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지서비스 관련 정보가 망라된 정부의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이 개통 3주가 넘게 '먹통' 논란을 빚고 있다. 지자체와 사회복지시설, 미지급 수급자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가 개통 전후 한 달 넘게 시스템 구축 업무를 맡은 업체와 대면회의를 1번도 갖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차세대 복지시스템은 160여 개 기관·2700여 종의 방대한 데이터를 연계해 관계자들이 정보를 주고받는 거대한 시스템이다. 취약계층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한 만큼 발생가능 오류에 대한 꼼꼼한 점검은 필수인데, 관련회의를 대부분 서면으로 갈음한 것은 문제를 안이하게 인식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3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정의당 강은미 의원실이 한국사회보장정보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부터 9월 셋째 주까지 보건복지부와 시스템 운영주체인 사회보장정보원, LG CNS 등 컨소시엄 사업단 간 회의는 총 7번 열렸다.
주간보고 형식으로 진행된 이 회의들은 지난달 2일 영상회의를 제외하고는 모두 서면보고로 대체됐다. 8월 월간보고도 서면만이 오고갔을 뿐 별도의 대면회의는 전무(全無)했다. 철저한 사전점검이 이뤄져야 하는 개통 직전을 비롯해 그 이후 복지현장의 민원과 수급대상자들의 아우성이 속출하던 시기다.
차세대사회보장정보시스템구축추진단은 지난 19일 1차 정기급여 지급을 하루 앞두고 "일단 주말 작업을 해서 한 85% 정도는 '이(e)-호조'(지방재정시스템)로 데이터가 넘어간 상태"라며 "늦은 오후면 저희와 지자체가 생성한 금액에서 추가하거나 뺄 대상자를 포함해 마감처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날 시·군·구를 통해 생계급여·주거급여·장애인연금 등 1차 급여가 나가는 데 큰 문제가 없으리란 입장을 강조한 것이다.
실제 상황은 사뭇 달랐다. 자녀 2명을 홀로 키우며 한부모가정지원금·양육수당을 받고 있는 A씨는 CBS노컷뉴스에 "매달 제 날짜에 입금이 한 번도 안 된 적이 없었는데 1차지급일인 20일에 한부모가정자녀양육지원금이 들어오지 않았다"며 "구청에 문의해보니 사회보장정보원의 오류로 미지급됐고, 언제 지급될지도 모르겠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정기급여는 수급자격 심사 및 변동사항 등의 확인을 거쳐 지급을 의뢰하게 된다. 정부는 수급이 최대한 지연되지 않도록 추가 지급기간을 종전 26일에서 21일로 당겼으나, 현실적인 지원 공백을 메우진 못했다. A씨는 "기사를 보고 '아직 지원금을 못 받은 사람들은 21일부터 나온다 하던데 맞느냐'고 구청에 확인해보니 위에서 전달받은 내용이 전혀 없다고 했다"며 "시스템 정상화나 미지급 건과 관련해 내려온 공문이 없고, 지급시기가 언제쯤인지도 기약이 없다고 한다"고 전했다.
다행히 A씨는 기초연금·아동수당 등 총 7종이 지급된 2차급여일(23일)에 지원금을 모두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도 열흘 전을 떠올리면 '피가 마르는 느낌'이다. 개인 소득에 변화도 없고, 가정의 생계가 달려있는 문제였던 탓이다.
앞서 이달 초 차세대 사회보장정보시스템을 2차 개통한 복지부는 노후화된 기존 정보시스템을 개편하겠다며, '약자 복지 향상'과 '국민 불편 해소'를 주 목적으로 내세웠다. 갈수록 '덩치'가 커지는 복지사업을 2010년의 시스템으로 운영하기엔 처리량에 한계가 왔다는 것이다.
실제로 10여 년간 복지수급자는 4.1배, 신청건수는 2.9배가 늘었고, 시스템의 연산처리량은 9.7배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1200억의 예산을 쏟아부어 '전면 재구축'을 선언한 이유다. 나날이 복잡다단해지는 복지서비스를 알지 못해 대상자가 신청을 못하거나 관할 주소지 기반 신청, 복잡한 구비서류 등 온라인·모바일 업무처리가 제한적이라는 점도 한계로 지적됐다.
이에 정부는 지난 6일 일선 복지공무원들이 사용하는 업무시스템인 '행복이(e)음'을 먼저 개시하고, 사회복지시설 종사자용 '희망이음'도 부분적으로 개통했다. 이후 연말까지 가동 범위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이었지만, 시스템은 시작부터 암초에 부딪혔다.
행복이음에 로그인 자체가 안 되는 등 안내 창만 떠서 업무를 볼 수가 없다는 공무원의 하소연부터 보조금 신청 같은 급한 현안을 처리할 수 없어 '센터 업무가 마비 지경'이라는 복지지설 종사자들의 항의도 잇따랐다.
일부 지자체는 '예전 시스템을 임시로라도 다시 열어 달라'는 요청을 하기도 했지만, 기존 시스템은 지난달 31일 부로 이미 운영이 중단된 상태다. 이에 한 일선 공무원은 "한국사회보장정보원에서 '빠른 시일 내 해결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말만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며 "이용문의가 빗발치는데 현장 담당자들이 '욕받이'를 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몇몇 지자체에서는 수기(手記)로 일일이 명단과 내용을 대조하는 식으로 업무를 보고 있는 형편이다. 더불어민주당 신현영 의원실에 따르면, 시스템이 개통된 지난 6일(4656건)부터 22일(5107건)까지 사회보장정보원이 파악한 오류신고는 총 6만 1401건으로 하루 수천 건에 달한다.
사회보장정보원은 차세대 시스템 현황과 관련대응을 묻는 강은미 의원실 질의에 행복이음은 △긴급복지 오류(8일) △증명서 발급 오류(16일) △신규 신청자 조사결정 지연(16일) △첫만남이용권, 에너지바우처 신규신청 오류(16일) 등 모두 "조치를 완료했다"고 밝혔다. 희망이음에 대해서도 시군구 보고 오류(13일)와 GW 결재선 오류(16일) 해결을 완료했다고 보고했다.
설명대로라면 업무 지장이 없어야 하지만, 혼선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전날에도 사회보장정보원 게시판에 '편리하자고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놓곤 개선 없이 이것만 써야 한다고 하는 건 무슨 심보인가', '시스템 오류 질의가 하루 수십 건씩 올라오고 있는데 답변도 없고 사회보장정보원은 전화를 해도 불통이다' 등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하는 복수의 민원이 올라왔다.
내부에서 '새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도 무리하게 개통을 강행한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지난 7월 26일 복지부와 사회보장정보원, 컨소시엄 사업단 간의 PMS 회의록을 보면 "기존사업 반영 점검목록의 반영 여부는 개별 응용팀에서만 관리되고 있고, 총괄적으로 관리되지 않는 것 같다", "개통이 한 달밖에 남지 않은 상황이라 뒤로 미뤄도 되는 것과 지금 무조건 해야 되는 것들을 확실하게 정리하고 넘어갔으면 좋겠다" 등 '급한 일정'을 독촉하는 얘기가 다수 나온다.
지난달 2일 회의에서도 "개통 전까지 상담사례가 100% 전환되기 힘들 것 같은데 데이터 전환 없이 개통을 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전환을 어느 정도 할지 (방안을) 마련해 다음 회의 때 보고해 달라", "통합연계 자료 검증 DB 전환을 해야 하는데 매주 주간보고 때 요청하고 있는데도 진행이 잘 이뤄지지 않는 것 같다" 등 개통을 불과 한 달 앞두고도 진척이 미비한 상황이 담겼다.
LG CNS를 주축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은 애초에 '9월 초 개통은 무리'라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 엔지니어들을 긴급 투입해 시시각각 지자체와 협의해 문제를 시정하고 있으며, 늦어도 이달 내 복지급여를 지급하는 데엔 문제가 없다는 정부의 입장과는 다소 간극이 있다.
지난 27일 인사청문회가 있었던 조규홍 복지장관 후보자는 서면질의 답변서에서 차세대 정보시스템 오류에 대해 "시스템 전환과정에서 일부 기능오류가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기급여에서 제외된 미지급 수급자에 대해선 지자체와 긴밀히 협조해 9월 내 추가급여 등이 조속히 지급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차세대 복지시스템은 시험운영 기간이었던 지난달 8~18일 2819건의 결함을 보인 것으로 파악됐다. 실직, 휴·폐업 등으로 위기를 겪는 가구에 생계비를 지원하는 긴급복지는 24건의 오류 중 15건(62.5%)이 개선되는 데 그쳤다. 국회 보건복지위는 LG CNS의 김영섭 대표를 내주 예정된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채택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