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발표에 나선 3명의 학자를 비롯 예술가, 학예연구사(큐레이터), 관람객 등 80여 명이 '인류세(Anthropocene·인류가 지구 기후와 생태계를 변화시켜 만들어진 새로운 지질시대)에 기후변화 문제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담론을 펼쳤다.
박범순 카이스트 인류세연구센터 센터장은 "인류세의 기후변화 문제는 일방적이고 급진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각자 영역에서 실천 가능한 기후행동을 찾도록 독려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 미술관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별빛달빛 아주대 열대학연구소 및 의대 교수는 "현대 예술과 문명은 서구에 의한 열대 자연의 훼손·은폐와 맞물려 발달했지만 인류세에서는 기존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 공공 미술관이 생존하려면 자연사 지능을 복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술계가 탄소라는 관점에서 기후변화 시대, 지속 가능한 미술관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미술관-탄소-프로젝트'의 출발점은 탄소배출량 산정. 전시 활동의 환경적 영향을 살펴보기 위한 절차다. 지난 8월 19일 프로젝트 첫 날에는 '국립현대미술관 탄소배출량 논의'를 주제로 토론했다. 앞서 국립현대미술관 측은 지난해와 올해 4개 전시를 만드는 과정에서 배출된 탄소량을 각각 산정했다.
탄소 배출량은 기업체가 사용하는 GHG 프로토콜에 기반해 산정했다. GHG 프로토콜은 탄소 배출활동을 직접배출(Scope1), 간접배출(Scope2), 기타 간접배출(Scope3)로 나눈다. 이를 미술관 전시에 적용하면, 직접배출은 도시가스, 간접배출은 조명·전기 사용으로 배출되는 온실가스에 해당된다.
기타 간접배출은 △직원 출장 △시설 공사 △작품 포장 △작품 운반 △홍보인쇄물 제작 △관람객 이동 △전시장 에너지 사용 △전시 관련 폐기물 △직원 통근 9가지로 구분했다.
영국, 미국, 독일 등 해외 미술관의 경우 GHG 프로토콜에 의거한 탄소 배출량 산정과 탄소 저감·상쇄를 위한 실천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영국 테이트 미술관은 2019년 7월, 내부적으로 기후·상태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세계에서 가장 지속 가능한 예술 기관'이 되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았다. 2023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50%(2007~2008년 대비) 줄이고, 2030년까지 넷 제로(Net Zero·탄소 중립)한다는 목표 아래 △재생에너지 전기 100% 사용 및 태양광 패널 330개 설치 △2019~2020년 직원 출장 44% 감소(2013~2014년 대비) △LED조명으로 교체 △미술품 보관·운송 방식 혁신 △폐기물 75% 재사용 및 재활용 등을 실천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9월 27일, 아르코 미술관, 리움 미술관과 '기후변화 시대의 미술(관) 논의'를 주제로 토론했다. 각자 미술관의 방향성에 대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기후행동을 실천하고 있는지 의견을 나눴다.
탄소 중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아름다움 향유'라는 미술관 본연의 역할이나 관객이 미술관에서 원하는 경험을 고려하는 것의 필요성도 대두됐다.
'미술관-탄소-프로젝트' 공식 홈페이지에서 진행 중인 설문조사 결과(10월 5일 기준) 응답자 중 97%는 미술관이 기후변화를 다루는 일이 가치 있고, 89%는 예술보다 환경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와 대조적으로 63%는 '(탄소 저감을 위해) 가벽을 최소화해 공간이 주는 경험이 줄면 불만족스러울 것이라고 답변했다.
성용희 학예연구사는 "우리나라 미술관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공동 노력의 첫 발을 뗐다는 데 이번 프로젝트의 의미가 있다"며 "탄소 중립은 미술관 뿐만 아니라 협력업체, 관람객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요구사항을 반영해 점진적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술관-탄소-프로젝트'는 오는 30일까지 계속된다. 지속 가능한 전시 디자인과 미술관 ESG, 의류 디자인 프로세스와 지속 가능성에 대해 논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