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지하고 무겁게 가자면 한 없이 그럴 수 있는 이야기도 다양하고 기발한 방식으로 그려냈던 다니엘 콴 감독과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이 이번에는 무려 '멀티버스'(다중우주)를 끌고 와 스케일 큰 웃음과 감동의 '대혼돈'을 선보인다. 무엇보다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의 마침표를 찍는 건 '나'라는 멀티버스적인 존재를 그려낸 '양자경'이란 멀티버스적인 배우다.
미국에 이민 와 힘겹게 세탁소를 운영하던 에블린(양자경)은 세무 당국의 조사에 시달리던 어느 날 남편 웨이먼드(키 호이 콴)의 이혼 요구와 삐딱하게 구는 딸 조이(스테파니 수)로 인해 대혼란에 빠진다. 그 순간 에블린은 멀티버스 안에서 수천수만의 자신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 모든 능력을 빌려와 위기의 세상과 가족을 구해야 하는 운명에 처한다.
'스위스 아미 맨'에서 독특한 상상력과 재기발랄함으로 웃음과 감동을 동시에 안겼던 다니엘 콴 감독과 다니엘 쉐이너트 감독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를 통해 다시 한번 특유의 상상력을 바탕으로 존재와 현실의 삶, 관계 등에 관한 이야기를 '멀티버스'라는 소재로 그려냈다.
세탁소 사장이자 아내이자 엄마이자 딸의 역할을 모두 수행해야 하는 에블린의 앞에는 해도 해도 할 일만 가득하다. 그러나 많은 일을 해내야 하기에, 많은 것을 책임져야 하기에 그만큼 모든 것을 제대로 해내기도 힘들 지경이다. 그런 에블린에게 딸 조이(스테파니 수)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심지어 자신으로서는 인정하기 힘든 관계를 인정해달라고 요구한다. 그렇게 다른 유니버스를 살아가는 두 사람은 좀처럼 서로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우주를 품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우주는 무궁무진하면서도 자기만의 질서가 존재하는 세계라서,각자의 우주는 결코 같을 수 없다. 때로는 나조차도 내 안의 우주를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에블린과 조이가 아무리 모녀 사이라도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같은 '베이글'을 봐도 다른 결론에 다다르는 것 역시 그렇다.
영화 속 조이의 다중우주 속 또 다른 자아인 조부 투파키는 에블린에게 자신이 원한 건 자신과 같은 걸 볼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실제로 에블린과 조이 사이 결코 같아질 수 없고, 가까워질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 세대라는 차이도 있고, 이민자 에블린과 미국에서 나고 자란 2세 조이 사이에는 문화적 차이도 있다.
닮은 듯 다른 모녀인 에블린과 조이/조부 투파키가 가진 동전의 양면처럼 상반된 모습을 통해 영화는 서로를 알아가고 이해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지점으로 '내면'을 바라본다.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한, 이루지 못한 꿈들로 가득한 현재 우주 속 에블린은 여러 에블린 중에서도 '최악'이라고 평가받는다. 실패만 한 에블린을 두고 영화는 역설적으로 무엇이든 못하니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발상의 전환을 말한다.
반대로 조부 투파키는 마치 전지전능한 신처럼 모든 우주를 오가며 여러 조이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을 알고 할 수 있기에 찾아온 것은 모든 것에 대한 의미와 믿음을 상실한 내면이다. 또 다른 우주의 존재들은 조부 투파키를 '혼돈' '악'으로 규정했지만, 결국 조부 투카피의 우주가 가진 공허함만 바라봤을 뿐 그 심연까지는 들여다보지 못한 이들이 단정한 결과다.
그러나 에블린은 달랐고, 이는 변화를 가져온다. 많은 것을 가졌기에 자신을 지워버리려는 조부 투파키와 많은 것을 가지지 못했기에 자신을 찾고자 했던 에블린의 관계는 반대 지점에 놓여있던 두 사람이 혼돈에 빠진 서로의 우주 속 하나의 선함 즉 자존감과 잠재력, 다정함이라는 감정을 발견하며 두 우주를 맞대게 된다.
여기에 립밤 하나로도 긴장과 웃음을 자아내는 것부터 시작해 다양하고 이상한 '버스 점프' 방법들이 등장하고, 상상 이상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사람이 죽고, 죽이는 방법을 그려낸다. 이러한 B급 코드들을 보고 있자면 감독들의 상상력을 만든 문화적인 토양이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또한 에블린의 또 다른 우주 속 '배우 양자경'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부분에서는 현실과 영화라는 서로 다른 멀티버스를 뒤섞으며 또 다른 재미를 만들어낸다.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고, 보고 있는 양자경의 또 다른 멀티버스 양자경이 '에블린'인 것처럼 느껴진다.
140분 상영, 10월 12일 개봉,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