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탈북자 상대 '수천억 다단계' 자신도 탈북자…사기범 성장기

QRC뱅크 홈페이지 캡처·스마트이미지 제공

조선족·탈북민 등 경제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코인과 가상화폐 통합 플랫폼 사업 등에 투자하면 고수익을 보장해 주겠다'고 속여 총 2200억여원을 편취하는 등 불법 금융다단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QRC뱅크 고도형 대표(41)가 20년 전 남한으로 넘어온 탈북민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고 대표는 과거에도 불법 금융다단계에 관여한 혐의로 벌금형, 징역형 집행유예 등을 선고받기도 했다. 피라미드 말단 직원으로 일하며 범행 방법을 습득, 결국에는 수천억 다단계 사기범으로 성장해 같은 탈북민들을 대상으로 범행을 저지른 셈이다. 특히 중간에 이름을 바꾸고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숨기는 등 교묘하게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20세 탈북…개명 후 다단계 피라미드 말단부터 시작

17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고 대표는 2001년 만 20세에 나이로 남한에 넘어왔다. 그의 원래 이름은 '고철영'으로 하나원에서 정착 교육을 받은 뒤 2002년 3월 경기도 안성시에 처음으로 주소지를 등록했다. 이후 탈북민들에게 제공되는 아파트에 거주하며 국내 대학 등을 졸업했다.

이후 2013년 결혼을 한 고 대표는 2015년 6월 고도형이라는 현재 이름으로 개명한다. 이때부터 고씨는 본인이 탈북민이라는 신분을 숨기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2013년까지는 서울 강남 지역의 한 교회에 다니며 탈북민 모임에 참석하는 등 탈북민이라는 신분을 숨기지 않았는데, 개명 후에는 관련 단체 등에서 활동한 기록이 전혀 없다.

당시 교회에서 고 대표를 봤다는 A씨는 "잠깐 봤지만 다른 탈북민들과는 달리 탈북민 이미지가 전혀 없고 말도 굉장히 잘해서 기억이 난다"며 "부부가 함께 왔는데 부인은 탈북민은 아니었던 것으로 안다. 몇 번 나오다가 안 나오더라"고 기억했다. A씨는 고 대표의 개명 이후의 행적에 대해서도 전혀 들은 바가 없다고 전했다.

문제는 고 대표가 개명 이후부터 불법 금융다단계에 뛰어들었다는 점이다. 법원 판결문 등에 따르면 고 대표는 2015년 11월부터 2016년 3월까지 '한 회사의 3개월, 6개월 만기 상품에 투자하면 매월 고정된 이자를 지급하며 고수익을 보장해 주겠다'고 속여 피해자들로부터 21회에 걸쳐 총 1억 5천만원 상당의 투자를 받은 혐의로 2016년 10월 200만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고 대표는 벌금형 약식 재판을 받으면서도 또 다른 불법 금융다단계 범죄에 연루됐다. 두 번째 판결문에 따르면 고 대표는 2016년 3월부터 서울 강남구의 한 사무실에서 피해자를 모집하는 총책 역할을 했다. 고 대표가 피해자들을 모아오면 공범 B씨가 "돈을 투자하면 3개월 후 이자 20%와 원금 전액을 돌려주겠다"라는 식으로 속여 수천만원을 편취하는 방식이었다.

결국 공범 B씨는 사기 및 유사수신행위법 위반으로 실형 8개월을, 고 대표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고 대표에 대해 "B씨와 공모해 피해자들로부터 상당한 액수의 돈을 받았는바 그 책임이 가볍지 않다"면서도 "이 사건 범행을 자백하며 잘못을 뉘우치고 있는 점, 피해 금액을 일부 변제한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한다"고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조선족·탈북민 등 경제 취약층 상대로 2200억원 편취

연합뉴스

두 번째 재판을 받던 도중 고 대표는 미스트(휴대용 수분 스프레이) 제조 업체를 설립해 운영하는 등 정상적인 사업을 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언론 보도 등에 따르면 고 대표는 은과 마그네슘 등 성분이 함유된 물을 이용해 미스트를 만들어 판매했다. 다만 현재 해당 제품은 검색되지 않으며, 업체도 폐업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외에도 내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수소가 함유된 물을 판매하는 등 여러 사업을 벌였다고 한다.

하지만 고 대표는 결국 다시 불법 금융다단계 범행에 뛰어들게 된다. 고 대표는 QR코드를 이용해 전 세계 어느 곳에서든 가상화폐의 송금·환전·결제를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금융 플랫폼 'QRC뱅크'를 만들고, 이를 미국 나스닥에 상장시킬 것이라고 속이는 등의 방법으로 5400여명으로부터 약 2200억원을 가로챈 혐의로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에 따르면 고 대표는 2019년 12월부터 2021년 7월까지 투자자들에게 QRC뱅크라는 통합 금융 플랫폼 사업과 그와 관련한 코인매매 사업 등에 투자하면 300% 수익을 보장하고, 매일 투자금액별·추천수별·직급별 수당 등을 지급하겠다고 속여 피해자들로부터 2200억원 상당을 편취한 혐의를 받는다.

겉으로는 금융 플랫폼 사업에 투자한다는 명목이었지만 실상 구조는 다단계식 영업방식이었다. 나중에 투자한 사람들 돈으로 먼저 투자한 사람의 수익금을 주는 '투자금 돌려막기' 수법을 사용했다. 또 투자자를 모아오는 숫자에 따라 직급을 높여주고 수익금을 더 주는 전형적인 피라미드 다단계 방식을 사용했다.

피해자들은 초기 약속했던 돈이 들어오자 대출까지 받아 가며 돈을 더 넣기 시작했고, 주변인들까지 끌어들이기 시작했다. 약 5400여명의 피해자 중 대다수가 탈북민, 중국동포(조선족) 등인 것으로 확인됐다. 남한 내 이들의 커뮤니티가 공고하게 이뤄져 있다 보니 짧은 시간에 피해 규모가 커진 것으로 보인다. 고 대표 역시 탈북민 출신으로서 이러한 점을 잘 알고 악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내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고 대표는 철저하게 본인이 탈북민이라는 사실을 숨겼다. 실제 고 대표가 2020년 7월 펴낸 책 <마이 프리덤(My Freedom)>을 보면 고 대표는 마치 어린 시절 남한에서 성장한 것처럼 서술하고 있다. 또 이 사실을 아는 내부 극소수 인원들에게는 함구령을 내렸다고 한다.

경찰, 위장이혼 밝혀내 100억대 추징 보전…보석으로 풀려나 재판중

고 대표의 범죄 행각은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가 인지수사에 착수하면서 하나씩 밝혀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고 대표는 부인 명의로 백억대 돈을 빼돌린 뒤 이혼한 상태였다. 경찰은 CCTV 등을 통해 고 대표가 이혼한 뒤에도 부인의 집을 매일 오간 사실을 확인, 위장이혼을 했다고 판단했다. 이를 토대로 부인 명의 자산 약 100억원에 대해서도 추징 보전한 상황이다.

2021년 3월 19일 QRC뱅크가 토지주 3명으로부터 토지 및 신축 중인 건물, 사업권 등을 인수하겠다는 내용의 계약서. 양수인으로 '(주)큐알씨뱅크' 고모 대표가 찍혀 있다. 독자 제공

이외에도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고 대표가 100억원대 부동산 자산을 차명으로 빼돌린 정황이 추가로 드러나기도 했다. 한 기숙학원 설립 사업에 약 40~50억원을 투입했는데, 고 대표의 이름이 법인에서 빠지면서 추징보전 재산 목록에서도 제외됐다. 이 또한 특정경제범죄법상 배임 등 혐의로 고발돼 서울 강남경찰서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한편 고 대표는 사기, 방문판매법 위반, 유사수신행위법 위반으로 지난해 10월 공범들과 함께 구속된 채 재판에 넘겨졌다. 하지만 올해 4월쯤 보석으로 풀려났고 현재는 불구속 상태로 재판을 받고 있다. 다음 공판기일은 이달 29일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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