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하고 나이만 가지고 누굴 어떻게 찾아?"
겉이 바삭하다 못해 딱딱하기 그지없는 까칠한 성격의 소유자 진봉은 아내 세연(염정아)에게 들이닥친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놀란 마음을 추스르기도 잠시, 첫사랑을 만나게 해달라는 아내의 황당한 요구가 어이없기만 하다. 하지만 결국 세연과 함께 그녀의 첫사랑을 찾기 위한 여행길에 나선다.
'극한직업' '명량' '7번방의 선물' '광해, 왕이 된 남자'까지 무려 4편의 천만 영화를 빛낸 것은 물론,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독보적인 연기력을 선보인 배우 류승룡이 미워하려고 해도 미워할 수 없는 진봉 역으로 관객 마음 사로잡기에 나섰다. 밉상과 친근함이라는 상반된 모습을 위화감 없이 표현할 수 있었던 건 류승룡이기에 가능했다. 특히 본능적인 감각으로 펼쳐진 그의 코미디 연기에는 모두가 박장대소할 수밖에 없다.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류승룡은 인터뷰 내내 진봉처럼 유머와 친근한 매력으로 에너지 넘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에게서 주크박스 뮤지컬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가 가진 매력과 함께 호흡을 맞춘 염정아에 관한 집필 의욕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나를 두고 쓴 거 아냐?"
▷ '인생은 아름다워' 대본을 처음 보고 어떤 점이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생각했나?
읽었을 때 너무 괜찮고 신선한데, 참 신기했다. 7080부터 90년대까지 노래인데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현재 분량만 하는 줄 알았는데 입대 등 젊은 시기도 내가 한다더라. 도전 의식이 생겼다. '극한직업' 때 함께했던 배세영 작가님 작품인데 "나를 두고 쓴 거 아냐?"하면서 나도 모르게 대사를 하고 있고, 화를 내고 미안해하고, 눈물을 글썽거리고 있었다. 덮었을 때는 탄식이 나왔다. 뭔가 좋은 책을 읽은 느낌이었다.
▷ 그런데 장르가 '뮤지컬'이다. 뮤지컬 장르라는 걸 알고 어떤 생각이 들었을지 궁금하다.
처음에 '어! 뮤지컬인데 왜 나한테 왔지?' 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춤추고 노래하고 있었다.(웃음) 클래식 뮤지컬인 줄 알았는데 '주크박스 뮤지컬'이고, 알고 있거나 들어봤던, 친숙한 노래였다. 그리고 이 노래들이 다 대사의 기능을 한다. 그런 부분들이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노래방에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없지 않나. 우리는 서툴지만 자신 있게 자기화해서 마음껏 노래 부르는 민족이다. 그런 면에서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 앞서 작가가 본인을 두고 쓴 것 같다고 말했는데, 어떤 지점에서 그렇게 느낀 건가?
후반부에 그런 지점이 많았다. 전반부는 '뭐지?' 싶은 부분이 있는데, 뒤에 가면 역시 그런 배려가 있었다는 걸 느끼게 된다. 영화적으로 과장된 부분이 있지만 사실 초반부 진봉과 같은 남편은 없을 거다. 있어서도 안 되고 말이다. 만약 영화에 갈등이나 빌런이 없으면 밋밋하다. 그런 역할을 진봉뿐 아니라 아들과 딸이 해주고 있다.
진봉을 보면 '나는 저만큼은 아닌데'라고 하면서 찔리는 부분이 있을 수도 있고, 혹은 '못됐다'면서 욕을 할 수 있다. 자기 모습을 투영하거나 비판할 수 있는 기능을 하는 거 같다. 그런데 마지막에 가면 갈등이 해소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다. 이런 걸 잘 배치해 둔 것 같다.
▷ 현재의 진봉뿐 아니라 20대 등 젊은 시절의 모습도 모두 연기했다. 젊은 시절을 연기하기 위해 염두에 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
피부 관리?(웃음) 최대한 눈을 좀 더 동그랗게 뜬다든가 목소리 톤을 높이고 말의 속도를 1.2배속으로 하기도 했다. 현재는 공무원 생활을 하면서 많은 민원과 가장으로서의 무게, 스트레스 등으로 경직된 얼굴이지만 젊었을 때는 귀엽다고 표현하는 건 그렇고.(웃음) 좀 덜 찌든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나는 깜짝 놀랐던 게, 극장에서 후드 티셔츠를 입고 둘이 앉아있는 모습이 있다. 그때는 잠깐 '어? 정말 어렸을 때 같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염정아라는 배우가 있다는 게 고마운 경험이었다는 류승룡
▷ 함께 호흡을 맞춘 배우 염정아와의 현장은 어땠을지 이야기를 듣고 싶다.
염정아씨는 10년 뒤에 책으로 쓰려고 한다. '염정아, 그녀는 누구인가?' 베스트셀러가 될 거 같다. 너무나 훌륭한 배우다. '뜨거운 안녕' 장면에서 내가 울먹울먹해야 하는데, 앞에서 내 눈을 보며 엄청 울어줬다. 그걸 보는데 눈에서 눈물이 똑 떨어졌다. 정말 엄청난 경험이었다. 이런 배우가 있다는 게 너무나 고마운 경험이었다.
나한테는 약간 연예인이었다. 내가 20대 때 기괴하고 철없이 돌아다닐 때, 염정아씨는 이미 미스코리아였고,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이었다. 저 사람과 나는 절대 볼 일 없는 사람이었는데, 30년 뒤 부부로 만나다니…. 알 수 없는 인생이다.(웃음)
▷ 현장에서 최국희 감독 함께 작업하면서 연출자로서 그의 인상 깊었던 지점이 있었다면 무엇인가?
성실하고, 강직하고, 정직하다. 그리고 항상 좋은 점을 본다. 장점을 극대화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 항상 뭘 하고 있으면 "어우 너무 좋았다"고 말하며 '엄지척' 해준다. 마음껏 해 보라고 하는데, 마음껏 하면 그게 선택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알게 됐다. 나는 칭찬을 받고 사는 사람이라는 걸 말이다.(웃음) 많은 디렉터가 엄청난 책임감이 있고, 여러 분야를 다 아울러야 해서 예민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감독님은 긍정적이고, 걱정이 없는 사람 같았다. 그런 게 영화에 고스란히 담긴 것 같다.
▷ '류승룡'이라는 배우를 떠올리면 빼놓을 수 없는 게 한국 콘텐츠의 세계적 인기가 시작된 지점에 놓인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킹덤'의 주역이라는 점이다. 그런 면에서 요즘 K-콘텐츠의 인기와 성과를 바라보는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너무 자랑스럽다. 자부심이 어마어마하다. 20년 전 '난타'로 영국 에든버러 축제에 갔을 때만 해도 어디서 왔는지 알아맞혀 보라고 물어보면 열 손가락 안에 안 들어갔다. 중국, 일본, 필리핀 등 다 나오는데 '코리아'(한국)가 안 나왔다. 너무 자존심이 상했는데, 지금은 무척 자랑스럽다.
진짜 영화면 영화, 노래면 노래, 난리다. 이게 어떻게 된 거야?(웃음) 콘텐츠의 민족이자 문화의 민족인 거 같다. 예전에는 동양인이면 무조건 무술을 시키곤 했다. 그런데 이제 세계적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메시지를 던졌다는 게 너무나 통쾌한 거 같다. 이건 우리가 해학과 풍자의 민족이기에 가능한 것 같다.
▷ 영화의 제목이 '인생은 아름다워'다. 촬영을 마무리하고 나서 영화 제목이 조금쯤은 다른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을까 싶다.
'인생은 아름다워' 뒤에 느낌표를 찍는 삶이 있고, 물음표를 찍는 삶이 있다. 이러한 여지를 남긴 거 같다고 생각한다. 그 둘은 천지 차이다. 우리가 그걸 정해줄 수 없다. 영화에서 가장 마음을 움직인 대사가 있는데 "땅끝에 오면 끝일 줄 알았는데 저 끝에 보길도가 있네"라는 대사다. 한 번쯤 누구나 그 지점(끝)을 맞이했을 때 그런 생각들을 한 번씩 한다. 우리가 부러 생각 안 하고 외면했던, 그래서 한 번은 진지하게 생각해볼 만한 화두인 것 같다.
<하편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