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꽃이 선물처럼 쏟아지네요. 뭉클하고 행복해요."
8일 오후 7시 20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의 밤하늘은 화려한 불꽃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남편, 아들 둘과 함께 여의도 한강 공원을 찾은 박모(58)씨는 하늘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박씨는 "폭죽이 터지는 소리에 스트레스도 날아가는 것 같다"며 연신 감탄을 내뱉었다.
이날 오후 7시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선 '2022 서울세계불꽃축제'가 3년 만에 열렸다. 서울세계불꽃축제는 매년 100만 명 가까운 인파가 찾을 만큼 시민들의 사랑을 받아왔지만, 코로나19로 인해 잠시 중단됐었다.
코로나19 확산세가 꺾이며 오랜만에 재개된 축제에 시민들은 설레는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축제가 시작되기 한참 전부터, 한강 공원 일대는 수많은 이들로 붐볐다. 자리를 잡고 앉은 시민들은 음식을 먹기도, 수다를 떨기도 하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축제를 만끽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공원 곳곳에 들어선 수십 개의 노점상들 앞엔 손님이 가득했다. 맥주와 치킨, 닭강정과 쥐포 등 다양한 음식들이 쉴 새 없이 팔렸다. 한 노점 직원 송모(22)씨는 "치킨이 200마리 이상 팔린 것 같다"고 말했다. 또 공원 안에는 축제를 맞아 임시 화장실 45개가 설치됐지만, 화장실 앞마다 길게 늘어선 줄은 그 끝이 가늠되지 않을 정도였다.
자그마한 캐리어에 외투 등 각종 짐을 바리바리 챙겨 아이와 함께 축제를 찾은 김정란(52)씨는 "이전에 왔을 때 너무 좋은 기억이 있어 다시 찾아왔다"며 "오늘도 아이들과 좋은 추억을 공유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씨의 딸 김민주(10)양은 "폭죽이 예쁠 것 같아 두근거린다"고 전했다.
외국인들도 축제를 찾았다. 네팔에서 온 오자 산토스(32)씨는 "페이스북에서 보고 축제를 찾았다"며 "의정부에서 3시간이 넘게 걸려 왔지만 벌써부터 재밌고 기대된다"고 밝혔다. 또 "비자가 만료돼 다음달에 네팔로 돌아가지만, 그 전에 올 수 있어 기쁘다"고 덧붙였다.
"10, 9, 8…" 개막식이 끝난 오후 7시 20분, 사회자의 카운트다운 소리를 시작으로 불꽃축제가 본격 시작됐다. 10만여 발의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곳곳에선 함성과 환호소리와 박수가 터져 나왔다. 자리를 잡고 앉은 시민들도, 서있던 시민들도 일제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봤다.
친구와 함께 축제를 찾은 남세라(30)씨는 "오랜만에 살아있다는 느낌이 든다"며 "불꽃이 너무 예쁘고, 뭔가 에너지를 얻는 기분"이라고 밝혔다. 남씨는 또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데도 너무 좋다"며 기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노점에서 일하던 고건호(22)씨도 "꿈을 꾸는 것만 같고, 폭죽소리에 스트레스가 풀린다"며 "일하면서 보는 거긴 하지만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고 말했다.
70분간 아름다운 음악 선율에 맞춰 오색찬란한 불꽃이 강렬한 소리를 내며 밤하늘을 가득 채웠다. 어떤 이들은 두 눈에, 어떤 이들은 스마트폰과 카메라에 그 장면을 담았다.
쉴 새 없이 사진을 찍던 김재영(60)씨는 "불꽃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또 "아내와 함께 왔는데 올 때는 사람이 너무 많아 후회했는데, 지금은 전혀 후회되지 않는다"며 "가슴이 뻥 뚤리는 기분이고 너무 잘왔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남녀노소 축제를 즐기는 마음은 모두 같았다. 남편과 함께 축제를 찾은 정모(65)씨는 "늙은 나이에 설렐 게 뭐가 있겠냐 싶으면서도 기분이 매우 좋다"며 상기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아내와 딸 둘, 부모님, 그리고 누나와 매형까지 함께 축제에 온 조은규(42)씨는 "근무까지 미루고 왔는데 코로나로 받았던 스트레스를 모두 날려버리는 기분"이라며 "1시간 정도 걸어왔는데 그 피로가 확 가시고 아이들이 환호할 정도로 좋아했다"고 전했다.
장사를 하던 상인들도 행복하긴 마찬가지였다. 담요 50여 개, 돗자리 80여 개를 팔았다는 김정심(66)씨는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기분"이라며 "일하러 온 거지만 오늘 기분 좋게 행복하게 집에 돌아갈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축제 곳곳에선 잡음이 일기도 했다. 앉아 있는 시민들이 서서 관람하는 시민들에게 시야를 가리지 말라고 욕설을 내뱉으며 고성이 오갔다. 사고 우려도 일었다. 오가던 시민들이 서로를 미는 과정에서 한 중년 여성이 넘어졌다.
또 주최 측 안전 요원들이 끊임없이 "보행 통로를 확보해야 한다"고 소리를 질렀지만 인파가 몰려 공원 내 보행로가 가로막히기도 했다. 축제가 끝나고 돌아가는 길에는 붐비는 인파를 피하기 위해 안전 펜스를 뛰어넘어 차도를 가로지르는 시민들도 여럿 눈에 띄었다.
이날 축제는 오후 8시 30분쯤 마무리됐다. 현장을 지키며 시민들을 안내하던 익명의 한 소방 관계자는 "바람이 많이 불면 눈에 재가 들어가는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는데 오늘은 그래도 바람이 덜 불어 무탈하게 진행된 것 같다"며 "다들 즐겁게 축제를 즐기셨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최 측 관계자 또한 "코로나19로 지친 일상에 잠시나마 휴식과 행복감을 느끼셨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날 축제엔 주최 측 추산 105만 명의 시민들이 찾아온 것으로 집계됐다. 시민 안전을 위해 소방재난본부, 한강사업본부, 영등포구청, 영등포 소방서·경찰서 등이 종합안전본부를 꾸렸고 인력 1800여 명이 동원됐다. 행사 전후로는 여의도 일대 도로 일부 구간이 통제되고, 지하철과 버스 등 대중교통이 증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