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가 제기한 비상대책위원회 관련 가처분 신청이 모두 기각·각하되고, 당 윤리위원회가 이 전 대표에 대해 추가 중징계를 의결하며 당내에서 이 전 대표의 정치적 공간이 사실상 소멸됐다.
'이준석 리스크'를 털어낸 국민의힘은 이제 집권 여당으로서의 실력을 '핑계 없이' 증명해야 하는 시간이 됐다. 이 전 대표의 역할이었던 '바뀐 보수'의 모습도 누가 어떻게 이어 받을 지도 관심이다.
가처분은 기각·각하, 윤리위는 당원권 정지 1년 추가 의결
서울남부지법 민사51부(황정수 수석부장판사)는 6일 새 비대위 출범을 위해 개정된 당헌에 대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에 "이 전 대표의 신청 이익이 없어 부적법하다"며 각하했다. 비대위원장 임명을 위한 전국위원회 의결과 비대위원 임명을 위한 상임전국위원회 의결에 대해서도 "실체적, 절차적 하자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각했다.
지난 8월 28일 같은 재판부가 주호영 전 비대위원장에 대한 직무정지 가처분을 인용한 것과 달리, 국민의힘이 당헌 개정을 통해 '비상상황'의 요건을 명확히 한 점이 차이를 만든 것이다. 재판부는 당헌 개정이 "헌법이나 법률에 명백히 위반된다거나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당헌 개정이 이 전 대표 개인을 향한 처분적 성격을 띠고, 헌법상 '소급 입법 금지'를 어겼다는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개정당헌에 따르면 비대위 설치 완료로 당대표와 최고위원이 그 지위와 권한을 상실하므로, 직접 채권자에게 권리나 의무를 발생하게 하는 처분적 성격을 가진다고 할 수 없다"거나 "(헌법상) 소급입법 금지가 정당의 당헌에도 직접 적용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가처분 신청이 재차 인용될 수 있다는 걱정을 안고 있던 국민의힘은 지도체제의 불확실성을 해소하게 됐다. 정진석 비대위원장은 "법원의 현명한 판단에 감사드린다"며 "집권 여당이 안정적인 지도체제를 확립하고 윤석열 정부 성공을 튼실하게 뒷받침하기 위해 만전을 기하겠다"고 말했다.
또 이날 오후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해 당원권 정지 1년의 추가 징계를 의결했다. 징계 사유는 이 전 대표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이 '당론에 따를 의무'를 위반했고, 당 소속 의원 등에 지속적으로 모욕적‧비난적 표현을 사용해 당내 혼란을 가중시키고 민심 이탈을 촉진시키는 등 당에 유해한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가처분 기각·각하에 당원권 정지 기한이 연장되며 이 전 대표가 당대표로서 복귀할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이준석, 정치 행보 이어갈 듯…국민의힘, 李 없이 역량 증명해야
이 전 대표는 이날 법원의 판단 이후 페이스북에 "앞으로 더 외롭고 고독하게 제 길을 가겠다"고 말했다. 이 전 대표의 향후 정치적 행보는 오리무중이다. 일단 현재 집필 중인 책을 출판하고, 자신을 지지하는 당원들을 만나며 정치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국민의힘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은 이날 오후 한 방송에 출연해 가처분 판단 이후 이 전 대표와 연락한 내용을 공개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생각보다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 되게 많고 의욕적이다. 이미 예고한대로 책도 곧 나올 것이고 본인의 정치적 행보를 굉장히 구체적으로 풀어내고 있어서 앞으로 지켜보면 이준석 답게 재밌는 일을 벌리지 않을까 한다"고 내다봤다.
다만, 가처분 기각과 윤리위 추가 징계 의결로 국민의힘 안에서 이 전 대표가 발휘하는 영향력은 매우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한 초선의원은 "분명 계속 정부여당을 겨냥한 메시지를 내겠지만, 법원 판단과 윤리위 결정으로 동력을 상실했다고 본다"며 "당도 크게 연연하지 않고 정진석 비대위원장-주호영 원내대표 체제 하에서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국민의힘은 보수 정당에 젊은층의 지지를 이끌어내고, 서진정책·혁신위원회 등 각종 의제를 띄워 여론전을 주도했던 이 전 대표 없이 집권여당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야 하는 시험대에 올랐다. 또다른 의원은 "이제는 당과 윤석열 대통령이 이 전 대표 없는 세상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시간"이라며 "이 전 대표라는 변수를 뒤로 하고, 국민들의 신뢰를 어떻게 되찾을 지가 관건"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