 훈련을 두고 여야의 '친일', '반일' 논쟁이 점입가경이다. 여야 모두 지지층 결집을 위해 논쟁을 이어가는 모양새지만, 경제난으로 민생이 힘든 상황에서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프레임 싸움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진석 가세로 여야 충돌 본격화 양상
동해 한미일 합동 훈련이 논란의 시작이었다. 훈련에 일본이 동참한 것과 관련해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지난 7일 '대일 굴욕 외교에 이은 극단적 친일 국방'이라고 비판한 데 이어, 지난 10일에는 "욱일기가 다시 한반도에 걸리는 일이 실제로 생길 수 있다"고 대여(對與) 공세를 펼쳤다.
이에 국민의힘은 "수십 년 전에나 통했을 얄팍한 친일 몰이로 자신들의 사법리스크를 벗어나려는 속셈을 '극단적 친일'이란 말로 포장해 국민들을 속이지 말라"(성일종 정책위의장)는 등 반발했지만, 지난 11일 '조선은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것이 아니다'라는 글을 자신의 SNS에 올린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의 가세로 여야 충돌이 본격화한 모양새다. 정 위원장은 해당 글에서 "조선은 왜 망했을까?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걸까? 조선은 안에서 썩어 문드러졌고, 그래서 망했다"고 적었다. 구한말의 국제 정세를 들어 이재명 대표의 한미일 합동 군사 훈련 비판을 반박한 것이다.
이에 이 대표는 긴급 안보 대책 회의에서 "이런 문제를 지적하면 수용하는 게 아니라 어김없이 시대착오적 종북몰이, 색깔론 공세를 펼친다"고 비판했고, 박홍근 원내대표도 정 비대위원장의 발언을 문제 삼으며 "일제가 조선 침략의 명분으로 삼은 전형적인 식민사관을 드러냈다"며 "귀를 의심케 하는 천박한 친일 역사 인식이며 집권여당 인사의 역대급 망언"이라고 역공을 폈다.
논란이 불 붙자 정 비대위원장은 SNS에 추가 글을 올려 '조선은 일본군의 침략으로 망한 것이 아니다'는 글과 관련해 "조선이라는 국가 공동체가 중병에 들었고, 힘이 없어 망국의 설움을 맛본 것"이라는 얘기였다고 해명했지만, 국민의힘 내부에서조차 "이재명의 덫에 놀아나는 천박한 발언"(유승민 전 의원)이라는 지적이 나오며 오히려 논란이 더 커지는 모양새다.
이참에 민주당은 당내 외교·안보 긴급대책기구(가칭)까지 꾸려 공세 고삐를 쥐겠다는 각오다. 박성준 대변인은 "이인영 의원이 통일부 장관을 했고 외교·안보 일을 해 와서 위원장을 맡고, 윤건영 의원도 함께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과 윤 의원 모두 대표적인 친문(親문재인)계로 분류되는 만큼, 민주당이 이번 친일·반일 논쟁에서만큼은 합심해 전사적으로 대응하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호기는 맞지만…말폭탄 주고받기는 안돼"
여야의 친일·반일 공방을 두고 민주당 내에서는 여당을 견제할 좋은 기회로 삼아야한다는 해석과,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서 여야가 말장난이 아닌, 실제 돌파구를 찾아야한다는 현실론이 공존하고 있다.
당의 한 초선 의원은 "이번 친일·반일 논쟁은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구도 상 민주당이 수위 높은 메시지를 내도 점수를 깎아 먹을 일이 없다"며 "여야 모두 사실상 정치적 손익을 고려한 지지층 결집 의도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같은 이유로 논쟁을 멈춰야한다는 지적도 있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친일 쪽, 민주당은 친북·반일 성향이라는 지적이 하루 이틀 나온 것도 아닌데, 또다시 엄한 일에 기싸움을 하는 건 여야를 비롯해 국민 모두에게 득실이 없다"고 말했다.
당의 한 재선 의원은 "지금 남북 관계도 크게 얼어붙은 상황에서 여야 대표가 말 폭탄을 주고받으며 긴장을 더 고조시키고 있다"며 "문제를 친일·반일 프레임으로 단순화할 것이 아니라, 우리 당 대표부터 직접 나서서 여당과 머리를 맞대고 상황 인식과 앞으로 나아갈 방향에 대한 인식을 공유하려는 노력을 해야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