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노동자에 대한 사측의 과도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방지하는 일명 '노란봉투법'이 이번 국회 최대 쟁점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경영계는 노란봉투법이 불법 파업을 부추겨 재산권을 침해할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노동계와 야당은 합법 여부를 가리지 않고 남발되는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야말로 노동자들을 옥죄고 있다고 반박한다.
야권 연대로 발의된 노란봉투법, 연말 국회 '폭풍의 눈'으로 떠올라
정의당은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지난 15일 당론으로 발의하고, 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올해 안에 통과시키겠다고 밝혔다. 정의당 의원 6명이 모두 발의에 참여했을 뿐 아니라 민주당 의원 46명도 함께 이름을 올렸다.
노란봉투법은 쌍용차의 대량해고에 맞서 파업을 일으켰던 노동자들이 정부와 사측에 약 47억 원의 손해배상을 하라는 2014년 대법원 판결에서 시작했다. 시민들이 노동자들을 돕기 위해 모금 활동을 벌이며 '노란색 월급봉투'에 착안해 이름을 붙였고, '노란봉투법' 입법 운동으로 이어졌다.
당시 19대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던 노란봉투법이 다시 주목받은 계기는 최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와 하이트진로 화물기사들의 파업 사태다.
하이트진로에서는 파업에 나선 노조를 상대로 사측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하 손배소)의 취하 여부가 최대 쟁점이 됐고, 결국 노사 합의로 마무리됐다. 하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지난 51일 동안 파업을 벌였던 하청노동자들을 상대로 약 470억 원의 손배소를 제기했다.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의 파업은 중단됐지만 470억 원이라는 막대한 손배소가 남았다"며 "사실상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들로 구성된 하청 노조에 470억 원의 손배소는 노조의 존속을 위협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회가 노란봉투법 논의에 박차를 가하면서 정부도 대응을 준비 중이다.
고용노동부 이정식 장관은 지난 15일 국회에서 노동부의 파업 노동자에 대한 손해배상·가압류 실태 조사 작업에 대해 "사례를 다 수집해서 지금 유형별로 분석하고 있다"며 "국회에서 입법 논의하는 데 차질이 없도록 이른 시일 내에 실태를 보고드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한 노동부 관계자는 "지난 달 중순부터 그동안의 실제 손해배상 청구 사례들이 어떤 상황에서 진행됐고, 어떻게 마무리됐는지 객관적인 통계를 중심으로 두루 살피고 있다"며 "다음 주 중 장관에게 중간보고를 올릴 목표로, 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법안을 심의할 때 실태조사 결과와 정부 입장 등을 정리해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불법 파업으로 재산권 침해? "무분별한 손배소야말로 노동권 침해"
이에 발맞춰 노동계와 시민사회도 '노란봉투법'에 집중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민변 등 시민사회 90여개 단체는 지난 14일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를 출범했다. 노조법 2조와 3조는 각각 노조법의 주요 용어를 정의하고 손해배상 청구의 제한 사유를 다루는 조항으로, '노란봉투법'의 핵심 내용이다.
여기에 경영계는 맞불을 놨다. 노동·시민단체들이 본부를 출범한 바로 같은 날, 경영단체들은 전해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만나 반대 의견을 전했다.
노란봉투법에 반대하는 경영계의 근거는 크게 두 가지다. 파업노동자에 대한 기업의 손배소를 제한하면 △'불법 파업'에 면죄부를 줄 것이고 △과도한 '재산권' 침해를 낳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날 경총 손경식 회장은 "노란봉투법은 정당한 쟁의행위가 아니라 불법쟁의행위까지 면책하는 것"이라며 "헌법상 기본권인 사용자 재산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파업한 노동자를 겨눈 기업들의 손배소는 불법, 합법을 따져보기도 전에 무차별적으로 제기되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들이 제기하는 거액의 손배소가 '불법'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 '파업' 전반을 통제하려는 수단이라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당장 대우조선해양의 경우만 봐도 아직 노동자들의 파업이 '불법' 파업이라고 확정되지 않았는데도 사측은 손배소부터 먼저 제기했다.
또 산업용 다이아몬드 가공업체인 '일진다이아몬드'의 경우 2019년 사측이 노조 간부 등 개인 9명에게 5억 원 규모의 손배소를 제기했지만, 법원은 합법 파업으로 판정하고 기각했다. 2010년 뉴코아가 노조를 상대로 낸 200억 원의 손배소 역시 노조의 파업이 '합법 파업'으로 인정받아 기각됐다.
손잡고(손배가압류를잡자,손에손을잡고) 윤지선 활동가는 "애초에 사측의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손배소를 제기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파업의 불법 여부를 따지기도 전에, 손해 규모도 명확치 않은 상태에서 손배소부터 제기하는 것이 관례처럼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서는 재산권 침해라는 경영계의 주장에 노동권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얘기라는 비판도 나온다. 윤 활동가는 "노동3권 중 단체행동권에 따른 쟁의행위는 본래 남의 영업을 저해하도록 한 권리인데, 이를 재산권과 대립된 것으로 묘사하는 것은 사실상 헌법의 노동3권을 부정하겠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물론 위의 사례처럼 현행 법은 '합법' 파업의 경우 손배소 책임을 지지 않도록 보호하고 있다. 관건은 재산권을 침해하더라도 노동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호받아야 할 합법 파업과, 그렇지 않은 불법 파업의 경계가 어디에 있냐는 것이다.
현재 거론되는 '노란봉투법'도 모든 쟁의행위에 면죄부를 주자는 것이 아니라, 합법 파업의 범위를 확대하자는 내용이다. 현재 노조법은 사실상 직접적인 노동조건을 위한 쟁의행위만 인정하기 때문에 합법 파업의 범위가 너무 좁기 때문이다.
노란봉투법의 경우 노조법 1조에서 규정한 법의 목적인 '근로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의 향상'을 위한 파업도 합법 파업의 범주에 넣자고 주장한다. 예컨대 그동안 기업의 상황을 완전히 바꿔놓을 정부 정책이나 대량 정리해고에 항의하면 '불법'이었지만, 이를 합법 파업으로 인정하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고려대 김성희 노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물론 재산권도 자본주의를 규정하는 핵심 축이지만, 노동권과 충돌할 때 노동권을 근본적으로 흔들 수 있기 때문에 노동권을 제약하기 위한 사유재산권의 행사는 허용되지 않는 것이 전 세계적인 일반적 흐름"이라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예컨대 영국의 경우 10만여 명의 노조원에게 약 4억 원의 손배소를 인정한 것이 최고액 사례였고, 70년대 프랑스에서는 1프랑을 배상액으로 정한 사례도 있다"며 "이마저도 70년대에나 있던 사례로, 현대에 이르러서는 노동권에 대항해 손배소를 하는 일 자체를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강조했다.